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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Jun 25. 2024

'하이힐 신기'

"엄마, 하고 싶은거 다해!"


생일날 들은 축하의 말 중에 기분 설레이는 말이었다. '하고 싶은 거 다해도 된다'는 허락처들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하고 싶어도못했던 일들중 지금아니면 안될 일이 무엇일까...죽기전에 이거 안하면 후회할 일이 무엇일까...


'하이힐 신기'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더 늦으면 허벅지 힘떨어져서,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들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선 사무실에 슬리퍼대신 하이힐을 하나 갖다 놓았다. 그래야 한번이라도 더 신지 싶어서...오랫만에 신어보는 하이힐은 키만 커지게 하는게 아니고, 기분까지 'up' 시켜주었다. 이게 뭐라고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1위일까...




나는 결혼 전에 키가 170cm이었다. 엄마는 중매쟁이에게는 168cm이라고 말했고, 나에게도 신신당부를 하셨다. '170이라고하면 남자들 다 도망가버릴테니까 168이라고 해야해!' 


다행히 선을 본 남자는 나보다 7cm가 큰 남자였다. 그와 결혼하면 하이힐을 신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출산후 3cm가 더 커버렸다. 173cm인 내가 하이힐을 신으면 남편보다 커보였다. 말은 하지 않지만, 은근히 하이힐을 안 신어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어제 당신하고 가는 모습을 본 동료가 당신이 나보다 크냐고 묻더라'


시어머니는 '내가 키가 너무 작아서 키큰며느리를 오랫동안 소망했었는데, 이렇게까지 키큰애가 내 며느리가 될 줄은 몰랐다. 이제 그만 커도 된다아~' 하셨다. 내심 당신의 아들보다 내가 더 커지는게 걱정되셨던 것일까?


교회에서 가장 키가 큰 권사님의 부인은 남편과의 키 차이가 30cm 이상 난다. 부인권사님은 나이가 들어서도 킬힐(굽이 10cm가까운 하이힐)을 신고 다닌다. 그렇게 높은 구두를 신고 어떻게 걸어다니는지 신기한데, 평생 키 작은게 열등감이라 하이힐 신고 뛰는 일도 가능하단다. 내심 하이힐을 마음편히 신고사는 그분이 부럽기도 했다.




하이힐은 키가 작은 여성이 키가 커보이려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하이힐을 신으면 허리를 곧게 펴야 예쁘게 걸을 수 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하게 걷는 모습은 멋짐의 시작이다.  대학교 다닐 때도 청바지에 빨간 하이힐을 신고 지나가는 여성이 러웠다. 졸업후, 몸에 딱붙는 블랙수트에 하이힐을 신고 일할수 있는 곳에 취직하려고 노력도 했었다. 그러나 꿈은 그저 꿈으로 남았다.



종가집 종녀였던 나는 남동생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잔소리를 들었다. 남동생 기죽인다고...내 안에 있는 능력을 당당하게 드러내면 안되는 환경속에서, '잘나면 안되'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이 생겨버렸다. 최고의 자리에 가는 일, 남앞에 서는 일에서 유독 자신없어 했었다. 그러면 안될거 같았다.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딸이 해준 그 한마디, '엄마, 하고 싶은거 다해~'라는 그말이 나에게 허락으로 느껴진 것은, 어린 시절부터 묶여있던 '네가 능력을 발휘하면 동생이 기죽어. 그러니 하고 싶은거 다하면 안되'에서 풀려나게 해준 모양이다.


마치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발장에서 그동안 모아 놓았던 하이힐을 꺼내서 신어본다. 낼 모레면 환갑인데, 더 늦기전에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보기로 한다. 이제부터의 삶은 내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던 당당함을 끌어 올려야할 것 같다.




오랫동안 꿈꾸었지만 주저하고만 있던 연구실도 오픈했다. '자기를 실현시키는' 꿈의 공간이다. 연구소 소장이라는 타이틀에 주눅 들지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하이힐을 신고 아랫배에 힘을주고 당당하게 걸어 보려한다. 


줌바를 시작할때는 '제가 너무 커서 앞이 안보이실까봐요... '라며 홀의 가장 구석에 숨어 춤을 추었다.  그러나 이제는  큰키를 마음껏 드러내며 정중앙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누군가 말해준다. '팔다리가 길어서 시원시원해보인다'고...'부럽다고...'


키가 크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보다 그저 작아보이려고 노력했었는데...이제야 큰 키가 '좋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은 자기실현경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죽기전까지 자기를 발견하며 자기 모양대로 살아보고 싶어 몸부림친다. 저마다의 '하이힐 신기'라는 과제가 주어져있다는 뜻일게다.


오늘도 나는 하이힐을 신고 사무실안을 서성거린다. 운동화처럼 편하지는 않지만, 운동화 신을때와는 다른 자세로 걷게 된다. '운동화 신은 편안한 나'도 좋지만, '하이힐 신은 당당한 나'도 좋다. 신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당당해지는 느낌이다.


환경이 심어놓은 비합리적 신념에서 벗어나,


내가 가진 강점을 살려, 


내 가슴을 뛰게하는 방향을 따라, 


당당하게 살아보려 한다.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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