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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Sep 14. 2024

명절 공포증 극복기

 

‘할머니, 뭐해요?’


4돌이 갓 지난 손주의 안부 인사다. 주말마다 아들, 손주, 며느리가 모여 화상통화를 하는데, 주중에 이렇게 가끔 손주가 전화를 한다. 지난 달, 처음으로 자기 방에서 함께 잤던 할머니에게 정이 흠뻑 들었나보다. 그날 이후 부쩍 ‘할머니한테 전화할래’라고 하는 말을 자주 한단다. 오늘도 유치원에서 OO가 장난감을 던졌다는 이야기부터, 유치원에서 배운 영어 동요 메들리까지 한시간 반동안 종알거린다. '할머니, 한밤만 자고 할머니한테 갈께요'라고 말씀드려~라고 며느리가 옆에서 말을 거든다.




며느리가 생겼을 때 '나에게 시어머니라는 역할이 맡겨진 것'이 싫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그 힘든 자리로 가게 한 아들도 원망스러웠다. 오랜 시간동안 한국인의 정서 깊은 곳에 악역으로 자리잡은 '시어머니'의 자리...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가게 되었었다.


5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시어머니가 된 터라, 시어머니라는 역할에 동일시되기 보다, 며느리 역할에 동일시가 되었다. 내가 며느리에게 무슨 행동을 하기 전, ‘시어머니가 이렇게 행동했을 때 며느리인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자동적으로 떠올랐고, 나는 며느리를 보호하기 바빴었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나로 하여금 내가 겪은 시어머니와 동일시하지 않게 감시를 해주었다. 그 시절 내가 받고 싶었던 그 대접을 내가 시어머니 자리에 가서 나 자신에게 해주듯 며느리를 배려했다.


그런데도 며느리는 한동안 긴장을 풀지 못하고 얼어있었다. 며느리는 어릴 때 친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그때 엄마가 친할머니 때문에 는 모습을 자주 봤었다고 했다. 자신에게는 잘 해주시지만, 엄마를 울게 하는 친할머니를 좋아할 수 없었다고 했다. 처음엔 내가 자기 친할머니가 엄마에게 하듯 그렇게 할 거라고 예상하고 마음의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닮고 싶은 큰 언니같기도 하단다. 며느리는 친정 엄마가 연세가 많고, 자라면서 집을 오래 떠나있어서 엄마에게 고민을 잘 나누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나랑 이야기 하다 보면 친정엄마한테 말하는 것보다 더 이해받는 느낌이 들고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

     

아들은 내가 환갑도 되기 전에 손주를 안겨주었다. 나에게는 시어머니되는 일 만큼이나 '친할머니'가 되는 일은 두려운 일이었다. 아무 이유없이 시어머니를 무서워하는 것처럼, 아무 이유없이 손주에게 거절 받게 될 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친할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정서가 묻어날 게 없는데, 우리 아이들을 보니 외할머니에 비해 친할머니는 왠지 불편한 대상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들이 낳은 손주에게 '외할머니라고 불러'라고 할 수도 없는 일...


본가에 가면 엄마가 부엌에 매여 자기들을 돌보지 않았던 기억 때문에 아이들도 친할머니가 원망스러웠을지 모른다. 늘 자기들한테 붙어있던 엄마인데, 본가에만 면, 얼굴 보기도 힘들고, 어쩌다 보이는 엄마는 잔뜩 지쳐있으니 엄마를 힘들게하는 그곳이 그들도 싫었던 모양이다. 친손주라서 마음을 많이 써주긴 하셨는데도 아이들은 친할머니를 무서워했다. 


명절에 시어머니 만나는 일이 제일 싫은 며느리, 친할머니랑 둘이 있으면 너무 불편해지는 손자...나는 그런 시어머니, 그런 친할머니는 되지 말자고 결심했었다. 적어도 그런 대물림만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30대에 지방으로 이사와서 너무 외로웠을 때 잠시 영어유치원 교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손주를 데리고 노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의 아이들이 어릴 때 '할머니는 맨날 찡그리고 있어. 그래서 무서워'라고 했던 말을 참고하여, 늘 텐션높은 목소리와 활짝 웃는 표정으로 손주를 대한다.


청각이 예민한 손주는 영어 동요를 불러주면 표정이 달라진다. ‘할머니는 영어를 잘해’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아지는 칭찬이다. 대학때 교수님에게 ‘너는 영어를 참 잘해’라고 칭찬을 들었어도 이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을까...손주랑 더 즐겁게 놀기위해, 칭찬에 보답하기 위해, 가끔씩 영어공부를 하게 된다. '영어 잘 하는 할머니' 자리를 유지하기위해 노력하고 싶어진다.


나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손주의 마음 아지트 되기’라는 꿈이다. 사춘기가 되고 정체성이 혼란스러울 때, 친구들과 갈등이 있을 때,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야기까지 '우리 할머니한테가서 쏟아 놓을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들이 결혼 전에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고, 지금도 힘든 일이 생길 때 나에게 전화해서 푸념을 쏟아놓는다. 며느리도 아들이 힘들어하면 '어머니, OO씨 좀만나봐주세요...힘들어하네요'라고 SOS를 청한다. 아들은 몇시간동안 불안을 모두 나에게 던져버리고 홀가분해져서 일상으로 돌아간다. 남편은 그런 아들이 너무 어리다고 느끼지만, 나는 그런 아들이 고맙다. 엄마를 여전히 ‘좋은 거울’로 여겨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거울자기대상이 되어 줄수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손주도 자기 아버지를 닮았다면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겠지...기대해본다.


'할머니!!'하고 내 품에 안길 손주에게 먹일, LA갈비를 양념하며 나는 콧노래를 부른다. "Old McDonald had a farm...E. I. E. I. O"


잔뜩 긴장한 상태로 명절 내내 허리가 끊어질 듯 부엌일을 하던 ...그래서 명절이 다가오는 것이 너무나 공포스러웠던 나...여전히 혼자 전부치고 갈비재우고 청소하며 허리가 아프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노동이라 그런지 고통스럽지가 않다.   허리는 아프더라도 명절동안 며느리 얼굴이 어두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야 손주의 나를 향한 마음이 식어지지 않을테니까...


손주덕분에 명절 공포증에서 벗어나, 명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내가 되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제야 제대로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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