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부터 쓰기 시작했지만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 출간이 지연되었고, 2년 3개월 만에 종이책으로 태어났다. 이름 없는 사람의 글이 한 권의 종이책으로 탄생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던 것 같다.
출판 결정에서부터 마지막 도판 문제까지 그야말로 애가 타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특히, 4월부터 시작된 도판과 칼더서술 부분에 대한 칼더 재단의 지나치게 깐깐한 조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영문 텍스트를 요구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한국어 서적임을 밝혔음에도 제출된 영문의 단어들의 미미한 의미까지 지적하며 수정할 것과, 공인된 자료를 참고했는데도 그러한 해석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세 차례나 텍스트가 오고 갔다. 한 번 보낼 때마다 보통 1주에서 10일이 걸려야 답장이 왔다. 4월 중순 예정인 출간 계획은 이렇게 마냥 지연되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칼더 재단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을 수락하지 않는 한, 책에 필요한 그의 작품 사진들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과 칼더에 대해 언급된 부분은 저자 마음대로 출간할 수 없다는 자체 규정을 갖고 있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출판사에서는 칼더를 빼자고도 했지만, 호안 미로와 칼더의 특별했던 우정과 <별자리 연작>을 통해 나타난 놀랄 만큼 비슷한 예술 세계에 대한 서술은 이 책의 독창적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에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칼더 재단은 이 방면으로 악명이 높았고, 이미 한 출판사와 소송이 걸려 있으며, 2019년 12월에 칼더 전시회를 기획한 어떤 미술관과도 말썽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칼더 재단의 알렉산더 칼더 전문 미술학자의 지도를 받았으니, 그냥 내 책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라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ㅠㅠ 그러나 이후 칼더에 대한 책은 절대로 쓰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ㅎㅎ
이 책은 한국천문연구원 웹진에 게재한 ‘명화 속 별 이야기’라는 짧은 글을 발견한 출판사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문학, 경제, 화학, 의학 분야에서 미술과의 연결고리를 탐색한 책들이 있었으니, 이제 천문학적 관점에서 미술을 만나보는 것도 꽤 흥미로울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바로 내 옆에 한국천문연구원에 근무하는 천문학자 남편 김현구 박사가 있었기에 쉽게 집필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미술과 역사를 전공한 나와 천문학을 공부한 남편은 일 년 내내 이 주제에 매달려 살았다. 나는 남편에게 미술작품을 설명해주고, 남편은 그림 속에 나타난 천문학적 요소들을 해설해주는 방식으로 한 편씩 글을 완성해갔다. 집 근처 천변을 함께 걷는 밤 산책을 할 때면 우리는 현실에서 멀리 벗어나 캄캄한 하늘의 별들과 신화 속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는 동안 그림과 화가들, 신화, 천문학, 별과 우주의 세계가 날실과 씨실로 짜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책 제목을 정할 때 '천문학'이란 단어 대신 '별과 우주'를 쓰자는 견해도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그림 속 천문학>으로 결정되었다. 간혹 독자들로부터 제목으로 보아 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책 제목이 주는 무게를 걱정했지만, 오늘 한 독자로부터 반가운 말을 들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마니아인 11살짜리 딸이 몇 장 들춰보더니 무척 흥미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 책의 반은 태양계의 별, 행성들과 관계된 그리스 로마 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그린 명화들이기 때문이다.(물론 11세 소녀가 읽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그렇다면 일반 성인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반은 미술사의 명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천문학적 요소들에 대해 썼다. 저자가 과학, 혹은 천문학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취약한 나 같은 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고 알기 쉽게 서술하려고 했다. 이 책의 성격은 어디까지나 과학책이 아니고 인문교양서, 그리고 미술교양서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읽고 쓰고, 인간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했다. 이제 그것들을 조금씩 펼쳐놓으려 한다. 이 책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먼 길 돌아 여기까지 왔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지금 나는 5월의 햇살같이 찬란한 내 안의 충만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