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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지 Jun 06. 2022

라피스 라줄리,
세상에서 제일 비싼 물감의 원료

ㅡ 물감의 역사

중세 말,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는 해상을 통해 동방의 후추와 각종 향신료, 옷감, 차 등을 수입하는 동서무역을 주도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이루었다. 새로운 미술재료들도 그 거래 품목에 들어있었는데, 인도,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입한 안료들은 중세의 어둡고 칙칙한 회화에 화사하고 생동감 있는 색채를 선사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의 중심에는 베네치아 공국이 있었다. 베네치아는 1492년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고, 1499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개척하기 전까지 동방무역의 중심지였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개척한 동서 무역로를 따라 들어온 이러한 갖가지 진귀한 물품들은 베네치아로 들어온 다음, 유럽 각지에 이윤이 붙은 비싼 가격으로 팔려 나갔다. 반면, 베네치아 화가들은 다른 지역의 미술가들보다 쉽고 값싸게 이 안료들을 구입할 수 있었고, 이것이 찬란한 빛과 색채로 가득 찬 베네치아 화파를 탄생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광물과 토양, 동식물, 곤충의 분비액에서 얻은 이 안료들 중에는 인도산 브라질우드(brazilwood)나 연지벌레의 분비물에서 추출한 진한 빨간색 안료인 레드 레이크(red lake), 쪽빛의 인디고(indigo), 노란색인 오피먼트(orpiment), 오렌지색인 리앨가(realgar)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값이 비싸고 귀한 안료는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청금석)에서 추출한 울트라마린(ultra marin)이었다.


라피스 라줄리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광산에서 생산되는데, 아주 선명한 군청색을 낸다. 불투명하고 짙은 파랑에 하얀 줄이 나있고 황금빛 조각이 섞여 옛날 사람들은 이 금빛 조각을 황금이라고 생각했다. 금광이나 은광에서 이 조각들이 발견되었고 황금처럼 빛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황철이다. ‘바다 멀리’라는 로맨틱한 의미를 가진 라피스 라줄리에서 얻은 울트라마린은 사실 황금보다 비싼 물감이므로 황금이나 마찬가지다. 


당시 그림을 주문하는 사람과 화가 사이에 이루어진 ‘화가의 계약서’는 작품의 값을 정할 때도 누가 그렸느냐보다 비싸고 귀한 안료를 사용했는지에 따라 그 가격이 결정되었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울트라마린을 사용한 그림들은 최고의 가격이 매겨졌다. 울트라마린은 광물성 안료이기 때문에 수백 년이 지나도 그 선명한 파란색이 바래지 않고 유지된다. 오늘날에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이 물감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산되고 있는데, 최고 품질은 1kg 당 1500만 원을 호가한다.  


1775년에는 코발트 광석에서 얻은 코발트블루라는 매우 강렬한 색감의 새로운 파란색이 생산되어 고흐의 그림에서 빛을 발한다. 코발트블루는 천재적인 위작 화가 한 반 메헤렌(Han van Meegeren)의 페르메이르 작품 위작을 들통나게 한 일등공신이다. 그는 진품에 사용된 울트라마린을 구해 위작에 사용했지만 페르메이르 시대에 없었던 코발트블루가 소량 섞여 있어, 화학분석 결과 위조로 판명되었던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그런데 당시의 프레스코화들에서 증명되듯이, 현대와는 정반대로 중세에는 파란색이 여성을 위한 색이었고, 반대로 빨강은 남성을 위한 것이었다. 시대와 역사의 흐름에 따라 과학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태도도 변화하며, 심지어 이렇듯 색이 갖는 상징성의 패러다임도 뒤집어진다. 

                     

 

울트라 마린 블루의 원료인 라피스 라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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