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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지 Jun 14. 2022

조니 뎁 vs. 앰버 허드,  젠더 전쟁의 대리전

미국에서는 요즘 할리우드 배우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수년에 걸친 소송전이 가장 핫한 이슈다. 전 세계 신문들이 연일 이들에 대한 기사를 계속 방출하고 있는데, 상호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복잡해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가 매우 힘들다. 뎁과 허드는 서로 자신이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두 사람을 심리 상담했던 치료사에 의하면 쌍방 학대라고 한다. 허드가 뎁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고, 뎁이 허드를 때리는 사진과  타박상을 입은 그녀의 모습을 목격한 증인도 여럿 있다.


그러나 지난 6월 1일, 뎁이 제기한 소송에서 배심원 만장일치로 허드가 뎁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결론짓고 1500만 달러를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2020년, 조니 뎁은 이미 영국에서 자신을 'wife beater'로 표현한 영국 대중지 The Sun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한 바 있다. 이후, 그는 허드가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문제 삼아 다시 그녀를 미국 법원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나는 가정 폭력을 대표하는 공적인 인물이 되었다."며 뎁의 학대를 암시하는 듯한 문장을 쓴 것이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완전한 뎁의 승리였다.


사실 허드는 법정에서의 모순된 진술, 과장된 행동과 거짓 눈물로 조롱을 받았다. 이혼 합의금 전액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해 구설수에도 올랐다. 조니 뎁과의 결혼 생활 중에는 일론 머스크와 불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재판장에서 기자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바로 이어진 눈물 연기를 포착한 틱톡이 일파만파 퍼져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녀는 이른바 '완벽한 피해자'와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주장했듯이 일방적인 가정 폭력의 피해자도 아니다.


조니 뎁 역시 한때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여자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기 위해 온갖 비열한 짓을 했다. 재판 중 나온 가장 추잡한 이야기는 허드가 뎁에게 복수하기 위해 침대에 대변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녀는 반려견이 그의 대마초를 먹고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추앙되던 금발 미녀는 이제 더할 수 없이 치욕스러운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뎁이 허드를 죽여 불에 태운 후 불탄 시체와 섹스를 해서 그녀가 죽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사이코패스 같은 텍스트 메시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고도 한다. 그가 부엌 찬장을 부수고 난리를 피울 때 앰버 허드가 그를 진정시키려고 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 증거도 있는데, 그때 그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sorry’라고 말하는 것뿐이었다고 했다. 둘 다 문제적 인간이다.  


그러나 버지니아 주에서 열린 이번 재판에서 배심원단과 대중의 총구는 허드에게로만 겨누어졌다. 재판장은 총체적인 여성 혐오의 난장판으로 변했다. 2020년, 영국 법정에서 인정된 뎁의 가정 폭력죄(당시 판사는 머리로 들이받고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목을 조르는 등 뎁이 허드에게 신체적 폭행을 가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전혀 인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일방적인 가해자, 거짓말쟁이로 지목되었고, 조니 뎁은 불명예를 회복한 영웅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재판은 반페미니즘으로의 퇴행에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한동안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못마땅한 얼굴로 숨을 죽이고 있던 미국의 많은 우익 유명인사들은 'Johnny Depp defeated #Me Too.', 혹은 'Amber Heard just destroyed “believe all women.'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극우 언론사인 폭스는 최근 자신의 성희롱 혐의에 대해 '더러운 속임수', '정치적 공격'이라고 주장한 일론 머스크를 옹호하기도 했다.


미국 법원은 허드를 비정상적이고 미친 사람으로 몰아갔다. 흔히 가정 폭력의 피해자는 외상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여성의 히스테릭성 성격 장애 같은 성 차별적인 진단을 받는 경향이 있다. 허드의 경우, 한 심리학자는 그녀가 경계성, 연기성 인격장애를 가졌을 거라고 진단했고, 다른 심리학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했다. 그런데 왜 뎁의 정신은 병리적으로 진단되지 않았을까? 이런 관점은 허드를 정신적으로 아픈 여성으로 낙인찍은 것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폭력 피해자들의 말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하는 데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인터넷 트롤들은 그녀에 대한 갖가지 부정적 반응을 유발하고 선동했다. 대중은 이들에게 놀아났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이나 가정 폭력을 신고하는 여성은 돈이나 복수 등 어떤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여성 측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확신을 다지는 데는 간혹 발생하는 몇몇 무고 사례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때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공개적으로 모욕당하고 사회적으로 배척당하며 소셜 미디어에서 끝없이 조롱당한다.


세상은 허드가 진짜 피해자인지 의심했고, 그녀가 피해자처럼 보이고 피해자처럼 말하며 피해자처럼 울고 있는지 주시했다. 사람들의 결론은 '아니다'였다. 트위터에서는 'AmberHeardIsALiar'와 같은 해시 태그가 유행했다. 깊이 뿌리 박힌 여성 혐오는 칼춤을 추었다. 허드에 대한 조롱과 모욕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력이나 학대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다른 여성들에 대한 퇴행적인 비난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랑과 전쟁 이야기가 아니다. '젠더 전쟁'의 대리전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Amber Heard and the Death of #Me Too’라는 기사에서 앰버 허드의 사례가 MeToo 운동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투 운동은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희생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고 사회 인식을 변화시켰지만, 한편으로는 성평등 및 젠더 운동에 대한 혐오와 염증, 강력한 반발을 일으켰다. 뎁의 승소는 피해 여성들을 상대로 한 비슷비슷한 소송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 가수 마릴린 맨슨은 이미 그를 성폭력 혐의로 고발한 전 약혼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이러한 백래시의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들이 이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법과 정의를 불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 여성 법대 교수는 이 재판이 본질적으로 "디지털 시대의 마녀 재판"으로 귀결되었다고 말하면서 "#MeToo 운동으로 시작된 사소한 진전을 다시 과거로 되돌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수차례 백래시 현상은 있었지만, 고비고비마다 운동은 되살아났다. 1990년대 초, 미국 언론인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수잔 팔루디(Susan Faludi)는 여성의 권리 운동에 반발해 일어난 여러 차례의 반페미니즘 움직임에 대해 분석했다. 팔루디는 19세기 중반, 세기가 바뀔 무렵, 그리고 1940년대와 1970년대에 페미니즘 운동이 장애물에 걸릴 때마다 그런 움직임과 후퇴가 발생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현재 미국은 다시 한번 반페미니즘의 한가운데에 있다. 1973년에 부여된 낙태권과 같은 필수적인 여성의 권리는 미국 대법원에 의해 폐기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리고 미투 운동이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의 몰락과 함께 공공연한 사회적 운동이 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페미니즘은 또다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집요한 반페미니즘은 뎁 vs. 허드 재판에서도 혐오의 이빨을 드러냈다.  앰버 허드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한 유명 커플의 지저분한 법정 싸움이 어떻게 성평등 운동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미투 운동의 창시자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말했듯이, 이 운동이 죽은 것이 아니라 사회의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오작동을 한 것일 뿐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미투 운동을 촉발했던 서지현 검사가 검찰의 음해와 압박으로 최근 사직했다. 검찰 내 성폭력에 대해 죽을 힘을 다해 싸웠지만 폭로 이후 괴롭힘과 음해, 2차 가해, '미친 X' 취급을 당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고 한다. 참 지랄맞다. 그의 말대로 도대체 세상은 왜 이렇게 안 변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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