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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년간의 속죄,
그녀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ㅡ 어린 소녀가 산산조각 낸 타인의 삶

by 김선지



《어톤먼트》(2020) / 이미지=IMDb


어린이는 무조건 순수하고 선할까? 이 영화는 이런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할 수 없게 만든다. 철없는 어린아이조차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악함과 파괴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거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질투와 오해로 사랑하는 남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어린 소녀의 이야기다.


《<어톤먼트(Atonement)》(2007년)는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 제작한 것으로, 골든 글로브 작품상을 받은 수작이다. 단순히 로맨스 영화라고 하기에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오랫동안 가슴에 먹먹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작고 어린 소녀가 빼앗은 그들의 삶


1930년대 영국, 부유한 상류층 가문의 딸 세실리아는 대학을 졸업하고 시골 대저택에 돌아와 여름을 보내던 중, 소꿉친구이자 자신의 집 가정부의 아들인 캠브리지 대학 의대생 로비와 재회하며 서서히 사랑을 키워간다. 로비와 세실리아는 신분의 차이는 있었지만, 서로에게 충분한 자격이 있는 아름다운 연인들이었다. 그녀의 동생인 브라이오니는 소설가를 꿈꾸는 13세의 사춘기 소녀다. 아직 어리지만 작가 지망생답게 조숙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다. 로비를 짝사랑한 브라이오니는 세실리아와 로비 사이에 오가는 애틋한 마음을 눈치채면서 미묘한 질투를 느끼게 된다.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로비와 세실리아


로비는 세실리아에 대한 열정을 담은 편지를 브라이오니를 통해 전한다. 그런데 써놓은 여러 버전의 편지 중 실수로 그만 성적 욕망이 노골적으로 표현된 것을 보내고 만다. 언니에게 전달하기 전, 몰래 편지를 읽어 본 브라이오니는 "너의 음부에 입 맞추고 싶다"라는 노골적인 글귀에 경악하며 로비가 색마라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 어느 날 밤, 세실리아와 로비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서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이 정사는 브라이오니의 등장으로 중단된다. 지나가다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소녀는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개입한 것이다. 정말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만 실은, 브라이오니도 로비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질투와 분노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로비의 편지를 읽는 브라이오니

같은 날 밤,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브라이오니는 또래 사촌인 롤라가 정원에서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충격적 장면을 목격한다. 그녀는 뜬금없이 로비를 강강범으로 지목해 버린다. 예비 의사로서 장래가 유망한 청년의 인생은 앙큼한 어린 소녀의 어이없는 위증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사실 진범은 오빠인 리온의 친구이자 백만장자 사업가인 폴 마샬이었다. 편지 사건으로 인해 로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춘기 소녀의 풋사랑 상대인 로비가 언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유치한 보복의 칼날을 겨눈 것일까?


어린아이의 거짓말도 거짓말이려니와, 명문대에 다니지만 하층민 출신인 로비를 은근히 멸시하고 소녀의 말 한마디에 그를 쉽게 강간범으로 확신해 버리는 특권 의식에 절은 사람들 역시 이 부조리한 사건의 방조자들이었다. 강간죄로 몇 년간 감옥 생활을 한 로비는 다시 군대에 징집되어 2차 대전에 참전한다.


전투에 투입된 로비


한편, 로비의 결백을 믿은 세실리아는 가족에게 환멸을 느끼고 집을 나가 간호사로 일한다. 전투에 참전하기 위해 떠나기 전, 로비는 런던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세실리아를 만난다. 세실리아와 로비는 열정적으로 키스하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다시 확인하고, 전쟁이 끝난 후 돌아와 바닷가에 있는 집에서 함께 살기로 약속한다. 바닷가에서 로비와 세실리아가 재회하여 바닷가를 거닐다 함께 별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것은 상상의 신(scene)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런던의 그날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비극적 죽음을 맞은 로비와 세실리아



로비는 전쟁터의 벙커에서 패혈증으로 죽고, 세실리아도 지하대피소의 폭발로 죽는다. 만약에 브라이오니가 거짓말을 안 했더라면, 이 두 남녀는 오래오래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작고 어린 소녀가 빼앗아버린 것치고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 아닌가!



완결되지 않은 속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마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브라이오니는 평생 동안 죄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18세에는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스스로 간호사를 자원하여 전쟁터에 나가 부상자들을 보살핀다. 나름대로 속죄의 의식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유명한 소설가가 된 77세의 그녀는 로비와 세실리아 이야기를 쓴 소설에 대해 TV 인터뷰를 한다. 여기서 자신이 혈관성 치매로 인한 기억력과 언어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사실상 작가로서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 셈이어서 서둘러 마지막 소설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이 죽지 않고 해변을 행복하게 거닐며 그들의 보금자리인 집으로 들어가는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59년 동안 속죄의 마음으로 살아왔다면서, 소설에서나마 그들이 행복하게 살게 해주는 것이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마지막 소설에 대해 인터뷰하는 브라이오니


브라이오니의 소설 속에서 행복을 찾은 로비와 세실리아



작가 브라이오니는 영화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약함이나 회피가 아니에요. 그들은 서로를 그토록 갈망했어요. 그것이 내가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친절이었고,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했어요." 브라이오니는 소설에서 그들에게 행복한 엔딩을 부여함으로써 스스로 속죄했다고 생각하고 두 사람에게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소설의 결말이 진정 그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지은 죄의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합리화인가?


그들에게 행복을 선물했다는 말에서는, 이 모든 비극을 초래한 당사자의 진정한 속죄가 아니라, 자신을 타인의 운명을 쉽게 망가트리고 다시 살리는 신적 권능을 가진 존재로 생각하는 오만과 허영심, 위선만을 읽을 수 있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그녀의 마지막 소설의 결말은 자신의 죄를 솔직히 인정하지 못하는 비겁한 '나약함과 회피'가 맞다. 그녀는 끝까지 자기중심적이었고 이기적이었다.


로비와 세실리아 입장에서 보면, 브라이오니의 속죄와 독자를 위한 행복한 결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용서는 죄를 지은 당사자가 아니라 피해를 본 당사자의 몫이다. 브라이오니의 속죄는 속죄가 아니라, 끝까지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한 위선, 그녀가 평생 지니고 살았던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느껴진다. 그녀는 허구의 소설을 쓴 것 외에, 60여 년 동안 실제로 상대방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당사자들에게 사과는커녕 긴긴 세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죄를 숨겨왔다.


그녀가 진정으로 속죄를 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자신이 거짓말을 했으며 로비는 무고하다고 명예 회복 정도는 시켜줬어야 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뼈아픈 비난과 질책을 듣는 고통을 감수했어야 했다. 이제 그녀를 평생 따라다닌 괴로움은 기억과 인지력 상실이라는 견고한 보루 안에서 망각되고, 죄의식으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될 것이다.


사진8.jpg 13세, 18세, 77세의 브라이오니



13세의 브라이오니와 18세, 77세의 브라이오니의 헤어스타일은 모두 똑같은 금발의 단발이다. 사람이 일생을 두고 어찌 한 번도 헤어스타일이 바뀌지 않았던 걸까. 그녀가 스스로 속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하지만, 감독은 두 사람의 인생을 산산이 부수었던 13세의 소녀는 18세가 되어 전쟁터에서 봉사를 했건, 77세에 죽어가면서 회환의 고백을 했건 간에, 그 근본적인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십 대 소녀의 유치한 상상력과 편견, 질투, 미숙한 행동, 이 모든 것이 날카로운 흉기가 되어 타인의 삶과 행복을 파괴했다. 칼과 총에 의한 물리적 폭력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악의에 뿌리를 둔 거짓말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현재의 나의 편견과 오해, 그리고 악의와 거짓말이 나중에 속죄해야 할 두려운 일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악당이나 뻔뻔하고 무지한 자가 아니라면,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받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죄책감만으로 속죄가 이루어지는가이다. 소설의 결말을 통해 스스로 면죄부를 주고 양심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했지만, 브라이오니의 속죄는 결코 완결되지 않았다.


브라이오니는 늙어서도 위선적이고 교활해 보이지만, 한평생을 남모르는 죄의식을 갖고 사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속죄나 죄의식, 그런 낱말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인간들에 비하면, 그녀는 괜찮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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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브라이오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실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서술하면 독자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결말이 될 것이고, 로비와 세실리아는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히 비극적인 한 쌍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그건 너무 불행한 일이지요. 나는 소설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나마 두 명이 행복하길 바랐어요." 그들은 전쟁 중 사망했지만 소설에서는 독자들이 원하는 해피 엔딩으로 끝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자신의 속죄의 고백이라고 하면서도,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이용하고 독자의 반응까지 염두에 두는 작가로서의 입장을 드러낸다. 자신이 그들에게 행복을 선물했다는 말에서는 마치 신적 권능을 가진 듯한 작가적 허영심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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