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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지 Oct 26. 2019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ㅡ 국제적 명성을 떨친 최초의 여성 화가

■다음 글은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의 앙귀솔라 서술 부분 중 일부내용입니다.

네 번째 이야기 



사람들은 르네상스의 위대한 예술가 하면 대체로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 남성 미술가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역시 엄청난 명성을 떨쳤던 한 여성 화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Sofonisba Anguissola 1532-1625이다. 당시 여성 미술가들의 처지를 생각해 볼 때, 앙귀솔라는 예외적으로 성공한 화가였다. 그녀는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 올라간 몇 안 되는 여성 미술가 중 하나였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조차 모른다.  소포니스바 앙귀솔라는 누구인가?     

   

앙귀솔라, <체스 게임>, 1555, 캔버스에 유채, 70 x 94 cm, 포즈난 국립박물관, 폴란드


미켈란젤로가 칭찬한 화가


ㅡ 생기 있고 활기찬 소녀들의  <체스 게임>   

  

<체스 게임>은 앙귀솔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이 그림의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얼굴 표정과 자세는 그들 각각의 개성과 성격을 보여준다. 이러한 살아 있는 개성의 묘사는 당대의 대부분의 뻣뻣하고 형식적인 초상화들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중앙에서 언니들의 체스 게임을 지켜보는 막내 유로파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보라! 실망한 패배자를 바라보며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소녀는 그림에 생기를 준다.

    

<체스 게임>에서 묘사된 인물의 개성과 성격은 바로 르네상스 정신, 즉 인본주의 Humanism의 표현이다. 르네상스는 중세의 신 중심적인 사고에 반대하여, 인간의 개성과 창조성에 높은 가치를 두는 인간 중심적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 그림은 인간적인 따뜻함과 친밀함을 독특한 스타일로 표현함으로써, 이러한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을 구현한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 역시 앙귀솔라의 생기 있고 개성이 넘치는 초상화들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체스 게임이 일반적으로 남성들의 오락거리였다. 그런데 앙귀솔라는 자신의 자매들이 체스를 두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그려, 그녀의 집안 분위기가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보여준다. 체스가 남성의 놀이로 인식된 것은 여성에게는 이 게임에 필요한 논리적 두뇌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니,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앙귀솔라, <앙귀솔라를 그리는 베르나르디노 캄피>, 1559, 111 x 110 cm, 피나코테카 나지오날레, 시에나


에필로그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가 그녀의 그림을 보고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또한, 교황 피우스 4세, 스페인의 펠리페 2세도 그녀의 열성 팬이었다. 또한, 반 다이크와 카라바조, 루벤스 등 불세출의 거장들이 그녀의 작품들을 모사했다. 특히, 반 다이크는 당시 92세였던 그녀를 시실리까지 찾아가서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초상화를 그려줄 정도로 그녀를 존경했다. 그는 후에 이 대화가 어떤 다른 것보다 그에게 그림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많은 작품들은 서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레오나르도, 티치아노, 심지어 엘 그레코 등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다른 화가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진 작품들을 앙귀솔라의 작품으로 귀속시키는 작업은 힘들고 때로는 논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더구나 1734년 마드리드의 알카자르 궁의 화재로 그녀의 작품들이 많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런 노력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앙귀솔라가 그 시대에 했던 것, 즉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어머니, 아내로서의 여성의 역할이 아닌 전문적인 화가로서 사회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공고히 한 것은 오늘날의 페미니스트의 활동이나 이념과도 다르지 않다. 지금도 미술사가들에 의해, 앙귀솔라를 비롯하여 역사 속에 숨겨진 수많은 여성 미술가들을 편견의 어둠 속에서 발굴하고 재평가하는 일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언젠가는 알려지지 않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뿐 아니라, 다른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들이 우리 앞에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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