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어떠한 조직에서 안온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내가 너무 잘났거나, 혹은 누군가의 우산아래 있거나. 찢기건 빗살만 남았건 우산은 우산이었던 것이다. 소시오패스 사수를 제치고 만난 대표는 벌거숭이 수컷 오랑우탄이 연상되는 모습 그 자체였다. (**'01화 - 아마도 박애주의자의 우당탕탕 성장일기.' 내용 다시 보기) 자신이 고고한 학인 줄 알고 우아한 날갯짓을 하는 줄 알지만, 그가 내두르는 혀끝에서 나오는 것은 자신이 아닌 남들의 가슴을 후려 치는 커다란 주먹임을 그는 모르는 듯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입사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유튜브에 내가 검색했던 것은 '나르시시스트 대처법' 이였다. 나의 강력한 생존 본능이 이곳에서의 강렬한 경험을 직감이라도 한 듯 열심이었다. 그곳에서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말했던 방식은 '회색돌 기법'이라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꽤나 오싹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본인을 지키기 위해 자신보다 더 다채롭고 감수성이 풍부해 보이는 사람들을 골라 옆에 두는데, 이는 언제든 그들을 공격해 자신이 우월한 존재임을 자각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해석을 가미한 요약본임.)
(출처: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 - https://www.youtube.com/watch?v=kFm1EDPT7MU&t=1s)
낙인을 찍고 봐서인지, 처음에는 대단해 보이던 사람도 점점 공포스럽게 느껴졌고 나중에는 불쌍하다 느껴질 지경이었다. 본인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극도의 폭력성을 띄다니, 그에게 대체 어떠한 과거가 있었는지, 어떤 결핍이 있는 것인지 감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지에 집중하는 날들을 보낼 뿐이었는데, 사수라는 최전선의 방패막이 사라졌을 뿐이다.
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많이 봤고, 듣지 말아야 할 말들을 듣기도 했지만 흐린 눈과 닫은 귀를 장착하며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대표의 놀이터에 불과했던 좁디좁은 세계관을 그나마 아름답게 보기 위해 노력한 시기가 있었다. 벨벳 재질의 소파에 누워서는 당연한 본인의 직무에 대해, '떠먹여 주면 답해드릴게요.'라는 말을 시전 했다. 지친 척 거들먹거리며 누워있던 그에게 '그럼 뷔페로 차려드리겠습니다!'라며 안일하게 응대했던 내 지난날을 원망하듯 곱씹기도 했다. 잿빛이라고 자부했던 날들에 그는 나를 어떤 색의 돌으로 바라봤을지 께름칙한 상상으로 이어졌다.
그 사람이 언젠가부터 우매하고 안일한 '무의식'이라는 우리 속에 스스로를 가두며, 잠재된 본능에 충실한 짐승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축적된 시간 동안 그를 관찰하며, 그가 의식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이 조금도 없다는 것에 의구심을 느끼면서 차차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자 어느 날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나도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나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는 요즘의 내 모습이 그에게서 겹쳐 보이면서 '혹시라도 내가 나르시시스트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물음을 품기도 했다.
타인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고 인지하는 타산지석의 자세가 있는 것 자체가 '그렇게' 되지 않게 할 거예요.
지난해부터 꾸준히 만나온 신경정신과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말을 듣고는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곳에서의 내 정신적 안위가 보장된다는 말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저분하더라도 그의 무의식을 읽어내야만 했다. 왜 굳이 살아내려 노력했는지 지금은 참 우둔했다 싶지만, 남은 일에 대한 책임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예의였다 말하고 싶다. 누군가의 무의식을 이해하고자 함은 다른 말로는 그 사람의 '방어기제' 알고 건드리지 않기 위함이라 설명한다. 흔히 말하는 '발작 버튼'을 건들지 않고 나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결말을 위함이었는데 점차 이것은 오롯이 대표, 그 사람만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극도로 매몰된 서비스 기획 패러다임에서부터 본능에 충실한 남성이 선호하는 반듯하지만 섹시한 여성상까지, 내가 알게 된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 무의식의 스펙트럼은 넓고 다양했다. 나의 무의식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던 것이 시작이었는데 그걸 타인을 이해하는데 써버리다니, 거기다 보편적이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인간에게, 정말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게다가 입사 전 정의했던 나의 박애에 대한 얕은 확신에 더해 홀로 정의한 사랑 방식을 적용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질문' 그리고 '기다림'이었는데, 결코 만족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가당치 않은 방식이었다.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이 흔히 아는 속담에 지나지 않는 짓이었음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주, 다행이었다.
사랑할 사람도 고를 줄 알아야 하는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순수하고 열정적인 박애주의자에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아플 수 있는지를 몸이 상해가며 체험한 일이었다. 마지막 즈음엔 금요일마다 급성 장염으로 내과에 쓰러지듯 찾아갔다. 늘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체력과 에너지는 월, 화, 수, 목 4일을 거치면 긴장과 함께 바닥났고, 굳건히 버티던 신체가 풀어지며 살려달라 신호를 보냈던 것이겠지.
나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애처로움'이라는 감정으로 귀결하고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해질 줄 알아야 하는 사람 그리고 강자가 약자에게 상처를 주기에는 너무 약해졌을 때 떠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약자다. - 133p
살기 위해서 고전 책을 몇 권 펼쳐보다 한 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에 줄 쳐둔 부분이 다시금 선명히 보였다. 그렇다 나는 약자였고, 계약서 상에도 을이자 떠나야 할 사람은 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표는 늘 자신만큼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없냐는 우는 소릴 해댔지만, 그는 다른 이들을 약자로 만들고 있음을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알지 못할 거다. 그래서 정말 짠--하고 애잔하다. 이제는 그날의 동료들과 술잔이나 '짠'하고 싶은 마음만 남았다.
연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들의 결핍과 방어기제가 보인다. 인생에 굴곡과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의 것들도 안타깝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것도 안쓰러운 줄 아는 것, 그게 나다. 그런 내 눈은 언제까지 따스할지, 어느 순간에 차가워질지 모르는 것도 맞다만 뜨겁기만 한 것보다는 나아졌다는 게 지금의 결론이다.
여기에 잠깐 방어기제를 알아채는 힌트를 남겨본다. 우선 누군가가 강하게 부정하는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을 살펴봐야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는 말을 다들 쉽게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소통이 안 되는 느낌이 올 때는 그쪽 혹은 내 쪽에서 어떠한 벽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아마도 미미한 공격성을 띄는 본능적인 생명체에 지나지 않을지도.
(출처: 핀터레스트)
뼛속부터 치열한 경쟁으로 구조화된 얼음장 같은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따뜻한 눈빛을 찾았다면 그것은 행운이겠다. 나도 그저 그 속에서 존재하며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사람과 환경을 찾아다니는 어린양에 불과하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의 행운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체온보다는 따뜻한 38도쯤의 온돌과 같은 인간상에 머물러 있길 노력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