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 선운사에서
나는 이 시집을 잃어버렸습니다. 누구에게 준 걸지도 모릅니다. 오늘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 권을 다시 주문했는데 2015년에 개정판이 나왔네요. 초판은 1994년도에 나왔고 남색 바탕에 자전거가 그려져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이고, 이건 「꿈의 페달을 밟고」네요. 심지어 자전거도 표지에 없습니다. 이 시집도 좋습니다. 「돼지들에게」는 취향이 나뉠 수 있지만 이 둘은 그냥 가지고만 있어도 좋습니다. 언제고 또 최영미 시인의 시가 여기에 올라올 겁니다.
무슨 말을 덧붙였다가 시를 망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시야 안 그렇겠습니까만, 좋아하는 시를 보니까 한 글자를 쓰기도 어렵네요. 맨 처음 좋아했던 시인은 함민복 시인이었고 그 다음이 최영미 시인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게 최영미 시인은 90년대 중후반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내가 이 시집을 잃어버렸을 리는 없습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주었겠지요. 돌려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누군지도 모르고.
힘들여 잊은 사람이 이렇게 기억납니다. 한참을 들여 잊었는데 이렇게 불쑥 기억이 납니다. 그리도 힘들여 피워낸 꽃이 그리 쉬이 져 버리고, 한 순간에 진 꽃이 사라지는데는 또 얼마나 한 시간이 걸리는지. 「돼지들에게」에는 시간이 흘러 선운사에 간 시인의 모습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지요. 사건도 그대로이고 장소도 그대로인데 사람이 바뀌어 잊혀집니다.
절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요. 놀이터라든가, 성당이라든가, 교당이라든가 말입니다. 절은 도대체 무슨 힘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시의 제목으로도 차고 모자람이 없을까요. 어떻게 이런 세속적인 감정을 선운사라는 단어는 담담히 받아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내가 바뀌면 절도, 꽃도, 시도 다 잊혀질 것입니다.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시인, 창비, 2015년(초판 출간 199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