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시인, 대결
이상국 시인의 시가 좋았던 걸 잊고 있었습니다. 절판되지 않았네요. 이 시집은 꼭 사야 합니다. 이번에 시집을 다시 읽으며 제가 찍은 시는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봄 밤', '소문', '대결', '낙타를 찾아서', '물 속의 집', '禪林院址에 가서', '내원암 가는 길', '성묘', '작은어머니', '제삿날 저녁', '남대천', '제초제와 봄', '상복리 年終會', '삼포리에 가서 1', '관을 팔며' 이상입니다. 그러니, 이 시집은 꼭 사야 합니다!
'낙타를 찾아서'와 이 시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오늘 완성된 것과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저는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걸 고릅니다. 시인의 다른 시집으로는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시집보다는 이 시집이 좋았는데,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가진 질박함과 거칢이 좋았습니다. 제 기억에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에 담긴 시들은 보다 부드럽고 세련된 모습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완성미 있는 작품들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따금 생각나는 작품이 있습니다. 영화로는 「매드 맥스(Mad Max:Fury Road)」, 소설로는 「야간비행(Vol de Nuit)」입니다. 이 시를 보며 두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꽃'과도 비교해볼만 합니다. 두 시는 데칼코마니처럼 닮았습니다. 함민복 시인이 허공에 핀 꽃을 향해 담을 쌓다 실패했다면, 이상국 시인은 제자리에 선 그 모습 그대로 부러져나갔습니다. 함민복 시인에게서 결연함이 느껴진다면, 이상국 시인에게서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말조차도 수용적으로 들립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함민복 시인이 슬픔이란 내면의 감정, 보다 인간적인 감정에 기댄 반면, 이상국 시인은 자신을 해치는 일까지도 받아들이게 하는 거대한 힘에 복종하였기 때문일 겁니다. 이상국 시인은 슬픔의 힘으로 시를 쓰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지만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간 것처럼 보입니다.
대결
큰눈 온 날 아침
부러져나간 소나무들 보면 눈부시다
그들은 밤새 뭔가와 맞서다가
무참하게 꺾였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공손하게 몸을 내맡겼던 게 아닐까
조금씩조금씩 쌓이는 눈의 무게를 받으며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빛나는 自害
혹은 아름다운 마감
나는 때로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이상국 시인, 창작과비평사, 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