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인, 꽃
누군가 나를 보고 애틋함을 느낀다면 그건 그가 느낀 감정입니다. 그러니, 나는 괜찮아란 말은 어울리는 대답이 아닙니다. 이미 감정의 주인공이 그에게로 넘어갔으니까요. 난 그를 더 알게 될 기회를 마주했습니다. 내가 할 말은 '너는 어떻게 생각해?' 입니다.
이 시는 '꽃'이라는 제목보다는 첫 연이자 첫 행, 그리고 시집의 제목인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계라는 말 뒤에는 안과 밖, 너와 나, 이것과 저것, 인 것과 아닌 것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그러나 시인은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고 입을 땝니다. 달이 그림자를 보듯 그림자가 달을 봅니다. 거기에는 달과 그림자뿐입니다. 네가 나를 보듯 내가 너를 보고, 이것이 저것과 다른 것처럼 저것도 이것과 다릅니다. 경계는 추상어입니다. 사실, 경계라는 건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시작한 시는 결국 허공에 뿌리박은 채 관념의 가지를 뻗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움트는 현실로 내려온다한들 허공에서 꽃피운 시가 건드릴 수 있는 삶은 제한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인간세계로 내려올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되어준 건 그가 눈물로 삶을 바라보았다는 사실입니다. 꽃은 텅 비어 있습니다. 꽃은 사랑스럽지 않고, 아름답지 않고, 향기로워는 보이지만 그것도 심심하게 지나칩니다. 시인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요.
그는 감각과 인지의 주체입니다. 그는 받아들이는 척하다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라는 질문은 지배욕입니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에서 화자와 시적인 것 사이의 투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연이 나머지 연들을 엮었습니다. 질문을 해결하지 못한 시인은 고통스러웠을까요? 시에 질문을 남겨둔 채로 시인은 어떻게 시를 마무리지었을까요.
함민복 시인의 시 중에는 재치있는 작품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시에서 엿보이는 시인의 모습은 그가 그리 부드러운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예술가의 고통을 독자가 알 수는 없습니다. 예술가의 재능과 그의 괴팍함을 취사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그가 눈물로 삶을 바라보았다는 사실이 시를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갈팡질팡하며 한걸음, 한발자국 나아갈 길을 찾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는 해결하지 못한 질문을 두고 시를 떠났습니다. 시인도 시적인 것도 서로를 압도하지 못했습니다. 경계에 핀 꽃이 되었습니다.
꽃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함민복 시인, 창비,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