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간절함에서 살아있음을 발견하는 일

최금진 시인,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by 김세종

아우구스티누스 혹은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둘 중 한 사람이 가르침을 청하는 후학에게 했던 말입니다. 쉬운 것에서 시작하여 어려운 것으로 나아가라. 강줄기를 따라 대해에 이르라. 이 시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부터 풀어봅니다.


시의 제목처럼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쁩니다. 그렇다면 로또를 사는 건 좋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에 드러난 감정과 행동을 보면 로또를 사는 게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악몽이라든가, 눈을 마주치치 않는다던가, 돈을 향한 갈망과 증오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은 모습. 주위를 흘끗거리고, 헛기침을 하며, 창밖 사람들을 노려보는 모습. 나지막히 내뱉는 발화자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발화자도 로또 사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알게 됩니다.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는 말은 우리가 알던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다른 의미입니다. 로또를 사는 건 좋다와 대비되는 표현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무언가입니다.


작품에는 심장이 있습니다. 팔다리가 없어도 그것이 살아있음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하는 그 무엇입니다. 냉혹한 표현이지만, 작품의 팔다리를 잘라보면 압니다. 그러고도 그것이 살아있는지를 봅니다. 이 시의 심장은 '삶'입니다. 노년기에 지나간 인생을 돌아보며 자기와 먼 이야기처럼 읊는 풍경 같은 삶이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며 뭍으로 물가로 악착같이 발버둥치며 다가가는 움직이는 삶입니다. 그것을 직접 드러낸 표현이 '왜 사느냐'입니다. '왜 사는가'입니다. 로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로또를 '사는' 게 삶을 '살아내는' 것과 동치되었습니다. 그 사는 것이란 간절히 비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즐거움, 기쁨, 아직도 살아있다는 안도감과 평화, 이런 게 아닙니다. 이 시에서 산다는 건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드러난 부분이 '뭔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없다는 부분입니다. 이제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시에서 심장을 빼내고 팔다리만 남겨봅니다. 잔인한 일이고, 완성된 작품을 내놓은 시인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지만, 이 일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시의 심장을 로또를 사는 것과 삶을 살아내는 것과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애닳음의 동치로 보았으므로, 이 표현들이 포함된 문장을 잘라냅니다. 시인이 심장과 팔다리를 이어두었으므로 오히려 그 사이를 구분해 간격을 띄웁니다. and의 부정이 or인 것과 같습니다.



(제목 없음)



로또가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지

로또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끝자리를 분석하거나 홀수 짝수를 조합하는 일은

여느 사무직과 다르지 않다


이 늦은 밤에 왜 또 여기로 왔는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문을 쓰레기통에 구겨넣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찍는다


오십이 넘은 사내는 누가 볼까봐 손을 가리고 찍는다

술냄새에 절어 들어온 사내는 앉자마자 묵상을 한다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은 줄을 서지 않는 자들을 무섭게 흘겨본다

순서를 어기는 것은, 누군가 자신을 앞서가는 것은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일

집착은 때 묻지 않은 종이와 같아서

싸인펜을 쥐고 있으면 또 한번 막막해진다

예수님을 부르고, 조상님께 기도하고, 아이 생일을 떠올리며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이라도 달듯

쩔쩔매며, 굽실거리며

두툼한 돈뭉치를 한번이라도

멱살처럼 움켜잡아보고 싶은 자들에게


꼭 당첨되세요, 주인 남자의 빈말은 그 어떤 복지정책보다 낫고

코미디 프로는 복권 추첨 프로와 같은 시간에 나오며

주말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로또방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절망을 배당받는다

주위를 흘끗거리며, 헛기침을 하며, 창밖 사람들을 노려보며



이것은 이 시를 절망과 슬픔의 시이자, 자기암시에 불과한 희망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사실주의적인 시라고 서점과 출판사가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팔다리입니다. 이제 심장을 볼 차례입니다.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왜 사느냐,를 왜 로또를 사느냐,로 이해해도 무관하다


로또를 사지 않는 10%의 고소득층은 얼마나 좋을까

로또를 사지 않아도 천사가 지켜주니까

왜 사느냐,를 묻지 않아도 되니까


왜 사는가, 왜 로또를 사는가, 묻지 말자

로또를 안 사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죄질이 나쁘다

그게 비록 종잇조각에 불과할지라도

뭔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시가 생(生)의 시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시의 빛은 숨겨져있습니다. 이제 시의 제목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로또를 안 사는 게 나쁜 건 그것이 죽은 것이며, 간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또를 사지 않는 사람들은 간절하지 않기에 살아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결여된 간절함은 생의 징표였습니다. 그들은 간절하지 않으므로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쁩니다.


절망과 슬픔, 냉소가 깃든 사실주의적 시가 다르게 읽힙니다. 잘라둔 팔다리에 생기가 돕니다. 그들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끝자리를 분석하고 홀수와 짝수를 조합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찍고 누가 볼까봐, 무언가 영감을 줄까봐, 누군가 나보다 앞서갈까봐, 막막하게 싸인펜을 쥐고 예수와 조상을, 아이 생일을 떠올리며 그토록 증오하는 돈을 어떻게든 움켜쥐고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또 경계하고, 또 괜찮은 척 하며, 또 증오하는, 이 간절함에서 생의 증거와 살아있음을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의 빛이었습니다.


저는 시가 가진 힘을 좋아합니다. 이 시를 다른 시들과 다르게 하는 그 무언가입니다. 우리가 로또라는 종이 혹은 사건에서 쉽게 생각해내는 비참과 갈망, 노골과 수치가 아닌 처음이자 생소한 그 무엇입니다. 그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작품에 숨겨져 있습니다. 로또를 사는 사람의 간절함은 그가 그 순간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증거였습니다.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로또가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지

로또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끝자리를 분석하거나 홀수 짝수를 조합하는 일은

여느 사무직과 다르지 않다

왜 사느냐,를 왜 로또를 사느냐,로 이해해도 무관하다

이 늦은 밤에 왜 또 여기로 왔는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문을 쓰레기통에 구겨넣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찍는다

로또를 사지 않는 10%의 고소득층은 얼마나 좋을까

로또를 사지 않아도 천사가 지켜주니까

왜 사느냐,를 묻지 않아도 되니까

오십이 넘은 사내는 누가 볼까봐 손을 가리고 찍는다

술냄새에 절어 들어온 사내는 앉자마자 묵상을 한다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은 줄을 서지 않는 자들을 무섭게 흘겨본다

순서를 어기는 것은, 누군가 자신을 앞서가는 것은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일

집착은 때 묻지 않은 종이와 같아서

싸인펜을 쥐고 있으면 또 한번 막막해진다

예수님을 부르고, 조상님께 기도하고, 아이 생일을 떠올리며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이라도 달듯

쩔쩔매며, 굽실거리며

두툼한 돈뭉치를 한번이라도

멱살처럼 움켜잡아보고 싶은 자들에게

왜 사는가, 왜 로또를 사는가, 묻지 말자

로또를 안 사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죄질이 나쁘다

그게 비록 종잇조각에 불과할지라도

뭔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꼭 당첨되세요, 주인 남자의 빈말은 그 어떤 복지정책보다 낫고

코미디 프로는 복권 추첨 프로와 같은 시간에 나오며

주말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로또방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절망을 배당받는다

주위를 흘끗거리며, 헛기침을 하며, 창밖 사람들을 노려보며



「황금을 찾아서」, 최금진 시인, 창비,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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