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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un 14. 2023

1.생속인 아가씨가 엄마가 되어 보니

(막강한 사춘기를 겪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들 엄마 성장기를 시작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과 성찰을 요하는 건지 잘 몰랐다. 아니 아들이 애를 태우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이지 않았다면 끝까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아가씨일 땐 내가 모든 걸 잘하는 줄 알았다. 돌이켜 보면 내 아들만큼이나 선배님들 앞에서 철 없는 모습을 보일 때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오십대 대선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고, 000선생. 아직 생속이라서 그래."

  이십대 땐 그 생속이란 말조차도 듣기가 거북했다. 아들을 둘 키우며 뜻하지 않은 벽에 부딪치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젠 알 것 같다. 속이 썩지 않아서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거나 견뎌내는 힘도 약하고 성숙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20대의 나도 생속이었으니 이제 겨우 10년 조금 더 산 아들이 생속인 건 어쩌면 당연한 진리다.

   내 속이 썩어서 우리 아들이 조금 야들해지고 몰랑해질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할까?


  직장생활 24년, 쉴틈 없이 달려왔다. 성취욕구가 강한 사람이라 뭔가 직업적인 성과를 이루고 싶었고, 돈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직업이 아님에도 열심히 벌면 많이 모일 줄 알고 그저 무식하게 일하고 아끼고 저축하며 살아왔다.

  결혼 16주년이 곧 다가오고 있으며 그럭저럭 편안한 정도의 삶은 유지하고 있다.

  높이 쳐다 보면 끝도 없기에, 보잘 것 없지만 이 정도의 재산 축적과 경력 유지에 만족하고 살려고 노력 중이다.


  주말 부부를 하면서 애 둘을 이 악물고 키웠다. 아이 키울 때 첫 3년이 중요하다는 명제를 수도 없이 들었건만 휴직도 불사하고 직장에 목숨을 맸다. 아이보다 내 직업적 성취가 1프로라도 더 중요했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그 동안 내가 바랐던 직업적 성취는 저 멀리 끝이 안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와는 멀어졌고, 지금은 하루 하루 열심히 일하고 월급날 되면 월급 꼬박 받고 있는 삶에 만족 하는 수준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난 왜 그렇게 이를 악물고 혼자 남자 애 둘을 키우며  직업적 성취에 목숨을 걸었던가 회의감이 밀려온다. 그게 인생이 주는 의미가 대체 무엇이길래?(아마 우리 아들이 막강한 반항기를 나에게 선물로 주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직업적 성취나 자아 실현만이 세상의 전부인 양 살고 있을 것이다.)


  아들은 4학년 2학기부터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을 일으키며 반항을 하고 있다. 조짐은 유치원 때부터 있었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건 1학년 때부터였다. 아이 생애 첫 삼년을 아이보다는 1프로라도 나를 더 위하며 살아서일 거란 자책이 밀려온다. 


  자기 전이면 엄마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I love you를 빠른 속도로 말하던 여리고 착한 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어긋날 대로 어긋나 버려 어디서 손을 대야 모르겠는 지경까지 가기도 했고 지금은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집에선 끊임 없이 고성이 오가고 엄마한테 꼬박 꼬박 대꾸하는 아이의 행동을 참지 못해 충돌하는 게 거의 일주일에 2,3번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일을 벌이고 엄마한테 최대한 반항했다. 세상의 상식을 뒤엎는 행동들을 반복하면서.


  5년의 충돌은 나에게 고민을 하나 던졌다.

  나는 직업적 성취를 왜 이루려고 했던 걸까? 나는 직업을 통해 얻어지는 자아실현을 왜 그리 중요시 여겼던 것일까? 돈을 버는 것에 왜 그리 의미를 부여했던 것인가?

  대체 무엇을 위해서? 

  행복은 그저 일상을 열심히 수행하는 것에서 나온다는데 난 대체 내 일상을 얼마나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길래 이렇게 엉망진창인 삶이 내 앞에 주어진 것일까라는 수도 없는 고민을 했었다.


  풍족하지 못해 늘 절약해야 했던 우리집의 상황이 눈 앞에 떠오른다.

  어린 시절 마로니 인형을 가져 보는 것이 내 꿈이었다. 친구가 캠핑을 가자고 했지만 돈 3만원은 80년대 우리 형편엔 너무 큰 돈이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시던 엄마. 꼬맹이 3학년 아이가 책을 읽고 싶다고 했지만 교과서나 읽어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어른이 되어서 내 상황이 내 욕심만큼 되지 않을 땐 그런 아버지 어머니를 원망하곤 했었다. 이젠 모든 걸 자식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게 답이 아니란 것도 알고,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부모님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도 해 보게 된다.

  하지만 유년시절의 풍족하지 못함과 이루지 못한 욕구가 때론 슬픔이 되어 때론 좌절이 되어 내면 밑바닥에 항상 똬리를 틀고 있다. 그래서 직업적 성취, 자아 실현, 내가 벌어서 쓸 수 있는 돈 등에 내가 너무 집착했던 걸까?

   엄마인 나에겐 그런 결핍이 큰 것이었기에 열심히 살아 물질적으로 비교적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두었건만 우리 아들은 뭐가 불행한 건지 걷잡을 수 없이 엇나가기만 한다.


  돈을 왜 벌고 일은 왜 하는 걸까?

  아이에게 마로니 인형을 사 주기 위해서? 직업적 성취를 통해서 남들에게 그럴 듯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김밥 장사를 해서 평생 모은 돈을 아낌 없이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처럼 사심 없이 내 것을 낼 줄 아는 멋지고 희생적인 삶을 위해서? 

  문득 삶이란 게 큰 줄기의 목적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바뀔 때마다 그 때 그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학생일 땐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인일 때는 일에 충실하고, 엄마일 땐 온전히 엄마로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상황에 맞는 역할 전환이 중요함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유독 자식을 자신의 분신인 양 생각하고 사는 한국사회의 한 엄마로서 막강한 사춘기를 겪는 아들을 바라보면, 삶의 목적도 돈을 버는 목적도 다 상실해 버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들에게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있는 방향을 잡아줄 사람은 엄마인 나라는 것을 알기에 온갖 노력과 수고를 하며 오늘도 나는 애쓰는 엄마이다.

   '애쓰는 엄마' - 나를 격려하고 다독이자. 그래 넌 잘하고 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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