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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몇 번 가보셨나요?

2번의 실패, 1번의 성공

by 나무 향기

정신과에 가보지 않으신 분들이 훨씬 많을 겁니다. 정신과는 백화점 옆 시외버스 터미널 같습니다.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1시간 기다리는 건 애교입니다. 2시간 가까이를 기다린 적도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3군데 정신과를 가봤습니다. 첨부터 소아정신과를 가지 않은 게 잘못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지나간 일은 다 후회네요.


첫 번째 정신과는 동료 교사가 추천해 주신 곳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중소도시지만 인구가 60만 인 곳입니다. 그럼에도 대도시 대비 병원이 그리 많지도 않습니다. 처음 이사 왔을 땐 동네에 이비인후과가 없어서 답답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뭐 이런 이상한 동네가 다 있나 했습니다. 원래 살던 곳엔 돌아서면 한 블록 건너 이비인후과인데요.

동료 선생님이 추천해 준 정신과는 의사 선생님이 정신과 쪽으로 지역의 협회 대표 같은 걸 하시고 교육청과 연계해 무슨 직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한 용어는 기억이 안 나네요. 아무튼 그런 이유로 믿고 갔건만 아이 한 번 쓱 보고 옆에 부설되어 있는 상담센터로 보내버립니다. 직함이 전문성을 대표하는 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경험입니다. 정말 대단한 명의라서 직함을 가진 경우도 있겠지만 어느 분야건 실적이나 로비 센 말발 등으로 직함을 가지는 경우는 허다할 테니까요.

의사의 무신경하고도 성의 없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부속 상담센터에서 상담은 시작되었습니다. 아가씨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끽해야 20대 중반밖에 안 된 아가씨 선생님. 상담은 이어지지만 진전은 없습니다. 아이 놀이 상담 후 10분의 부모 교육. 엄마 사랑이 중요하다는 뻔한 소리만 맨날 듣습니다. 사랑이 중요한지 몰라서 온 게 아닌데 말입니다.

두 번째 정신과.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지역 편에서 나온 정신과였습니다.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 찾아간 곳입니다. 의사가 무신경하긴 매한가지입니다. 언제나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진료실에 들어서면 한 번 빤히 쳐다보던 의사의 눈빛. 저승사자 느낌이었습니다. 감정이 1도 안 느껴지는 포커페이스. 이해합니다. 정신과 선생님이 감정이입되면 아마 그 직업을 그만둬야 될 겁니다. 얼마나 우울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텐데요.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단 생각이 듭니다. 그 빤히 쳐다보는 눈빛 이후로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지고 자판만 두드려 댑니다. 우리 아들은 표현을 하지 못하는 아이니 그땐 표현을 더 못했습니다. 아이에게 답을 들을 수 없는데 답을 끄집어내려는 노력도 안 합니다. 그저 자판 두드리는 게 의사의 소명인 것처럼 보입니다. 게임은 좀 줄었냐고 매번 묻습니다. 그대로라고 하면 줄이도록 노력하셔야죠 합니다. 몰라서 온 거 아닙니다.

'샘, 줄이는 방법을 알면 제가 당신을 이렇게 몸소 찾아왔겠습니까? 매번 1시간 이상 기다리는 수고를 해가면서까지요? 그걸 알면 제가 책 내고 제가 병원 차립니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 차마 내뱉지 못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예의 바른 선생님이니까요. 문제아를 둔 엄마니까요. 저까지 정신에 문제 있는 사람 취급받기 싫은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어느 날 아들이 병원에 절대 안 따라오려고 해서 혼자 가서 1시간 넘게 기다린 날.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의사 선생님 참 야박합니다.

자기들은 벌금을 물어야 되니까 대리처방은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예 접수할 때부터 아이가 왔는지 확인을 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지금 다니는 정신과는 그렇게 하거든요.

읍소를 했습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선생님. 한 번만 처방해 주십시오. 이번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여지없이 빤히 쳐다보는 눈빛으로 말합니다.

"안됩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의사 선생님입니다. 정신과 의사는 좀 따뜻하길 바라는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립니다. 네 또 압니다. 정신과 의사가 상대방 이야기와 감정에 몰입하면 대한민국 정신과 의사가 다 정신병 걸릴 테니까요. 하지만 정도가 지나쳐도 너무하단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의사가 아니라 속상합니다. 아는 의사가 없어서 속상합니다. 별의별 감정이 다 스쳐 지나갑니다.

세 번째도 동료 선생님의 추천으로 방문했습니다. 사람이 터져나가는 건 어느 정신과나 똑같네요. 둘째를 정신과 의사 시키고 싶다는 실현 안될 상상도 해봅니다.

2번째까지는 풀배터리 검사라고 아이에 대한 종합적인 검사를 실행합니다. 5년 전에 40만원의 비용을 들였으니 지금은 또 올랐겠죠? 여기 병원은 풀배터리 검사는 하지 않습니다. 간단한 거 같지만 긴 설문지를 탭에서 답하게 합니다. 시간이 꽤 걸립니다. 20-30분이 걸리네요. 그리고 또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드디어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우선 사람의 말에 귀기울일 준비가 되신 분으로 보입니다. 말씀을 많이 해주십니다. 아이의 상태를 이것 저것 친절하게 물어주십니다. 첫 번째는 의사 한 번 보고 끝이었고, 두 번째는 자판만 두드리는 의사선생님이었고 5분이면 끝나버렸습니다. 이번 선생님은 10-15분까지 시간을 할애해주십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뚫리는 느낌입니다. 제 진료가 끝나고 아들이 들어갑니다. 아들은 표현이 짧으니 길게 대화가 안되나봅니다. 저보다 일찍 나옵니다. 다행히 아들도 선생님이 싫은 눈치는 아닙니다.

그렇게 세 번째 정신과 진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직군의 직업이든 다양한 사람은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세상 사람이 다 똑같다면 어울려 조화를 맞추기도 힘들 겁니다. 그래도 최소한 정신과 의사라면 마음을 다루는 의사라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따뜻한 기운을 풍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정신과라는 곳에 발을 디딜 때도 수많은 고민과 염려, 정신과에 가야 된다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 등으로 무장한 채 왔을 환자들이 대부분일 테니까요.

약을 먹어야 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약 먹는 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쳐도 되나 생각도 마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학교에서 약 먹는 티가 나는 사람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저한테 재잘 재잘 자기 이야기를 하고 동료들과는 때론 관리자 험담도 해 가며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평범합니다. 하지만 약을 먹기까지 많은 생각들이 괴롭혔습니다. 약을 먹어야 된다는 자괴감. 약을 먹는 사람이 애들을 가르친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세 번째 의사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잠재워줍니다. 뇌가 먹는 영양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라고. 내성도 없을 거라고 소량 처방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좋은 인연만 만난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내 기준에서 좋지 않은 인연도 좋은 인연으로 데려다 주는 디딤돌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두 번의 정신과 방문 실패가 세 번째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었으니까요.

저를 괴롭혔던 진상 교장선생님도 제가 주말부부를 청산하고 남편과 살림을 합치게 해 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셨으니까요.



세 번의 정신과 방문, 살면서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일입니다. 우리 집엔 경찰이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평생 도덕과 규범을 성실하게 지켜온 제가 경찰을 그렇게 자주 보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인생은 정말 내가 상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튀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 계시다면 정말 행복한 거구나 생각하십시오. 인생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걸 기본 전제로 깔고 살면 어떤 일이 닥쳐도 덜 괴롭겠지요. 예상치 못한 일이 닥쳤을 때 아 이럴 수도 있구나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 내 인생의 소나기라고 생각하십시오.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았을 때 소나기를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예상치 않은 비로 옷이 다 젖고 당황하지만 결국 날은 개이니까요.
젖은 옷도 말리면 되니까요.
인생도 흐렸다 맑았다 그게 보통이고 정상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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