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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un 16. 2023

위로는 그런 게 아니라고요!

위로는 내가 나한테 건네면 돼!

   "어머 어떡해요. 선생님이 예상했던 상황이 발생해서~. 이번 기회를 경험 삼아 내년에 도전해 보세요."

   "축하드려요. 능력자시네요. 그런 큰 상을 타다니. 저는 너무 부끄러워요."

     사실 쪽팔린다고 말했다.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나는 대도시에서 교대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19년간 근무를 했다. 그리고 떠나고 싶지 않던 내 고향을 떠나 지금 이곳 00도에서 근무 중이다.

   고향에선 교사들의 전근(이동)이 4년마다 이루어진다. 제2의 고향인 이곳에서는 이동 년수가 가지각각이다. 1년부터 최대 5년까지 근무하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내신서를 쓰고 이동한다. 그리고 00도 안에 있는 수많은 시나 군의 근무 기간이 8년 10년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다. 내 삶의 근거지인 00도 00시는 10년만 근무할 수 있다. 10년 후면 무조건 다른 시도로 떠나야 된다. 그럴 경우 1시간 걸려 출퇴근을 하는 곳으로 가면 그나마 다행이고, 도저히 출퇴근이 힘든 지역으로 발령이 나면 눈물을 머금고 이사를 해야 하기도 한다.

   나는 00시에 근무 연한을 4년 남겨 두고 있다. 4년 뒤면 둘째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 멀리 떨어진 곳에 발령이 나면 주말부부를 해야 될지도 모른다. 엄마인 내가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상황을 피하려면?

   점수를 따야 된다. 이동점수.

   

   점수 따기 - 통합학급 담임 되기(특수 학생이 있는 학급), 학생지도해서 상 타기, 표창받기 등등등

   

   한동안 이런 점수 따기와 거리가 먼 생활이었는데, 00시 근무를 4년 남긴 상황에선 점수 따기 돌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이들 글을 받아서 첨삭해서 글짓기 대회에 내기도 했고 한 달을 준비해서 00 대회 예선에 참여했다. 일주일 뒤인 어제 두근대는 마음으로 결과 공문을 열었는데 함께 참여한 우리 학교의 다른 팀들은 다 입상권에 들었는데 나만 똑 떨어졌다.

   띵! 멍! 허무! 공허! 최종적으로 부끄러움. 그리고 밀려오는 미안함.(우리 반 아이가 울어버려서)

   점심도 거의 못 먹고 버렸고 부끄러워서 어디 숨어버리고 싶었다.(나이를 헛먹었다.) 동학년 선생님도 교장 교감님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위로랍시고 무슨 말이라도 건네면 내가 더 한심해질 거 같아서.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교실에서 이 생각 저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는데 최고상을 입상한 선생님이 뜬금없이 방문하셨다. (참고로 친하지 않다.)

   "어머 어떡해요. 선생님이 예상했던 상황이 발생해서~. 이번 기회를 경험 삼아 내년에 도전해 보세요."


   대회 마치고 점심을 먹으며 내가 말했었다.

   "최악의 상황은 한 팀만 떨어지고 나머지는 상을 타는 거겠죠? 그럴까 봐 두렵네요."


 

   "어머 어떡해요. 선생님이 예상했던 상황이 발생해서~.(놀리는 건가?-난 마음이 넓은 사람은 아니다.) 이번 기회를 경험 삼아 내년에 도전해 보세요.(나는 학생 그 선생님은 격려하는 선생님 같음.) 점심 먹는데 두근거려서 밥을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냥 뭐~~ 어쩌고저쩌고~~~~"

  나를 위로하러 온 건가? 본인이 최고상을 타서 누군가에게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온 건가 헷갈리는 시점이었다.

   빨리 보내고 혼자 있고 싶었지만 축하드린다, 대단하다, 전국 대회 준비하시려면 힘들겠다 쓸데없는 말들을 계속 늘어놓고 있었다. (빨리 가시라고요. 부끄럽다고요. 참담하다고요.)

   기쁨을 한껏 누리고 싶어 들뜬 그 선생님께 빨리 가세요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기에.

   그 선생님의 속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 자기만 큰 상을 타서 정말 위로를 하고 싶었는지도. 하지만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나에게 점심시간까지 찾아오셔서 그런 말을 건네는 게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았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위로는 그렇게 건네는 게 아니라고요.

   상대방이 어떤 마음일지 생각하고 헤아리는 거라고요.

   부끄러워할 나를 위해 좀 모른 척해주는 거라고요.

   같이 붙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쉬움을 표현하는 거라고요.

   교훈을 주는 말을 건네는 게 아니라고요.     


  퇴근 후 친한 동료샘들과 수다를 떨며 맛있는 것을 먹으며 1, 2학년 꼬맹이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공유하면서 속상한 마음을 풀었습니다. 지금은 괜찮아요.

   위로는 내가 나한테 건네면 되는 거니까요!!

   지금 브런치에 썰을 푸는 것도 또 하나의 큰 위로가 되네요. 저에겐~.

  ( 아마 저보다 더 노력한 선생님들이 많았겠죠. 인생은 거저 얻어지는 건 없으니까요.)

  2023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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