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무척 따르는 93년생 후배가 있습니다. 후배라고 하기엔 다소 어색할 나이 차이입니다. 93학번과 93년생. 93으로 뭉치면 때론 친구 같고, 나이 차로 보면 엄마 딸 같기도 합니다.
첫 발령 나던 날 활짝 웃으며 인사하던 귀엽고 발랄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제가 이곳으로 오던 해 우리 학년에는 신규 교사가 둘이나 배정되는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젊음의 향기가 듬뿍 배어 나오는 때론 젊다는 표현도 미안할 정도로 아기 같아 보이던 두 선생님입니다. 그저 웃기만 해도 교직생활의 실수가 모두 용서되는 그런 나이입니다.
저럴 때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발랄한 모습의 두 선생님.
선배 선생님들에게 싹싹하고 항상 웃음기 머금은 얼굴입니다. 사회초년생으로 산다는 게 그런 거겠지요. 긴장하고 있어야 되고 어른들한테 밉보이지 않으려면 항상 웃어야 되고 겸손하게 모르는 걸 선배들에게 물을 줄 아는 미덕을 발휘해야 되고, 녹록지 않았을 겁니다.
그 꼬맹이 후배선생님과 무려 5년을 동학년을 했고 7년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제가 부장을 할 땐 깜빡하는 일이 있으면 현명하게 대처합니다. 부장님 이거 하셔야 돼요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단 제가 깜빡한 해야 될 일을 넌지시 물어보는 거죠. 상대가 민망하지 않도록 깜빡한 일을 생각나게 해주는 선생님입니다. 배워야 될 지혜입니다. 학년에 나누어야 될 것이 생기면 1등으로 달려와 도와주던 선생님입니다. 항상 부장님 같이 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가 입에 붙어 있습니다.
사 년 차가 넘어서니 학부모 다루는 것도 때로는 저보다 노련합니다. 이젠 그 꼬맹이 선생님한테 조언을 듣기도 하니 세월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속도는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분의 지난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 교직생활에 대한 애정이 속도에 불을 붙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꼬맹이 후배 선생님께 많은 걸 털어놓았습니다. 친구한테 털기엔 부끄럽고 엄마에게 다 털기엔 엄마의 염려가 걱정되고 제일 많이 들어주는 둘째 언니도 때론 힘들 거 같아 꼬맹이 후배선생님에게 종종 기댑니다.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안 키워봤지만 학창 시절 나름의 어려움을 겪었던 후배선생님은 열심히 들어줍니다.
"부장님. 00가 부족한 게 없어서 그런 거예요. 당장 이사를 가세요. 풍족하게 살고 모자랄 것 없으니 그렇죠. 결핍이 있어야 성장해요."
저도 아는 말이죠. 이사가 쉽지 않고 일부러 결핍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요즘 세상에 맞는지도 의문이고요.
어쨌든 꼬맹이 후배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줍니다. 열심히 들어주고 걱정과 염려의 시선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끔 말이 너무 하고 싶은데 할 상대가 없을 때는 너무 답답하거든요. 괜스레 카톡을 뒤지며 이 사람 저 사람 문자 보낼 사람을 찾아 헤매곤 하니까요. 사람은 말을 들어줄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그 꼬맹이 선생님은 여러 가지 어록을 남깁니다. 선생님의 처세에 대해서요.
"애들이 행복하면 좋잖아요. 때론 거짓말도 필요해요."
"애들이 와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면 저는 그래요. 안 궁금해. 그러면 말하는 아이들도 하나 둘 줄어들어요. 물론 웃으면서요."
"엄마들한테는 제가 당신 아이를 너무 걱정합니다라는 전제를 먼저 깔아줘야 돼요. 그래야 마음을 다독일 수 있어요."
"인생은 즐거워야 한다고요. 부장님. 즐겁게 살아요."
다른 선생님이랑 이 후배 선생님이랑 만나면 여러 가지 어록들을 정리해 놓곤 합니다.
아무래도 약아빠지지 못한 제 성향상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긴 힘든데 여러 가지로 배우네요. 꼬맹이 샘한테.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느는 속도만큼 자연스럽게 저절로 지혜로워지고 현명해지면 얼마나 세상 살기가 쉬울까요? 책도 읽고 나름 생각도 하는데 지혜가 느는 속도는 아주 느립니다.
지혜는 책 속에서도 배우지만 나이를 떠나서 영근 사람한테서도 배웁니다. 삶을 더 살아온 부모님, 동료 교사들,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 친구들, 우리 꼬맹이 후배 같은 분들한테서요. 심지어 우리 반 애기들도 제게 많은 깨달음을 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건 없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요. 발 밑을 기어 다니는 여름 곤충들도 여름 햇볕에 익어가는 토마토도 깨달음을 주네요. 내겐 너무도 뜨거워서 피해 버리고 싶은 햇볕이 누구에겐 삶의 자양분이 된다는 걸, 그저 묵묵히 열심히 살면서 불평하지 않는 모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요. 행복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거지 별 거 아니라는 걸요. 그냥 살아가라고 말해주네요. 그냥 하루하루 살아나가면 되는데 생각과 고민이 삶을 너무 지배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