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개학이 자꾸 미뤄졌다. 늦게나마 개학을 했지만 처음으로 원격수업을 해야 했고, 출석 대면수업은 5월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그것도 초등 저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반쪽짜리 대면 수업이었다. 근무하던 학교는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과밀 학교라 대면 등교마저 홀수번 짝수번 번갈아 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1주일에 2번 내지 3번 오게 되는 등교일도 5교시의 경우는 교육부 지침에 근거해 원격수업을 대체한 학습지 배부로 이루어졌다. 거대학교다 보니 급식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서였다. 전 구성원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유일하게 벗어야 되는 급식 시간에 많은 사람이 몰리게 되는 상황이라, 감염병을 전파시킬 위험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여러 가지 공지를 코로나 이전보다 상세하게 많이 해야 했고, 전화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야 되는 상황도 늘어났다.
1. 문해력이 떨어지는 보호자, 귀찮아서 읽지 않는 보호자.
공지를 통해 매주 원격 수업에 대한 안내가 이루어졌다. 홈페이지와 E학습터를 통해서 원격 수업계획을 공지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접근성도 안 좋고 이용도 불편한 구닥다리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는다. 원활한 학습 진행을 위해서 학부모들에게 문자로도 안내를 했다. 일을 이중으로 하는 셈이었다.
문자로 안내사항을 보내기 위해서는 짧은 글도 전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다듬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을 들인 내용을 사진 파일로 보낸다고 모든 보호자들이 이해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학년 보호자들 중에는 의외로 짧은 문서를 해석하지 못하는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뿐만 아니라 A4 한쪽 분량도 읽기가 귀찮아서 무시해 버렸다가, 자녀에게 어떤 상황이 닥치면 교사에게 전화나 문자로 질문을 하는 경우도 꽤 되었다. 쏟아지는 약간은 황당한 질문에도 일일이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해야 했다. 사무적인 대답은 안된다. 문자는 항상 친절하게 시작하고 마무리지어야 하며 문자에 웃음마크나 물결표 2, 3개는 넣어줘야 된다. 자칫해서 문자로 오해를 사게 되면 1년 간의 학급 담임 역할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2. 끊임없이 질문하는 보호자.
출결 규정도 많이 바뀌었다. 열이 조금만 나거나 기침만 해도 조퇴를 시켜야 되니 보호자와 통화도 많이 하게 되었고, 감염병 때문에 자잘하게 바뀌는 출결 규정에 대한 안내도 끊임없이 해야 했다.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것들을 공지로 올리고 문자로 자세히 안내했음에도 쓱 흘려버리고 제대로 읽지 않는 부모들은 2차, 3차 다시 질문을 한다. 문자든 전화통화가 됐든 했던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3. 상갓집에서도 이어지는 학교 일
2020년에 2학년을 하고 있어서 저학년 첫 등교를 앞두고 있던 4일 전이었다. 시어머니가 예상치 못한 사고로 돌아가셨다. 첫 등교 수업이고 처음 반 아이들을 만나는 상황에서 학교를 빠져야 되니 걱정이 많았다. 거기다 학년 부장이었기에 학년 일에 대한 부담감도 있는데, 7일이란 긴 시간을 비워야 돼서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가시 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학부모들에게 문자를 넣었다. 시모상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임에도 첫 등교에 함께 하지 못함을 사과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3일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손님을 맞이하기도 바쁘고 슬픔을 참아내기도 힘겨운 와중에 학부모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중간중간 계속 답을 해야 했다. 3일을 끊임없이 휴대폰을 봐야 돼서 눈치가 보였다.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고 여기 와서까지 일한다고 같이 속상해하셨지만 눈치가 안 보일 수가 없었다. 수시로 울려대는 핸드폰 진동. 학모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공지하고 싶진 않았지만 대면 등교 첫날 학생들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죄스러워 시모의 상을 문자로 보냈건만, 조문을 표하는 문자는 단 두 건이었다. 그 외는 계속 이어지는 등교 관련 질문 폭탄들. 시간이 지나고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 차라리 답을 하지 않았더라면 답답해서 학교로 문의를 했겠거니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 당시는 첫 대면 등교라는 중요한 상황에서 시모상을 치르는 것이 학교와 학부모 모두에게 면목 없는 죄를 짓는 느낌이었으니, 할 수 있는 선택은 문자에 일일이 친절한 답을 해주는 것이었다.
이런 문자 폭탄을 피하고 싶어서 학급 밴드에 공지를 수차례 올려도 소용이 없었다. 학모들은 대다수가 선택적 읽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학급 밴드에 아무리 자세하게 공지를 해도 읽지 않았다. 읽더라도 잊어버리면 다시 찾아보면 되는데 귀찮아하는 부모도 꽤 있었다. 결국 밴드에 어떤 상황에 대해 공지했다고, 필요한 사항을 안내했음을 안내해야 했다. 2중, 3중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안내에 지치기 시작했다.
학모들의 사정도 이해한다. 저학년 아기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큰 아이가 있어봤자 4, 5학년 수준일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더 어린 동생을 양육하고 있을 상황이니 애 건사하기만으로도 정신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부모이니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고 있으니 33명마다 처해진 상황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만 번 상황을 이해하고 또 이해해서 친절하게 일일이 답하고 통화하고 있었지만, 사실 시모의 상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이 가슴 밑바닥까지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죽음 앞에 짧은 애도마저 표하지 않고 자신 아이들의 등교와 관련된 내용만 끊임없이 물어대는 그 상황을 마음 깊이까지 이해하긴 힘들었다. 또한 분명히 공가를 내고 학교를 빠져나온 상황인데, 상갓집에서조차 일하고 있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음에도, 죄인이 된 마냥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담임인 나의 현실이었다. 물론 마음 딱 먹고 끊어내지 못한 나도 잘못이다. 후회한다. 그런데 첫 등교를 앞두고 5일 공가를 다 쓰지 말고 출근하라고 했던 교감선생님 말씀 때문에도, 늦어진 첫 대면 등교를 앞둔 아이들 때문에라도 저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3. 학교 복귀, 여전히 끊임없는 문자에 대한 답
그렇게 힘겨운 일주일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왔지만 그 이후로도 달라진 건 없었다. 원격 수업과 불규칙한 등교로 인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문의들.
가정사도 힘들었다. 중 1이 된 큰아들도 엄마 없는 동안 원격 수업을 받았다. 제대로 들을 리가 없다. 원격 화면을 켜 놓고 게임을 하기가 일쑤였다. 엄마가 집에 없으니 밥을 챙겨 먹기도 힘들었다. 자연히 아들과도 전화 통화나 문자를 많이 하게 되었다.
4. 잘못 복사해 붙여 보낸 문자
어느 날 잘못된 행동에 대한 훈계가 담긴 장문의 문자를 아들에게 보내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클립보드에 그 문자가 복사된 상태였다. 그리고 보호자들에게 안내를 위한 복사된 문자를 보낸다는 게, 아뿔싸 우리 아들에게 보낸 그 문자를 보내 버린 것이다. 당시 휴대하던 폰에 동시에 33명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기능이 없었나 보다. 마지막 5명에게 문자를 보내는 순간 아들에게 보낸 문자가 복사되어 버렸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문자는 남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 별 수 없이 상황을 설명하고 빨리 지워달라고 부탁하는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못 봤습니다는 정말 점잖은 부모이고, 다 이해합니다는 적당히 점잖은 부모이고 아예 답이 없는 부모도 있었다.
맘카페에서 그렇게 선생들 욕을 많이 한다는데, 미용실에서 선생들이 그렇게나 가십거리가 된다는데, 나의 문자는 빼도 박도 못할 이슈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 어디선가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5. 두 개의 휴대폰
그날의 실수로 휴대폰을 결국 한 개 더 개통하게 되었다. 알뜰 폰에 대해서 정확히 몰랐던 관계로 기존 통신사에서 개통을 하고 요금제도 2만 원이 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폰 요금만 해도 이중으로 나가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투폰이나 투넘버 비용은 일 년에 5만 원이 전부다. 우리 학교의 경우는 교실의 전화로 외부 통화가 안되고, 외부 통화도 교실로 직통이 안 되는 관계로 상담 주간도 교사 폰을 써야 된다. 올해 들어 폰 요금제를 8000원 대로 바꾸었는데 상담주간이 있던 달은 결국 요금이 2만 원을 넘어갔다.
폰이 두 개가 되고 나니 마음은 편해졌다. 나와 가족들 사진 사이에 군데군데 끼어 있는 학급 아이들 활동 사진을 보지 않아도 되고, 저녁이면 무음으로 가방 속에 던져 놓아 버리니, 저녁에 오는 문의 문자나 전화에 답을 하지 않는 습관이 강제로 생겼다. 폰이 한 개였을 때는 받지 말자, 답하지 말자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학부모의 전화에 응답을 하고 문자에 답을 해야 마음 편해지는 일종의 강박증에 시달렸었다.
6. 교사 사생활에 대한 존중
교사들이 자비를 들여 폰을 두 개나 써야 되는 이 상황은 잘못되었다. 개인 정보를 철저히 여기는 사회이건만 교사들의 폰 번호는 늘 공개되어야 되고, 카톡 프사도 내 맘대로 못하는 상황도 잘못되었다. 교사는 여행도 못 가야 되는지 해외여행 사진이 올라와 있으면 방학이라 여행 다녀 좋겠다고 한마디 거드는 부모들도 있다.
최근 새내기 교사 사건으로 교사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추모리본으로 바뀌자 우리 아이들 상처 입을 거 생각해서 바꾸라고 민원을 넣은 학부모가 있었다는 기사도 뉴스에 나왔다. 본인의 아이가 교사 카톡 프로필이나 보고 있다면 그건 본인이 아이를 잘못 키우는 것이다. 아이 핑계를 대며 본인의 불편한 마음을 표현한 학부모의 민원은 참 어이없고 황당하다.
교사의 카톡 프로필 사진엔 왜 아이들이 밝게 웃는 모습과 교사임을 행복해하는 문구가 올라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는 건지 속이 상한다. 내 경우 폰이 두 개 생기면서 학교용 폰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고정이다. 반 아이들 전체 사진과 따뜻한 문구. 그리고 1년 동안 변동시키지 않는다. 카톡 프로필 사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이 교사의 의무가 되는 현실은 잘못되었다. SNS는 분명히 사적인 공간이다. 사적 공간은 존중받아야 된다.물론 저런 생각이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소수지만 교사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원래 인간은 백 마디 좋은 말보다 한 마디 비수 꽂는 말에 더 집중을 하게 되지 않는가.
교사의 사적 생활을 존중해 주지 않고 도덕만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달라져야 된다. 교사도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다.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다른 직업보다 도덕성이 조금 더 요구되긴 하겠지만 일개 직장인일 뿐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대단히 많은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 그냥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받는 직장인일 뿐이다.
사소한 것에 심사가 틀리는 걸 보면, 요 근래 일어난 사건 때문에 슬퍼진 내 마음이 진정이 안되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교사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큰 의미가 없긴 마찬가지겠지만 중등 같이 벌점 같은 제재 수단마저도 없고, 초등은 부모들의 관심의 영역이 공부가 아니라 생활 전반일 수밖에 없는 나이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교육계 중에서도 민원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리고 그 민원을 내칠 수 없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품어줘야 되는 것도 초등교사들의 몫이다. 초등 6년은 아이들이 성장하고 달라지는 아직은 말랑 말랑한 시기라 교사들은 웬만한 일도 그냥 참고 넘어간다. 달라질 가능성이 충분한 아이들을 비난하고 고착화된 이미지로 바라보며 지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큰 걸 바라지 않는다. 교사들이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음을, 힘들고 어려운 일도 불평 없이 감내하고 있는 교사들이 더 많음을, 사회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교사답지 못한 행동을 일삼는 내 주변의 일부 동료 교사들도 이번 기회에 반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학교 공간에서 교사들이 아무런 권한도 없는 상태가 되기까지, 자조 섞인 우스갯 소리로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학부모가 되기까지, 일부 교사들의 잘못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있어 왔기 때문이다. 서로를 비난하고 서로의 입장만 이야기하면 끝도 없는 싸움이고 같은 현상만 되풀이된다. 법과 제도 안에서 학교가 정상화되는 방법이 빨리 찾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