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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Aug 11. 2023

아아아, 마이크 테스트

송충이는 솔잎 먹고살고 싶다. 고향에서.

아아아, 마이크 테스트.

"들아, 밥 먹자~"

"잘 잤어? 오늘도 즐겁게 하루 보내자~"

말 끝을 한껏 올리며 말한다.

"아, 엄마 그만."



 "선생님 할머니 같아요."

 앗, 소복이 쌓이기 시작한 흰머리 때문인가? 귀찮아서 염색 안 했더니만. 날도 더워 묶어 다니기 바빴는데 머리를 좀 풀고 다녔으면 그나마 가려졌을 텐데. 나이 들어도 여자는 이쁘다 소리 듣고 싶지 흠잡히기 싫다.

 꼬맹이 2학년에게 할머니로 보이기 싫은데 말이다.


 고향 있을 때 6학년 학생과 학교 교장선생님 때문에 마음고생 무지하느라 39 이른 나이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직 40도 안되었는데 말이다. 슬펐다. 언니들 대비 훨씬 일찍 흰머리가 났으니 그 시간은 정말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다.

 그 해 졸업을 앞두고 남학생 하나가 말했다.

 "선생님, 저희 때문에 고생하셔서 흰머리가 엄청 늘었네요."

 '그래, 이놈의 짜식들. 아니까 다행이다.'

 그래봤자 그 녀석의 말은 흰머리에 초점이 맞추어진 거지 선생님의 마음고생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었다. 심하게 흔들리던 정신을 부여잡고 사느라 너무나도 힘들어 뜬금없는 꾸중이나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선생님을 훌쩍 커서 24가 된 그 아이들은 아직도 이해 못 할 것이다. 아마 내 이야기를 할 일이 있다면 그때 그 선생 왜 그랬을까 정도로 회자될지도. 희대의 철 안 든, 39 나이에 눈물 흘리던 괴상한 선생으로 기억될지도. 어린 녀석들에게 선생님이 당하는 수모 어떤 것도 들려줄 수 없기에 맥락을 모르는 상태의 선생님 행동을 어찌 그 어린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었으랴.

 아무튼 그렇게 흰머리는 내 인생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서양인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해 흰머리도 멋있는데 말이죠.

 "선생님 할머니 같아요."

 "왜?"

 속상한 마음 진정하며 물었다. 내일은 꼭 염색해야지 하며.

 "선생님 말투가 이상해요. 할머니 같아요."

 "야. ㅇㅇ사람이라서 그래. 우리 엄마가  ㅇㅇ사람이라서 내가 알아. 원래 저래."

 흰머리 때문이 아니었구나. 다행.

 게다가 편들어서 대변하는 꼬맹이 여학생이 하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처음에 전근 왔을 땐 어쭙잖은 표준말이라도 써보려고 노력했다.


 고향에 있을 땐 말이 통하는 5, 6학년을 주로 가르쳤으니 그냥 이모 같이 말을 주고받곤 했었다.

 "누가 그랬노. 야. 안된다 안 카나. 머러캐일래?"

 찐 경상도 사투리.

 그걸 여기 와서 못 쓰게 되니 처음엔 얼마나 말을 조심했는지 모른다. 안 그래도 과묵한데 더 과묵한 선생님이 되어갔다.

 이제 이곳에서 10년 차 교사가 되었다. 이젠 그냥 때로는 표준말, 때로는 경상도 억양.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제 적응이 됐는지 가끔은 이곳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경상도 사투리가 불쑥 나와서 혼자 놀래며 같은 말을 두 번 정정해서 하기도 한다. 다행히도 여기 학교는 정말 짬뽕 천국이어서 경상도 사람도 많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경상도 사투리를 감추고 사는 경상도 사람이 많다. 그들의 말투 바꾸기 재주에 나는 감탄을 보낸다. 물론 그런 분들은 여기 교대 출신인 경우가 많다. 대학부터 친구들과 지내면서 말투 바꾸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편할 대로 말하지만 내 말투는 어정쩡해졌다. 찐 경상도 말도 아니고 표준말도 아닌 괴상한 제3의 억양.

 큰아들은 자주 말한다.

 "말투가 기분 나빠."

 똑같은 내용도 표준말로 하면 부드럽게 느껴질 거라는 거 인정. 그래서 아침에 무슨 전투할 기세로 말끝을 한껏 올려 말했지만 실패다.

 두 아들 다 싫어한다. 어쩌란 말이냐. 이 녀석들아. 내 자식이지만 요구 사항도 많다.

 말투가 기분 나쁘다고 난리, 라면 물 많다고 난리, 보리 한 톨 밥에 들어가도 난리, 양파나 버섯이 볶음밥에 들어가면 난리 치는 둘째. 정말 니들 맞춰 살다가 내 한 목숨 언제까지 연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야~들아. 이 엄마 살아봤자 아주 길면 3-40년, 짧으면 20년 조금 더 살지도 모른다.

  살아있을 때 제발 철 좀 들고 엄마한테 감사할 줄 알거라. 아~들이(son 아님) 진짜, 누가 낳았는지 까다롭기도 하다.'

  누가 낳긴 내가 낳았고 내가 길렀다. 슬-프-다-아. 맘 속으로 혼자 투덜거려 본다.


  야~들, 아~들이 말이야(son 아들 아님)는 얘들을 부르는 경상도 특유의 억양과 말투로 들려드려야 되는데 음성 기능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동영상이라도 찍어 올릴까 의욕 잠깐 불태우다 멈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고 싶다.
언제쯤 고향 가서 40년 몸에 익힌 말투로 편하게 이야기할 날이 올까?

 물론 집에서는 맘대로 경상도 말 씁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들은 말투가 웃깁니다. 이제 찐 경상도 사투리 잘 구사합니다. 지나영 교수 첫 소개가 이렇더군요. 자기는 3개 국어를 쓸 줄 안다고. 미국말, 한국말, 경상도 말.

 저도 부족하지만 3개 국어 구사합니다. 영어, 한국어, 경상도어
물론 미국말은 유치원생 수준이지만요~~


(덧붙임: 쉰다고 해놓고 쉬지 않고 들어와서 엄청 엄청 부끄러운 거 아시죠? 자고 일어나니 인정이 됩디다. 제가 뭐 큰 걸 바라겠습니까? 처음 만든 브런치북도 폭파시키고 새로 하나 만들었습니다. 처음 브런치북은 큰 인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는 사람들이 있어서 간혹 조회수가 제 기준에서는 터진 적도 있었는데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글 처음 쓸 때의 초심을 돌아보고 싶어서 폭파시키고 그 일부를 가져와 새로운 브런치북을 만들었습니다. 독자가 많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그것도 받아들이려고요.


나이 드니 좋은 게 많네요. 조금만 젊었으면 내 잘난 줄 알고 울분을 못 가라앉혔을 겁니다. 말하고도 부끄럽네요. ^^ 나이 드니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됩니다. 세월 속에 쌓인 경험이 가져다준 행복이겠지요. 아들 때문에 속이 새까맣게 타서 그런 것도 있을 거고요. 아들은 비록 여전히 엉망인 상태이지만 아들이 저를 성장시켰으니 뭔가 좋은 점도 있고 기다리면 좋은 날도 있겠지요.


 무엇보다도 여기서 독자님들 만나는 게 너무 즐거워서 쉴 수가 없었습니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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