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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Aug 04. 2023

키 크다고 운동 잘해야 하나요?

  키 173. 한 때는 미인대회 나가라는 소리도 듣던 나.

  잠깐만! 키가 큰데 좀 심하게 날씬해서일 뿐. 내가 20대였던 시절 키 큰 여자가 그리 많지 않아서일 뿐. 미인대회 나갈 미모는 안된다.


  큰 키가 나의 결점이 된다는 걸 상기시키는 두 마디가 아직도 기억난다.

  "배구 선수 될라 그러나. 쓸데없이 키만 커 가지고." 아버지 말씀.

  "니는 키가 그렇게 큰데 운동 능력이 그것밖에 안돼?" 교대 체육과 교수님 말씀.

  자라는 키를 눌러서 줄일 수도 없었다. 우유도 안 먹고 자랐는데 유전자의 영향인지 저절로 쑥쑥 크는 키가 원망스러웠다. 심지어 그 유전자를 물려주신 아버지가 저런 말씀을 하시니 누굴 원망할 수 있겠는가? 올해 82인 아버지의 키는 175cm이다. 동갑인 엄마도 163cm이다.

  키 크다고 운동 잘한다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실 많이 배우신 교수님이 저런 말씀을 하셨다. 못 배운 우리 아버지건 배운 교수님이건 사고방식이나 말하는 게 다를 바가 없던 시절이 80, 90년대였다. 지금 교실에서 저런 말을 하면 인권 침해에 해당된다.


  키가 큰 게 싫었다. 버스를 탈 때 방심하면 손잡이에 머리를 맞을 때도 여러 번 있었고, 교대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단신들이 많아서 같이 걸으면 자세가 구부정해지기 일쑤였다. 학창 시절 제일 싫었던 과목이 체육인데 하필 교대를 들어와서 사 년 내내 체육을 다시 하고 있으니 교수님들로부터 듣는 상처의 말들도 꽤 많았다. 키 크다고 운동 잘해야 되는 게 아닌데 말이다. 다른 여자들처럼 높은 굽의 구두도 신어보고 싶었지만 우뚝 솟은 키의 부담을 스스로 견디기 힘들어 포기했다. 작은 여자들의 귀여움을 큰 키의 나에게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귀염귀염한 옷을 입고 싶었지만 어울리지 않았다. 키가 커서 남들 눈에 띄는 것도 불편했다. 그냥 조용히 구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걸 추구하는 사람이었으니 당연하다.


  키가 커서 좋은 점도 있었다. 학기 초마다 아이들은 내 큰 키에 압도당한다. 따로 첫날 전략을 세울 필요도 없다. 사실 간 작은 선생님이 엄청 긴장하고 첫날을 임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아이들은 첫날 내 키와 무표정한 얼굴만 보고 판단한다. 마치 잘 포장된 상품 속에는 비싸고 좋은 상품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키와 무표정만으로 나의 내면을 판단했다. 우리 선생님은 무섭고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한 달만 지내면 보기와 달리 여려 빠진 사람인 걸 아이들도 느끼고 경계를 풀어버리지만 말이다. 교생지도를 할 때도 카리스마 지도교사로 통했다. 키가 커서 인상만 좀 굳히고 있으면 다가가기 힘든 캐릭터가 저절로 되어 버린다. 웬만한 물건도 남편 도움 없이 올리고 내린다. 남편도 은근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신혼 초 석 달이나 바닥에 방치되어 있던 함을(우리 시어머니는 왜 그리도 무겁고 불편한 함을 사주셨는지.) 결국 답답해서 내 힘으로 장롱 맨 위에 올렸던 기억이 난다.


  키 크다고 운동 잘하길 바라던 교수님처럼 모든 사람들 마음속엔 편견이 한가득이다.

  나는 주로 아들에 대한 편견이 많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야. 공부 안 하는 자식은 아무 생각도 고민도 없을 거야. 저렇게 공부도 안 하니 독립도 안 하고 내가 먹여 살려야 될 거야. 키 커서 뭐 하겠다고 줄넘기를 저렇게 열심히 하는지 줄넘기할 시간에 공부나 하지.


  항상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동경하고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른다.

  키가 커서 좋은 점도 많은데 사람들이 하는 불편한 말에 신경을 쓰고 키 작은 아담한 여자였으면 한다.

  친구가 없는 큰 아들에 대해서 사회성을 걱정하면서 친구가 많은 둘째 아들은 놀기만 할까 봐 친구를 좀 멀리했으면 바라기도 한다. 남편이 느긋한 성격이어서 잔소리가 없어 편하면서도 집안일에 느긋한 것은 보고 있기가 싫다.


  모든 건 결국 내 마음에 있다. 키 크다고 운동 잘해야 된다는 편견을 가진 교수님 말에 의미를 둬봤자 내 마음만 불편하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는 교수님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뭐가 있나? 직접 대응해 말할 용기가 없다면, 마음속으로 가볍게 교수님 말을  되돌려 드려 보자. 그러고 나서 편견으로 가득한 교수님 말씀은 가볍게 잊어버리면 된다.

  '교수님,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 키 크다고 운동 잘해야 되면 머리 큰 교수님은 공부 잘해야 되는걸요? 인물이 그 정도인 교수님은 탤런트 안되고 뭐 하러 교수하고 계세요'

  쓰고 보니 공부는 열심히 하셨겠구나. 교수가 되셨으니.

  키에 대한 편견은 교수님 시선이고 내 시선은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지금에야 이런 배포도 생겼지만 안타깝게도 20대 초반 그 시절엔 그렇게까지 마음이 영글지도 단단하지도 못했다. 그저 말 한마디에 꽂혀 상처받고 있었다. 곱씹고 되뇌면서.

  공부 안 하는 아들도 공부에 초점 맞추지 말고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된다.

  '그래 네가 공부 안 해주니 니 앞에 줄 서 있는 아이들은 행복할 거야. 공부는 안 하지만 잘 먹고 건강하니 감사하다. 요즘은 집안일도 하니 장가가서 부인한테 도움 주는 남편이 될지도 모르겠네.'

 

  내 마음속 편견도 깨기 힘든데 다른 사람의 편견을 깨려는 것은, 열심히 먹어대면서 다이어트해야 한다고 살찐다고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욕심일 뿐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할 때 가지는 편견을, 마음속으로 가볍게 바꿔서 반사시키고, 편안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면 된다. 결국 바꾸기 힘든 편견 앞에서 상대방의 편견을 꺾겠다는 고집보다는 내 마음 속 시선의 변화와 당당함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편견 가득한 말이나 시선에 상처받지 말자.
그건 네 생각이고 내 생각은 다르니까.



요 때로 돌아가고 싶네요. 다이어트가 필요해요.

  DJ DOC와 춤을.

  다른 분들 글 보면서 영상 올리는 게 신기했으면서도 동영상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나무 향기입니다. 저도 한 번 살포시 영상 첨부해 봅니다.

  그런데 서랍 속에서 불러오기 해 보니 영상 용량이 큰지 버퍼링 걸려서 링크가 빨리 안 뜹니다. 앗. ㅠㅠ

  배워야 될 게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 배워서 남 안 주니 머리 아프지만 열심히 배워보는 걸로!

  (아줌마. 숨차요. 헉헉..^^)

열린음악회 - DJ DOC - Doc 와 춤을.20180722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1uEMcd1rCU8&t=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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