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이렇게 정신없이 써 댄 건지 모르겠다. 아들을 안아주며 느끼는 소소한 감정 변화를 쓴 나한테는 무엇보다 소중한 글, 하지만 독자들에게 큰 울림이나 얻을 거리를 주기는 힘든 글을 서른 편 넘게 쓰다 보니 글 발행 수가 덧보태어지긴 했다.
브런치가 말하는 전문성과(분명한 주제로 전달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나?) 공신력(대표 창작 분야에서 공적인 신뢰를 얻고 있나?)에 대해서는 아무리 고민해도 못 미치는 글들이긴 하다.
전달력 떨어진다. 아들을 키우는 것에 대해 쓰고 싶으면 도움 되는 콘텐츠가 되어야 되는데 그저 내 소소한 감정 풀이에 그친다. 물론 아들 키우기에 도움이 되는 말을 쓸 수 있었다면 현재진행형 어려움도 겪고 있지 않을 것이다. 대표 창작 분야가 딱히 뭔지 나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는데 브런치가 알 턱이 있나. 매거진의 분류 영역은 많지만 2,3편 발행하고 끝인 것도 있다.
학창 시절 운동회를 하면 달리기는 늘 4등을 했다. 그 4등의 벽을 너무나도 넘고 싶었다. 손목에 찍어주는 그 도장이 뭐라고 도장 한 번 찍어서 가족과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4등 줄이 아닌 3등 줄에 한 번 서보고 싶었다. 부러움의 눈으로 아이들 손목을 쳐다봤다. 다리를 바짝 올리고 온 팔을 흔들며 쿵쾅거리며 열심히 달렸다. 아무리 해도 6학년 졸업할 때까지 3등은 한 번도 할 수 없었다. 아마 3등 도장이 찍힌 날이 있었더라면 며칠 씻지도 않고 그것만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재미있어서 쓰던 글이었다. 쓰면서 독자가 조금 느는 게 신기했다. 내가 구독을 하면 맞구독을 해 주시기도 하고, 나를 구독해 주시면 글 1,2편 읽어보고 나는 무조건 맞구독을 한다. 구독해 주시는 고마움에 대해서 보답할 길은 그것밖에 없기에. 먼저 구독 신청을 하고 떨어져 나가는 분도 2명 있었다. 그런 분을 보면 잦은 발행이 문제인가 되돌아보기도 했다. 이제 관심 독자도 조금 정리했다. 내가 굳이 구독하지 않아도 몇 천분이나 구독자를 거느리신 분은 제외했다. 그분들의 이름은 브런치 여기저기에서 늘 보이니 그냥 지다 가다 글을 읽어드리고 라이킷을 꾹 눌러주면 된다.
구독자가 늘다 보니 4등이 3등이 되고 싶은 욕심이 조금씩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숨차게 달려도 아무리 팔을 휘저어도 아무리 다리를 올려도 4등이 3등은 되지 않았다.내가 아무리 하루 2편 이상을 써 대도, 달리기 3등의 길은 6년 내내 따라잡을 수 없었던 만큼이나, 글쓰기의 도약은 잡기 힘든 한줄기 신기루 같다.
도약이 왜 안되는지 알고 있고 앞으로도 미친 듯 써대도 도약이 안될 거 같은 느낌이다. 여기저기 작가님들 글을 보다 보면 잘 쓰시는 분들은 쓴 기간이 길다. 그리고 독서광이다. 글쓰기 방법도 배우시고 글쓰기 책도 읽으신다.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도 하신다. 사물 하나도 지나쳐서 보지 않는 관찰력과 섬세함이 있으시다. 가끔은 생뚱맞게도 밝은 가정에서 자라셨네 이런 생각까지도 한다. 내 글에 우울기가 좀 있는 게 싫은데, 내가 살아온 삶과 가치관이 은연중에 반영되는 것이 글이니 어쩔 수가 없다.
알고 있으면 실천하면 된다. 앞으로 남들만큼 장시간 쓰면 된다. 독서도 많이 하면 된다. 글쓰기 방법도 강좌를 신청하거나 찾아보면 된다. 앞으로 사물 하나 사람 하나 현상 하나 지나치지 않고 열심히 느끼고 바라보면 된다. 마음을 좀 더 밝게 하려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된다. 아마 나는 글이 도약하지 못함의 핑계만 열심히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열심히는 살지만 극도의 끈기는 못 갖춘 내가 과연 위의 것들을 얼마나 지속하고 실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7월 4일 처방받은 약을 3,4번 빼고 안 먹고 있었다. 약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아들을 진정하고 바라볼 수 있었기에. 하지만 오늘은 뭔지 모를 것들이 내 감정을 괴롭힌다. 설거지는 내가 다 해주고 대신에 쓰레기를 버리고 오라 했는데, 플라스틱이랑 캔이 섞인 상자에 화를 내는 아들을 보며 화도 내버렸다. 결국 후회할 거면서. 남편이 없어서인가? 요리를 못하는 내가 한심해서인가? 삼시세끼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개학을 하는 게 좋은데 막상 2학기를 어떻게 시작하나 30명의 아이들을 어떻게 감당하나 막막해서인가? 거실에 이불을 깔고 아들이랑 셋이 자면서 이리 맞고 저리 치이고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가?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다 원인일지도. 결국 근 한 달 만에 저녁에 먹어야 될 약을 낮에 털어 넣고 그대로 잠을 잤다. 자고 나니 조금 개운하다.
4등. 내 뒤에 5,6등도 있었다. 5,6등 아이들은 4등이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받고 싶었던 3등 도장을 받았다고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1등이 있으면 꼴찌도 있고 3등이 있으면 4등도 있는 게 당연한 건데.
영원히 4등에 머물러도 어쩔 수 없다. 달리기 4등이 내 인생을 크게 뒤흔든 건 없으니까. 아마 내가 글을 잘 쓰기 위한 수만 가지 방법을 다 실천하더래도 나의 글쓰기는 3등으로 도약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결국 또 쓰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만 써야지 3일 간 계속 되뇌었으면서도 또 노트북 앞에 스르르 앉는 오늘의 나를 보면, 감정의 변화가 파도 같아서, 도약하지 않으면 좌절하고 감정의 붕괴를 느끼겠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오뚝이처럼 서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이 된다.
남편이 말한다. 이미래, 이마토로 필명을 바꾸라고.
이미래는 앞으로 작가가 돼서 자기의 노후를 책임지라는 것이고, 이마토는 내가 겉과 속이 너무 같아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니 토마토 같아서 이마토로 바꾸라는 것이다.
하나 더 보태고 싶다. 이오뚝. 오뚝이처럼 좌우로 계속 흔들리지만 언젠가는 중심 잡고 서기도 한다는 것을.
음. 필명을 하기엔 이미래가 좀 맘에 든다.
오늘도 또 썼다. 이선생.
오늘 하루 행복하게 지내고, 내일도 또 하루 행복하다 하고 살면, 죽을 때까지 행복하다는 법륜스님 말씀이 생각난다. 오늘 하루 글도 쓰고 밥도 해주고 잠도 자고 청소도 했으니 오늘 하루 행복하다. 난 평생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