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뭔가를 바라고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다. 그저 열심히 했더니 결과가 좋았고 결과가 좋으니 더 열심히 하고 싶었고, 큰 뜻을 두고 열심히 한 게 아니고 그저 열심히 했기에, 더 큰 꿈을 꾸거나 더 큰 세상에 나갈 생각은 못했던 거 같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소박한 꿈이었던 선생님이 되었다. 가끔은 왜 그 성적으로 뭔가 다른 걸 해볼 생각을 왜 못했던 걸까, 하다 못해 서울교대라도 갔으면 더 큰 세상인 서울에서 선생을 할 텐데라는 쓸데없고 모양 빠지는 후회를 할 때가 많다.
후회도 하고 여러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과거를 생각하면, 스스로를 항상 뭐든 열심히 하고 끈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9월 14일이면 브런치에 글을 쓴 지 석 달이 된다. 단군신화의 웅녀도 100일을 넘겨서 사람이 되었고, 아이도 백일은 넘겨야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석 달은 100일도 채 못 되는 시간이다.
그런데 100일도 되기 전에 힘이 빠진다. 초반에 너무 열심히 이것저것 써대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모습을 내가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브런치 글쓰기로 내 모습을 알게 된 느낌이다. 난 끈기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
이것저것 배우다 관둔 것도 많다. 서예, 리본 공예, 요가, 수채화 등등. 큰 재주는 없지만 아주 재주가 없는 건 아니고, 또 성실성 하나는 끝내주니 배우는 동안은 결석이란 걸 한 적이 없어서 배우는 것마다 꽤 잘하긴 했다. 하지만 끝까지 배우지 못했다. 길게 배우면 1년으로 끝나버렸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뭔가 심드렁해졌다.
성실성과 끈기는 별개였다.
브런치 심사를 통과하고 글을 처음 발행했을 땐 평생 할 수 있는 취미가 생긴 것 같아서 너무 기뻤는데, 요즘 왜 이리 심란한지 모르겠다.
독자님들과 소통하는 건 너무 즐거운데, 발행할 때마다 늘 글이 부끄러운 건 여전하고, 내가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요즘 애들 말로 현타가 올 때가 많다.
100일도 채 못되어 이런 모습이라니. 난 이렇게 끈기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27년 째 같은 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이 업도 슬슬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한다.
대학 때부터 시작된 영어 공부에 지금도 끊임없이 매진하는 남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내일 알래스카로 출장을 간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출장을 갈 때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늘 불안하다. 그 불안이 마음을 어지럽혀서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좀 정돈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끈기 없는 나지만 계속 글을 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