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폰을 많이 사용한다는 느낌은 한 달 전부터 받고 있었다. 둘째의 폰에는 모바일펜스라는 휴대폰 제어프로그램이 깔려 있다. 설치해 놓긴 했지만 둘째는 막연히 믿고 있었기에 확인을 해 볼 생각을 못했다. 사실 첫째도 프로그램을 설치해 놓고 컴퓨터로 정확하게 구동되는 프로그램에 대해 무한신뢰를 하다가, 프로그램이 잘 작동되는지 확인을 하지 않아 뒤통수를 세게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자아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엄마의 눈을 피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며 살 궁리를 찾아내는 건지, 신기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엄마를 속이고 속이기를 반복했었다.
몸이 안 좋아 조퇴를 하고 누워있는데 둘째 영어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00 이가 긴장감이 하나도 없어요. 숙제도 잘 안 해 오고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없어요. 원장님이 00이 중학교 애들을 담당하는데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00 이가 00고를 목표로 한다고 말씀도 드렸고 부반장이 되었으니 열심히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씀은 드렸는데 00 이가 영 의지가 안 보이네요."
절망이다. 둘째마저 이렇게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기 시작한다니.
둘째는 막연하게 믿고 있었다. 본인도 형이 하는 행동들을 많이 봐왔기에 비교적 늦은 나이인 5학년 때 휴대폰을 개통해 줬을 때도 자기는 형과 다를 것이라며 단언을 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말은 믿을 수 없으니 설치한 제어프로그램이었다. 한 달 전 새 휴대폰을 마련하면서 제어프로그램이 로그인되지 않은 상태로 둬서 폰을 계속 맘대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기억으론 분명히 로그인을 해줬는데 아마 어떤 지점에서 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큰아이 일이었으면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무슨 말을 할까부터 고민했을 것이다. 둘째에겐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하교 중인 아들에게 목소리가 높아지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들을 믿고 간섭을 하지 않았던 만큼 절망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하필 큰아들과의 갈등의 큰 요소였던 휴대폰이며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거짓말이라니.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말없이 폰을 내밀고 과자를 챙겨 먹고 말없이 학원을 갔다. 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엄마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이의 거짓말 앞에 아이 존재에 대한 실망을 운운하면서.
아들은 학원을 갔다. 탄수화물 끊기 중인데 과자와 컵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탄수화물로 조금 진정된 마음과 함께 엄마의 행동을 되돌아본다. 그냥 내 감정에만 매몰되어 있는 모습,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모습, 아이에게 일의 경위를 물어보지 않는 모습, 훈육이 아닌 화를 표출하고 있는 모습. 큰아이였다면 절대 이렇게 하지 않았다. 큰 아이는 예민함을 장착한 아이이며, 저런 식으로 행동했을 때 나올 결과를 아니까 한껏 조심했을 것이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과자 한 입 먹고 학원에 간 아이는 충분히 자기 잘못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잘못을 알고 있는 아이에게 굳이 그 잘못을 낱낱이 뒤집어 헤치며 넌 이런 아이야, 잔소리 들어 마땅해, 이런 대가는 당연히 치러야 될 의식이야라고 가르쳐 줄 필요가 있었을까.
뒤늦은 후회를 한다.
잘못을 깨닫는 아이에겐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대화를 해 주는 것이 맞다.
오늘도 모자란 엄마는 실수를 반복한다. 단지 아이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큰 아이였으면 내뱉지 않았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걸 보면, 참고 참는 사람에게 많은 일이 주어지고, 감내하고 견디는 사람은 늘 그런 사람 취급하며 또 감내와 희생을 강요하는 직장 세계나 어른들의 세계 속 일을 아이에게 갑질 관리자처럼 강요하고 답습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였다.
아이가 돌아오면 엄마가 차분해지 못했던 부분을 사과하며 다독이고 휴대폰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나누어야겠다.
일관되어야 될 교육 원칙마저 아이의 성향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무너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