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는 중요하답니다.
32살이 되던 12월 연말에 결혼을 했다. 늦은 결혼인만큼 애를 빨리 가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임신 계획이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는 생각만큼 금방 생기진 않았다. 그렇다고 조급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 반 반장아이는 여학생이었다. 예쁜 얼굴, 다부진 표정, 정갈한 글씨, 바른 수업 태도, 논리 정연한 의사 표현, 남자애들한테도 밀리지 않는 기 등 갖출 것을 다 갖춘 아이였다. 저런 딸이 있는 엄마는 행복하겠구나 싶었고, 어떻게 하면 딸을 저렇게 야무지게 키우나 싶어 부러웠다. 당연히 담임인 나는 그 여학생을 신뢰하고 마음속으로도 참으로 이뻐했었다.
학부모 상담이 있던 날 반장 어머니가 방문했다. 이런저런 칭찬이 오고 가고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를 쨍그랑 깨 버리는 학모의 말 한마디.
그 예쁜 아이의 엄마가 그런 말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아이도 맘대로 가질 수 없는 게 교사였다. 물론 그 학모의 말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저런 말을 내뱉는 학모가 있다는 현실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는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엄마 뜻대로 되진 않았고 그 해 아이를 가지고 다음 해 3월이 출산 예정이었던 관계로 2월에 아이들을 졸업시킬 때는 만삭의 배로 졸업식에 참여했다. 만삭의 나를 보면서 반장 엄마는, 또다른 학부모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엄마의 말이 일정 부분 맞아서 씁쓸하다. 정확히 말하면 6학년 내 반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서 임신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6학년이 어떤 학년인가? 2학기가 되면 아이들은 거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반항은 극에 달하고 수업 태도도 흐트러지고 초등학교의 최고 학년이니 어른이 다 된 것처럼 행동한다. 지금은 6학년을 가르쳐도 그렇게 소리를 지르거나 할 것 같진 않지만 그 시절엔 왜 그리 소리 지를 일도 많았는지 뱃속의 큰 아들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뱃속에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휴식도 제대로 못 취한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태교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태어난 우리 아들은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수도 없이 깨는 아가였다.
내 욕심에 6학년을 했고 교생지도도 했다. 그렇다면 아이를 가지지 말았어야 했고, 아이를 가지고 싶었으면 6학년도 하지 말고 교생지도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젊은 시절에는 늘 내가 2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슈퍼우먼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다. 슈퍼우먼은 없다. 언론이나 매체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내가 아는 범위는 교직이니 교직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승진한 교장 교감님들을 보면 대부분 아이를 봐주는 시부모나 친정 부모가 있었고, 아니면 주변 선생님들을 희생시켜서 승진을 한 경우들을 많이 봤다. 고로 나혼자 만들어지는 슈퍼우먼은 결코 없다.
주말부부를 하며 6학년을 하며 교생지도를 하며 임신할 생각을 했던 나는 정말 무지한 여자였다는 표현이 딱이다.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6학년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서, 태교가 전혀 되지 않은 채 태어난 우리 아들은 예민함이 극을 달리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를 가질 때 안정된 환경에서 태교를 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가지는 게 맞다. 그리고 아이 갖지 마세요 이런 말은 듣지 않는 상황이었어야 했다.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소위 말하는 초치는 소리를 듣고 있었으니.
여러 모로 우리 큰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이를 갖지 말라는데 가져서 이렇게 되었나 싶고, 내 욕심에 너무나 힘든 환경에서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힘든 아이가 되었나 싶다.
결혼을 한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가지고 낳는다고 저절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욕심을 내리는 준비가 필요하다.
태교부터 무척 중요하다.
소중한 우리 두 아들. 엄마가 태교를 잘 못해서 미안하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