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머리를 검정 고무줄로 돌돌 말아 올리고 면티에 청바지로 출근을 했다. 또 우울증이 도지는지 도무지 꾸미기도 싫고 뭔가 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어제 종일 자기 최면을 걸었다.
이렇게 살면 안 돼. 안돼. 정신 챙겨. 충분히 행복하고, 충분히 살만하다고. 비교적 편안한 올 한 해를 기쁨으로 생각하고 즐겨. 뭔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느낌을 지워 제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저녁 늦게 안 보던 티브이를 봤다. 라디오 스타를 봤는데 임원희, 백지영, 미미, 정석용이 나왔는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깔깔 웃고 늦게 자서 푹 잘 수 있었다. 백지영과 미미의 넘치는 에너지가 너무 부러웠다.
예능이나 개그프로를 별로 안 좋아하다 보니 인생이 더 재미가 없구나 싶어서 가라앉는 기분일 때는 책이 아니라 예능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머리를 풀고 옆가르마로 바꾸고 다이슨으로 돌돌 말고 정장 원피스를 차려입었다.
아침에 왔다 갔다 하다가 입으니 땀이 흘렀는지 옷 입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원피스 지퍼 잠그기는 왜 그리 힘든지. 아무리 자식이지만 뒷지퍼를 아들한테 해달라기는 머뭇거려져서 혼자 낑낑대며 겨우 올렸다. 팔이 길어서 가능한 일이지만, 팔뚝에 살이 붙어서인지 조금 힘들기도 했다.
기분 좋게 출근했고, 오늘 수업도 그럭저럭 잘 풀린다. 아이들도 잘 따라주고 나도 기분이 좋아서인지 신나게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갑자기 무기력이 몰려온다.
예쁘게 입었는데 갈 데가 없다. 친구들은 다 대구에 있고, 자주 만나던 여기 샘들은 지난주 지지난주 다 뵈었고. 그냥 면티에 청바지를 입었으면 어디 절이나 갈 것을.
차려입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집에 가기가 싫다. 아들이 여기 대학교 체험 가는 날 조퇴를 했고, 무리한 요구를 해서 속도 상했는데, 집에 가면 또 아들과 충돌할까 그것도 두렵다.
아...........................................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햇살은 비치는데 날은 선선하다.
이 가을이 갑자기 싫어진다.
날씨는 좋은 데 갈 데가 없다.
아침에 다듬은 머리가 아까워서 올려봅니다. ㅎㅎ
원래도 그런 경향이 아주 아주 많았지만, 브런치가 점점 일기장이 되어가고 있다.
글 잘 쓰시는 작가님들한테 죄송해서 당분간 떠나야 되나 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