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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Sep 17. 2023

싸울 땐 최소한 문이라도 닫자

아무리 잘해왔어도 한 순간의 실수가 치명타가 되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다. 

아들의 문제는 복합적 원인이 있다. 타고난 천성, 우리 부부의 잦은 싸움, 일을 쉬지 않은 엄마의 반쪽짜리 육아, 예민한 기질에 대응하는 적시 적소의 육아법 부재 등이다.

이미 17이 되어버린 아들은 이제 어떻게 손을 쓸 큰 방법이 없다. 더 엇나가지 않도록 더 반항하지 않도록 그냥 마음 편안하게 해 주는 수밖에는 별 다른 도리가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다. 공부는 포기해 버린 아이기에 공부에 대한 언급도 크게 하지 않는다. 다만 게임은 좀 그만해야 되지 않겠냐고 충고를 거듭하지만 할 거리가 없고 친구도 별로 없는 아이에겐 게임이 하나의 큰 존재 이유라서 언제 그만두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중독에서 못 헤어 나오는 아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늘 가득이지만 어떻게든 내 마음을 부여잡으려고 애쓰는 삶의 연속이다.



남편이 부서를 옮기고 계속 출장이다. 옆에 있어도 말 없는 남편은 딱히 위로가 되지 않지만 없으니 더 외로운 건 사실이다. 혼자 모든 걸 다 챙기고 친구랑 놀거나 게임하기 바쁜 아들 둘 틈에서 티브이의 일방적 소음을 듣는 것도 지치는 하루하루가 계속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책 읽기도 집중이 되지 않고 자꾸 딴생각으로 빠져드니 무엇을 해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딱히 해답을 못 찾았다.

오늘은 불교대학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법문을 듣는데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다. 무교인 내가 불교대학을 듣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마음이 좀 편해지고 싶어서이다. 모든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가볍게 받아들이고 싶어서이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집중이 안되고 자꾸만 내 상황에 대한 안 좋은 감정들만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출장 가 있는 남편에게 페이스톡을 했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원망이 쏟아졌다. 남편은 늘 듣는 말이다. 결혼을 후회하는 내용의 말들, 내 삶이 이렇도록 어지러워진 데 대해 남편을 탓하는 말들, 원망의 날 선 말들을 늘어놓다가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페이스톡을 하면서 방문을 닫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책상을 돌아나가야 되는 그 잠깐의 수고가 싫어서 그냥 높아진 언성으로 감정을 마구 표출하고 있었다.


큰아들이 왔다. 

"왜? 왜 또 그러는데?"

엄마 아빠가 안 싸운 지 꽤 되었건만 저런 말을 한다.

거기다 그 이유를 몰라서 묻나 싶어서, 너는 대체 무엇을 얼마나 잘 살고 있길래 엄마의 흠이라도 잡으려고 덤비나 싶어서 좋은 감정이 일지 않는다. 마치 부모가 자식한테 충고하는 듯한 저 말투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운 건 확실하다는 생각마저 온 정신을 휩싼다.

그냥 페이스톡을 끊어버렸다.


그동안 아들을 위해 마음을 잡고 다잡고 해왔건만 또 한 순간의 실수로 엄마는 못난 사람이 되었다. 엄마의 그 수많은 노력보다 한 순간의 실수가 더 짙게 각인되리라. 늘 그래왔듯이.


싸우려고 했으면 감정이 격해졌으면 최소한 문이라도 닫았어야 된다. 
인생 잘 헤쳐나가기 너무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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