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by 나무 향기

추석 연휴에 친정조차 가기 싫은 건 처음이었다. 집에 그냥 있고 싶었다. 멀리 길을 나서는 것도 귀찮게 여겨지고 옷을 입고 나들이 준비를 하는 것조차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야 하는 것 같은 의무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삼일 만에 또 맞이한 연휴. 지난 추석을 무기력으로 보냈기에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이렇게 사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란 생각은 머리로 수백 번도 더 들었다. 수, 목, 금 일하는 동안도 연휴만 바라보았다. 수업은 간신히 하고 나머지 잡무는(시험지 채점, 출석부 정리, 수행평가 입력, 결석계 결재, 교실 비품 정리, 공문 처리 등등) 하기 싫어서 뭉기적거리는 자신을 보며 연휴를 알차게 보내고 나면 이 무기력은 나아질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금요일 퇴근과 동시에 이젠 달라지겠지. 이번 연휴를 기점으로 에너지를 얻을 거야라는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연휴가 시작될 땐 수목원에 가자. 고장 난 식기세척기를 구입하자. 둘째 옷을 사주자. 산에도 가자고 남편에게 제안했다. 하자는 것이 많기도 했다. 하지만 금요일 밤을 지나고 토요일 아침 시작과 동시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싫었고 아침을 먹기도 싫었다. 남편에게 아이들 아침 식사 준비를 부탁했다. 눈을 뜨기가 싫었다. 어디 가고 싶지도 않다. 그냥 눈을 감고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독한 무기력 증상이 시작되었다.


원인을 짚어보았다.

방학은 근근이 버텼는데 개학 이후 남편 출장으로 혼자 보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무기력이 시작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무기력을 심화시킨다. 두 아들은 원래도 말수가 적지만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서 엄마는 찾지도 않는다. 찾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밥을 먹어야 할 때, 돈이 필요할 때, 게임 시간이 필요할 때(둘째의 경우만)이다.


살아보니 자식은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파르르 끓는 냄비 같기만 하고 그다지 주장이 끝까지 강하지 못하니 아이들은 내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더 이상 엄마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리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무서운 아버지 말에 속으로만 불평할 뿐 결혼해서 독립하기까지 꼼짝 못 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내가 엄마로서 심지가 곧고 강하지 못해 아이들이 말을 따르지 않는 측면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아이들, 그냥 자신들의 세계 속에서 몇 가지 경우 빼고 부모를 찾지 않는 아이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위치, 늘 바빠서 대화가 힘든 남편 등이 내 무기력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답은 모른다. 부모의 교육이란 것은 분명 필요한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교육인지 권위를 부리는 것인지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지만, 내 힘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앞으로 과연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인가? 나는 왜 엄마로서 사는 것인가? 등의 의문이 들어서 무기력이 내 온 정신을 지배한다.


큰아들을 안아주면서 아이는 많이 변했다. 엄마에게 하던 그 수많은 모난 말들과 혐오의 표현들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집을 나갈 때 들어올 때 엄마를 찾고 출필곡 반필면을 한다. 이것만 해도 큰 변화인데, 아이를 사회 구성원으로 잘 살아나게 한 단계 진보할만한 아이로 키울 해결책이 나에겐 없다. 그냥 무기력하게 게임만 하는 아이를 지켜봐야 된다는 현실이 나를 자꾸 무기력증에 빠지게 한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야 돈을 버는 목적이 내 새끼들 안 굶기는 것에 한정될 수도 있었겠지만, 먹는 것은 풍족하니 아이들 잘 키우고 싶어서 돈을 벌터인데 잘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나는 돈을 하나도 안 들이고 있다. 그것도 나를 무기력하게 하고 있다. 직장을 다녀야 될 이유가 사라진 느낌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이것도 욕심인가? 둘째 언니는 말한다. 그냥 밥 주고 지켜보라고, 너는 아직도 큰 애에 대한 욕심을 못 내렸다고. 언니에게 그런 거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있는 그대로 지켜보기를 마음 밑바닥까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해서 큰 아이를 낳았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직도 그 꼬물거리던 신생아 시절이 생생하고, 작은 발을 내딛고 걷던 모습, 음악에 춤을 추던 모습, 엄마 하며 환히 웃던 모습이 훤한데 17년의 세월이 흘러 183의 큰 아이가 내 앞에 버티고 있다. 그 시절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밝은 아이의 모습과 지금 내 아이의 모습을 비교하면 안타깝고 눈물만 난다. 내가 길을 잘 닦아주지 못해서, 내가 편안하게 못해줘서, 내가 부모 노릇을 못하고 아이를 보듬지 못해서 저렇게 커버렸다는 생각만 들어서 그냥 펑펑 눈물만 쏟아진다. 세월이 언제 가버린 것인지 그동안 나는 엄마로서 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한 게 맞는 건지 후회와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아마 10년 후에는 이 시간을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해야 될지, 어떤 게 엄마 노릇인지 막막하기만 하다.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마음 밑바닥의 아이에 대한 걱정,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게 없다는 생각이 나를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밥조차도 하기 싫은 내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밥이나 제대로 해 주면 될 거 아니야? 그게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너의 최선이라고 하는 생각도 든다. 다 시든 산세베리아에 핀 꽃을 보며 때론 내버려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듯한 불안감이 꽁꽁 숨어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지만 지금 내 아이가 바라는 건 맛있는 밥뿐일 수도 있다. 그냥 밥이나 잘해주거라.


이젠 연휴도 없다. 이 지독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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