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나는 사랑의 의미를 진짜로 알고 있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사랑이 무엇일까? 나의 모든 걸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고 나를 온전히 희생해도 두렵지 않은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 맞을까? 그런 사람이지라고 언뜻 긍정의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는 사랑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일 수도 있고 진짜 내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어서이다. 정답은 모르겠다. 사람이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기가 참 힘드니까. 어떤 이는 자신을 깎아내리고 어떤 이는 자신보다 자신을 높게 바라보기도 하는 오류에 빠지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인 규정은 힘들다.
그냥 생각하기에 나는 사랑이 그다지 풍족한 사람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에 많이 빠진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기꺼이 내 욕심도 포기할 줄 알아야 되건만 자식이 어릴 땐 일에서 성취하고 싶은 욕심도 못 버리고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덤벼들었고, 자식이 커 버려 영향력을 많이 미치지 못하는 지금은 그저 밥이나 충실히 해 주고 깔끔하고 편안한 물리적 환경이나 제공해 주면 될 터인데 문득문득 자식이 미워서 그것조차 하기 싫을 때가 많다. 자식은 꿈쩍도 않는데 내가 왜 이렇게 희생하고 살아야 되라는 생각이 자주 내 마음을 흔들어 댄다. 그저 자식이 어떻게 크든 사랑하고 아끼고 희생하는 부모를 보면 정말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따로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부모님도 생각해 보면 자식에게 큰 기대나 강요는 하지 않았다. 자식 넷을 키우며 그저 입성을 깔끔하게 해 주고 큰 잔소리 없이 지켜보는 게 다였다. 그 속에서 사형제 모두 그냥 착하고 바르게 컸고 동생은 알아서 공부를 잘했고 부모님의 큰 자랑거리가 되어주었다. 그 시절은 먹고사는 게 큰 과제였으니 자식에 대한 기대나 잔소리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시대적 상황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부모로서 자식에게 어떤 큰 기대를 걸고 희망사항을 가지고 희생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아마 희생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사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자식을 사랑하는지 않는지 의미는 두지 않으셨을 것 같다.
교육을 너무 많이 받은 나는 개념이나 관념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다. 사랑을 정의 내리려 하고 내가 사랑을 하는지 마는지 따지려 든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잘못된 사람이고 사랑의 정의에 충실하지 않으면 잘못 사는 것 같다. 사랑처럼 추상적 단어는 사람마다 느끼는 의미가 조금씩 다를 것이다. 사랑의 범주도 남녀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부모의 사랑 등 범위가 엄청 많다. 사랑이라는 추상적 단어를 정의 내리려는 것부터가 어쩌면 오류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에게 깨끗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청소를 하고, 취미가 없고 솜씨가 없는 요리나마 자식을 먹이기 위해 오늘도 일찍 깨서 요리를 했다.
그냥 그게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내가 사랑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 따질 겨를에 그냥 가족을 위해 일상의 일을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글을 쓰면서 정리가 된다.
한 공간에서 밥을 함께 먹고, 텔레비전을 보며 사소한 일상을 나누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며 기뻐하고, 가족을 위해 집안일을 하고 그냥 그게 사랑이다.
일상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 자체가 그저 사랑임을 알고, 너무 거창하게 사랑을 정의 내리려 하지 말아야겠다. 머리만 복잡해지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만 같아 우울해진다. 그리고 아이가 어릴 때 욕심을 버리지 못했던 것은 나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였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젠 나보다는 가족을 좀 더 사랑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엄마라는 타이틀에 주어진 역할임을 받아들여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