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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Oct 10. 2023

스토너

중학교 졸업 이후로 독후감은 처음 써 보는 것 같다. 대학 때 독후감을 쓴 적이 있던가? 가물거린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교육 관련 책을 읽고 두어 번 독후감 써내는 과제가 있었다. 책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나이가 들어감을 실감한다. 기억력은 꽤 좋은 편인데 이젠 사라져 가는 기억들이 하나 둘 생기는 걸 보면. 

글쓰기는 모든 영역이 힘들지만 책을 읽고 생각이나 느낌을 쓰는 건 처음 먹어본 음식을 앞에 두고 시도하는 것만큼이나 나에겐 힘이 들어가는 시도이다. 책 내용만을 간추리는 게(사실 이것도 쉽지 않다.) 독후감이 아니라 내 생각과 느낌, 철학이 스며들어야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감히 엄두가 안 났는데 용기 내어 써 본다. 그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자판에 옮겨보겠다는 용기를 한 번 내어 본다. 내 마음이 요즘 불안정해서 이렇게라도 뭔가 다른 걸 하고 싶은 모양이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독서 목록에 있어서 호기심에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도서관 앱을 통해 책 찾기를 해보았으나 대출 중이고 예약도 걸려 있었다. 기다릴까 하다가 책을 사 보았다. 근래 들어서 책을 잘 사지 않는 편이고 소설책은 원래 잘 사지 않는 책이다. 책을 사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안정감 때문에 오히려 책을 읽지 않게 되는 상황이 발생해서 잘 사지 않는데, 기다리기가 싫어서 샀고 읽었다.

소설은 미주리 대학교 교수 스토너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농과대학에 입학했으나 전공을 영문학으로 바꾸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귄 친구 중 한 명은 전쟁에서 죽고 한 명은 미주리대학에서 학장으로 스토너와 함께 근무하게 된다. 

스토너는 신경질적이고 과민하며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여자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을 하게 되었고 딸을 낳았다. 부인을 대신해 집안일은 물론 딸을 돌보는 것까지 스토너의 몫이었다. 하지만 큰 불평 없이 당연히 자신이 해야 될 일인 양 받아들이는 스토너는, 딸과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는데 스토너의 부인은 그것마저 질투를 하는지 딸과 아빠의 관계마저 갈라놓아 버린다.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스토너의 삶은 그냥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것의 연속이다. 과민한 부인은 변할 기미가 없고 남편을 위한 사랑의 마음을 조금도 내어놓지 않으며 하나뿐인 딸마저도 자신의 뜻대로 만들고자 한다. 그 딸은 스토너를 닮았는지 엄마의 뜻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진정한 사랑을 만났지만 대학교수로서 유부남으로서 용인되지 않는 사랑은 끝이 나버리고, 스토너를 망치기 위해 작정하듯 덤비는 대학원생과 동료교수의 눈에 보이는 적대적 행동과 뻔한 술수 앞에서도 스토너는 그저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살아갈 뿐이다.

21세기 경쟁사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삶을 살아가는 스토너이다. 요즘은 자기주장을 당당하게 내세우지 않으면, 당하고만 살면 바보 취급받기 쉽다고 생각해서 여기저기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급급한 사회이니 말이다.

읽는 내내 스토너의 바보 같은 삶의 태도 앞에서 답답함과 슬픔이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이 스토너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적당히 손해도 보고 양보도 하면서 그렇게 사회를 조용히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가 유지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죽는 순간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며 짜릿함을 느끼는 스토너. 결국 죽는 순간까지 투쟁보다는 학자로서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는 스토너의 모습 앞에서, 주어진 삶과, 삶의 고통의 순간들도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애처로우면서도 존경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스토너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과 불공정한 삶의 면면을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며 고요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문장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써 보는 독후감. 2학년 우리 반 아이들이 구구단을 외우면서 뭔가 1학년보다는 자기들이 엄청나게 수학의 많은 것을 터득한 것처럼 여기며 뿌듯해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그냥 한 발 내디뎠다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어지러운 마음을 이래 저래 글로 다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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