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향기 Oct 11. 2023

마음에만 집중하지 말고 몸에도 집중해 봐

아들은 또 등교를 하지 않았다. 무기력에 온갖 잡생각이 더해지며 터져버릴 것 같은 날이었다. 늘 똑같이 떠드는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이건만 신경이 곤두서서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선생답지 못한 어른답지 못한 행동과 말도 해버렸다. 내 마음은 조각 하나만 빼면 허물어져버릴 것만 같은 불안정하게 쌓인 젠가 같았다. 어떤 조각을 어느 방향에서 빼도 금방 툭 허물어져버릴 것만 같은.


사랑이란 가족을 위해 일상을 잘 수행하는 것이란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내가 미워서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텅 비어버린 마음을 기댈 곳이 학교가 아니니, 다른 열심히 사는 학생들과 달리 학교에서 인생의 목적을 찾을 수 없으니 늦잠 잔 것을 핑계로 학교를 가지 않은 것이라 짐작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지각 한 번만 더 하면 징계라 결석을 선택했다는 어리석은 말을 늘어놓는다. 하루를 살아야 되니 나름의 변명으로 합리화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 어리석고 불안전한 아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되나 생각도 들고 측은지심도 인다. 한동안 중단된 아들에게 쓰는 편지를 좀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부터 가족을 사랑하잔 마음으로, 퇴근해서 손을 씻고 바로 아들이 좋아하는 카레를 만들었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개수대도 깨끗하게 닦으며 청소도 시작했다. 잔뜩 쌓인 분리배출 쓰레기도 정리하고 빨래도 돌렸다. 중간에 힘이 들 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단 것이 주는 위안은 아주 크다. 주부라면 누구나 하는 반복적인 일들을 하다 보니 시간은 훌쩍 갔고 남편이 퇴근해 왔다. 미안한지 미소 띤 얼굴로 손을 흔든다. 그냥 무심하게 쳐다보고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시작하면 터져버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일을 끝내고 불교대학 법문을 들었다. 중간에 피곤해서 엎드려 잠도 자 버렸다. 작은 아들은 학원 수강 후 바로 스터티카페로 가버렸고 큰아들은 학교도 안 가고 피시방에 갔는데 오지를 않는다. 8시 불교대학을 수강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을 돌아보았다. 늘 남편을 따라다니며 조잘거리거나 불평을 늘어놓곤 했는데 그냥 무심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티브이를 잠깐 보고 10시쯤 잠자리에 누웠더니 큰아들이 방문을 열어보곤 나가버렸다. 순전히 짐작이지만 밥을 달라하고 싶은데 아마 미안해서 엄마를 깨우지 못하는 것일 거라 생각된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작은 아들이 오지 않아서 11시까지 기다렸다가 늦은 저녁을 챙겨주고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아침은 새벽녘 비염과 함께 열심히 뽑아재낀 휴지를 버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마음은 편안해졌다. 사랑은 내가 먼저 하면 되는 것이다. 엄마로서 주부로서 해야 될 일들을 잘하고 일상을 잘 챙기는 것이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이란 결론에 일상을 잘 수행했더니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편안해졌다. 누군가 날 도와주길 기대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주변 사람들에게 화가 일어난다. 무너지는 기대에 마음도 불편해진다.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출근을 하니 아이들도 다르게 보인다. 분명 아이들은 달라진 게 없다. 어제와 똑같이 떠들고, 똑같이 웃고 똑같이 즐겁고, 똑같이 속을 썩인다. 


단지 내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의 안경 색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울한 검정에서 조금은 맑고 투명해진 느낌이다. 온 신경을 마음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자꾸 불편해진다. 명상을 할 때 초보자에게는 코 끝에 마음을 집중하고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걸 느껴보라고 한다. 명상을 왜 그렇게 하는지 알 것 같다. 생각을 하고 사는 건 중요하지만 마음에만 온 신경이 다 가다 보면 판단이 흐려지기도 하고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일어나게 된다. 마음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지 말고 몸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땐 청소도 하고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는 것이 그래서 필요한 행위인가 보다.


아이들은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가만히 앉아 글 쓰는 건 더 싫어한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어느 장소에서건 뛰기 바쁘고 떠들기 바쁘고 놀기 바쁘다. 아이들은 몸을 많이 움직이니 생각이 복잡하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네 신경을 마음에만 집중하지 말고 몸에도 집중해 봐.
 나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도 안 준 산세베리아에 꽃이 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