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채운 25년간의 교직 생활을 되돌아본다. 발령이 났을 때는 컴퓨터의 윈도우 체제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파워포인트 하나만 작성해서 수업에 적용해도 선배 선생님들은 아낌없는 칭찬을 주셨다. 요즘 신규샘들은 못하는 게 없다고 컴퓨터를 어찌 그리 잘 다루냐고. 웃음이 날 일이다. 도스 체제에서 혁신적인 윈도우 체제로 바뀐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당연한 찬사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종이 생활기록부에서 넘어온 SA생기부 전산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지금의 나이스 시스템은 초기 시작이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깔아 두고 생기부를 입력하는 SA프로그램이었다.(생기부 내용을 플로피 디스켓에 백업하던 시절이다. SA 프로그램이 깔린 교무실 학교 컴이 도난을 당했는데 플로피에 저장을 해둬서 무사히 넘어갔었다.) SA에서 CS라는 교무업무시스템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CS 프로그램이 웹상에서 생기부를 입력하는 첫 시작이었다. 그리고 NEIS체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발령 첫해 피피티 하나 다룬다는 이유로 컴퓨터를 잘 아는 신규샘이 된 나는 SA프로그램 담당자가 되었고 그 뒤 학교를 옮겨서도 나이스 업무까지 하면서 업무의 쓴맛을 많이 보았다. 지금이야 나이스 프로그램이 오래되어서 사용법에 능숙하신 선생님이 대부분이지만 초창기 CS에서 NEIS로 생기부를 이관할 때 이관 작업 자체가 엄청난 업무였고 이관 과정의 오류를 찾아내고 서류를 만들고 등등의 일부터, 익숙하지 않은 나이스 프로그램에 대해 문의가 오면 일일이 답을 하는 것은 온전히 업무 담당자의 몫이었으니 과다한 업무 축에 끼었다. 나이스 업무 담당자는 성과급 우대도 해주던 시절이었다.
나이스 업무를 하면서 30대 초반에는 교생지도도 했다. 지독히도 일을 많이 시키는 대구교육청은 당최 융통성이란 게 없다. 내가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난 뒤 비교를 통해 깨달은 사실이다. 무슨 시범학교를 하면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있는 그대로 계획대로 다해야 된다. 대충 하고 대충 실적물 내는 건 통하지도 않는 일이었다. 시범학교가 아니라도 한 해 교육계획에 의해 실천하기로 한 일들은 무조건 실행하고 온갖 실적물을 만들어내야 했다. 대구를 떠난 지 십 년이 되었으니 지금 대구교육청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길 바랄 뿐이다. 여기 와서 내가 느낀 점은 이 좁은 땅덩어리에 같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일의 강도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하는 점이었다.
대구에서 고학년을 지도하면서 교생지도를 할 때는 퇴근이란 걸 제시간에 할 수 없었다. 늘 동학년과 저녁밥을 시켜 먹고 일을 해야 했으며 그 와중에 초과수당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그 시절 교장선생님들은 왜 정당한 초과수당조차 지급하는 걸 그렇게 싫어하셨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희한한 일이다. 나랏돈을 그리 아껴서 어디에 쓴 것일까? 수당 없이 8시 9시까지 일하기를 밥 먹듯이 했으니 때론 그렇게 열정에 불타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렇게 살아서 지금 남은 게 뭐가 있나 생각하면 아쉽고 씁쓸하기도 하다.
이곳으로 오면서 나는 비교적 편안한 교직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대구에서의 15년은 그저 일, 일 뿐이었고 칼퇴라는 말은 외국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곳에서는 칼퇴를 안 하는 날이 이젠 드물어졌다.
여기서의 10년 중에 올해가 가장 호사를 누리고 있는 해이다. 40대에 여기 왔는데 고학년은 사정상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부탁했건만(큰아이 때문)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5학년을 내리 연거푸 2년을 했다. 5, 6학년 24 학급 통틀어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았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은 학교이다. 그 5학년 담임 시절 정제되지 않은 유독 애 먹이는 아이가 한 해에 한 명씩 있어서 그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고, 그 뒤 부장 업무를 하면서 꽤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작년에는 이곳 외곽에 있는 학교에 출퇴근을 하느라 아침마다 일찍 깨고 막히는 시간을 피해 다니느라 힘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 걸어서 10분 거리인 학교에 온 상황에서 정말 이렇게 복 받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평온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반 아이들은 착하고 모난 데가 없다. 이런 아이들을 가르쳐 보는 건 다섯 손가락 안이라 할 수 있다. 학부모들도 너무나 협조적이다. 학교가 크다 보니 업무도 교원평가 하나인데 그마저도 올해 유예가 되어서 2학기 때는 업무가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 내 인생에 아마 더 이상 오지 않을 편안한 한 해가 될 거 같다. 이동점수 때문에 내년부터는 부장을 해야 될 거 같고 다시 바쁜 나날들이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편안한데 편안함을 못 즐기고 있다. 몸이 바쁜 생활에, 초 단위로 무언가를 해내야 되는 생활에, 쌓이는 업무를 처내기 바쁜 생활에, 매일 지루하게 이어지는 회의 참여에 너무 길들여졌나 보다. 편안함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올해는 월급 받는 게 미안할 정도이다. 한편으로는 젊을 때 초과수당도 못 받고 그렇게 많은 일을 했으니 그때 받을 돈 지금 받는다는 혼자만의 항변으로 양심의 가책을 물리치고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편해도 너무 편한 한 해다. 그래서인지 오늘 할 일을 자꾸만 내일로 미루고 있다. 책상엔 해야 될 일들이 널려 있는데 미루고 미루기를 계속 반복한다.
바쁠 땐 영어공부도 독서도 오히려 짬 내서 더 열심히 했다. 느긋한 지금은 오늘 안 하면 내일 하고 말지 뭐의 심정이다. 오늘의 내가 못한 일은 내일의 내가 하기로라는 마음으로 매일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내 삶에 대해 조금은 초조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시간은 짧다. 어차피 내년부터는 또 화장실을 못 갈 정도로 바쁠 것이다. 잠깐 주어지는 이 짧은 편안함을 못 누리는 것도 참 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여가라는 뜻의 스콜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43년째 아침마다 학교 간다는 말을 하는 나는 진정한 여가를 못 즐기고 있다. 김정운 교수가 잘 놀아야 성공한다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푼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삶과 너무 달라서 매우 흥미 있게 읽고 공감하며 읽었었다. 근면 성실만이 인생의 다가 아니라고 재미있게 사는 것이 함께 해야 된다고 한다. 지금의 이 느긋함이 몇 달 남지 않았다. 편안하게 내 상황을 즐기고 싶다. 오는 주말에 김정운 교수 책을 다시 찾아 읽어봐야겠다. 나에게 주어진 얼마 안 남은 이 시간들을 잘 즐기기 위해서. AND 근면 성실도 중요하니 몸을 움직여 오늘 일을 내일의 나에게로 미루지 않기로!
이선생, 결재받으러 교무실로 고, 고.
오늘 갑자기 직접 유입 조회수가 많이 나와서 전체 조회수는 오르는데 개별 글 조회수는 오르지 않아요. 신기하네요. 이 직접 유입은 대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