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시간이 늦어진다. 분명 정신은 깨었으나 몸이 일어나길 거부한다. 학교가 가까워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들 밥 줄 시간적 여유만 두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많이 먹진 않았는데 밤새 또 비염으로 고생하다 보니 숙면을 못 취해서이다.
방바닥엔 또 휴지가 한 무더기다. 버텼는데 아무래도 병원을 가는 게 답인가 보다.
카레를 넣어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아들은 카레 양이 왜 이렇게 많아라며 잔뜩 뿔이 났다.
힘이 빠진다. 언제까지 덩치 큰 아들의 투정과 흥정을 달래고 받아줘야 되는지. 화가 난 게 아니고 대책 없는 상황에 말재주 없는 엄마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들은 밥 한 번 나 한 번 쳐다본다. 무심히 샐러드만 먹어댔다. 치우려고 개수대에 섰는데 또 불평이다. 무슨 말을 해야 될까?
"불평하고 화만 낼 게 아니라 방법을 찾을 나이가 되지 않았니? 카레가 많으면 비비기 전에 덜어냈으면 되잖아."
내 목소리에 단정적인 느낌이 묻어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말없이 한 그릇을 다 비우는 아들이다. 이 말이라도 하는 게 맞다는 결론이다.
서로의 감정을 좀 배려하고 살면 좋으련만 내 아들은 그게 쉽지가 않다.
되뇐다. 남자 셋을 위해서 내가 최소한의 말만 하고 사는 게 맞겠구나.
아침 기운이 꽤나 쌀쌀하다. 많은 아이들이 등교 전이라 거리는 한산한 편이다. 신호등 앞에 서서 생각한다. 내 표정은 엄청 굳어 있겠구나. 늘 미소 띤 둘째의 얼굴처럼 되었으면 좋겠는데.
교실 문을 여니 8시다.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인데, 8시 20분부터 등교이거만 10분도 안돼서 한 아이가 등교한다. 맞벌이 집 아이도 아닌데. 엄마들도 사정이 있겠지만 학교에서 말한 시간을 좀 지켜주면 좋으련만. 고요한 시간은 끝나버렸다.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니 퉁 부은 얼굴에 푸석한 피부, 오늘따라 왜 이리 나이 들어 보이나. 가만히 보니 추석 전 염색한 곳에 또 흰머리가 소복이 자라기 시작했다. 오늘은 염색도 해야겠구나.
아이들이 하나 둘 등교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이들은 모두 밝은 기운이 잔뜩 묻어나는 소프라노톤으로 인사를 한다. 내 큰 아이는 저 나이 때도 저렇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 탓일까?
아침 독서가 너무 안돼서 포기하고 일기 쓰기를 시키는데 글자 한 자 쓰고 옆친구랑 말하는 아이들이다. 등교하면 자기 자리 바로 안 가고 친구 앞에 가방 멘 채로 이야기부터 하는 아이도 있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아이들. 다들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다.
그래 즐거우니 됐다. 얘들아. 인생이 별 거 있겠니? 니들도 사춘기가 되면 공부에 찌들어 웃음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지금이라도 실컷 웃으렴.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면 아이 밥을 주고 침대로 갔을 수도 있고 의외로 또 몸을 움직이며 활기차게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알 수는 없지만 출근해서 아이들 밝은 기운을 얻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있어서 다행이다. 시끄럽고 혼을 빼놓는 상황이 벌어질 땐 머리가 터질 것 같지만 밝은 기운을 주는 생생한 아이들과 함께라서 다행이다.
신호등 앞에서 잔뜩 찡그렸던 내 얼굴을 생각해 보니 과연 내 하루가 그렇게 찡그릴만한 하루인가 싶다.
가족은 건강하고, 비염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아프지 않고 출근했고, 반 아이들은 즐거워 보인다. 따뜻한 집이 있고 따뜻한 옷이 있다. 먹을 것을 살 돈이 없어서 걱정할 일도 없다.
오늘 7시 30분에 일어나서 옷을 입고 밥 먹는데 15분이 지나서 7시 48분에 빨리 이빨을 닦고 물을 넣은 다음에 잠바를 입으니 8시여서 가방을 메고 친구와 같이 학교에 왔다. 올 때는 누나들을 봐서 그냥 무시하고 친구와 같이 학교에 와서 지금 일기를 쓰고 있다. 평화로운 하루다.
윤우(가명)가 일기검사를 하러 왔다. 평화로운 하루란다. 왜 그렇냐고 하니 그냥 별 일 없이 준비하고 평범하게 학교에 왔으니까요라고 한다. 별 것 아니고 내용도 없는 일기인데 그냥 평범한 하루라서 평화로운 하루라고 대답하는 녀석이다. 수업 시간에 노래 부르고 무슨 일이든 잘 삐져서 힘들게 하는 녀석인데 오늘은 꼬마철학자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그래 인생 별 거 있나?
큰 탈 없이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하면 평화로운 하루인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