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에 출근해서 8시 10분 경이면 아이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한다. 5,6명만 되면 소란스러워진다. 절대 책 읽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앞에 버젓이 앉아 있는 선생님도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아이들 마음은 안다. 아침에 만났으니 전 날 오후에 있었던 일을 하나 둘 나누고 싶을 것이다. 선생이란 직업으로 월급 받고 생활하는 나에게나 애들에게 시켜야 될 중요한 과업이 책 읽기이지, 볼거리도 많고 재미있는 것도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 어디 책 읽기가 즐거운 일상이 되겠는가. 그저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 알지만 책을 읽으라고 일기를 쓰라고 강요할 수밖에 없다. 얘들아 사실은 나도 이 시간에 티브이나 보고 친구 만나 찻집에서 수다나 떨고 싶단다.
메신저로 날아오는 여러 가지 사항들을 확인하고, 아픈 아이 부모에게서 온 연락도 체크하고 아이들 일기 검사도 하며 바쁜 아침을 보낸다.
수업을 하다 보면 질문도 많고 특히나 수학시간은 학습능력이 천차만별이라 8시 30분에서 1시간이 지나면 9시 30분이 된다는 걸 시계를 가지고 조작활동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30명의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고 개별로 봐주는 활동이 무척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1교시 중에 휴대폰을 수시로 확인한다. 사실 그 뒤로도 수시로 확인한다.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이들 눈치도 보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오는 메시지가 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는 일상이다.
오늘은 3교시 말미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들의 학교에서 일탈 행동에 관한 것이다.
가족 톡방에 아들에게 훈계를 했다. 여지없이 반응은 격하다. 그리고 단톡방을 나가버렸다.
열심히 수업하다가 신경이 곤두선다.
점심 먹으러 급식실에 가면서 선생님께 메시지를 넣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애들 아빠에게 연락해 주십시오. 제가 약도 먹고 있는데 아이 이야기를 들으면 자꾸 충돌하게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아버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직도 제 마음이 단단해지지 못했나 봅니다.'
선생님은 무슨 죄인가. 매번 수시로 연락해야 되는 입장. 그냥 죄송해서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게 나이다. 면목이 없다. 그렇게 오늘 하루 일할 시간이 가장 많은 수요일에, 그냥 어지러운 마음과 함께 교실에서 멍하니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가 브런치를 열었다.
어제 불교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사실을 사실로 바라보아야 괴로움이 없어진다는 법문을 들었다. 사실을 사실로 바라보고 그 사실로 내가 화가 나는구나, 속이 상하구나 인식을 하면 괴로움도 없어진다는데, 사실을 사실로 바라보는 것이 여전히 괴롭다.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 그 법문에 대해서 명확히 이해를 못 했거니 생각한다.
아버지가 처녀 적 시집이나 가라며 여행을 못 가게 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나는 나대로 자식의 공부에 기대를 걸었던 것을 이야기하며 아버지도 나도 다 욕심을 부렸던 것이라고 사례를 이야기했는데, 법사님께서 아버지의 욕심이 아니라 사랑이란 걸 아셔야 된다고 하셨다. 나는 아직도 그게 아버지의 사랑인지 사실 와닿지가 않는다. 그저 성인이 된 내가 내 의견을 끝까지 유연하게 얘기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가 들뿐. 아버지의 권위에 꼼짝 못 하던 내 모습만 떠오를 뿐.
나이만 들었지 철이 들려면 멀었나 보다. 인생의 깊은 맛과 의미도 아직 모르나 보다. 이런 내가 부모이다.
오늘은 한숨과 절망이 밀려오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