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예상도 못했는데 브런치를 단번에 통과하고 나서 나도 글을 좀 쓸 줄 아나보다 착각에 빠졌었고 그 착각은 보름도 안되어서 무너졌다. 브런치에 작가님이 얼마나 많은가. 글을 읽으면서 내 글의 단조로움과 깊이 없음에 실망과 실망을 거듭하는 하루하루를 겪으며 넉 달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관둬야 된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무슨 미련인지 못 관두고 끊임없이 썼다. 그냥 쓴다는 데 의의를 뒀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메인에 8개의 글이 올라갔을 때는 너무 좋았고 메인에 오르는 그 찰나의 기쁨 때문에 관두려다 다시 시작하고 관두려다 다시 시작하고를 반복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브런치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희한하게도 관둬야지 생각이 목구멍까지 찰 때 되면 메인에 올려주기를 반복하더라.
사람들은 그렇게 마지막 희망의 빛이 하나 보이면 또 살아나가고 하는 존재인 것 같다.
아들도 중학교 3년을 힘겹게 졸업시키고 억지로 붙들고 공부시키고 하는 과정을 거쳐서 고등학교를 넣었고, 국립중앙청소년센터의 11박 수련을 갔다 온 후로는 달라지는 것 같았다. (혹시 아들 문제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은 참고가 되시라고 쓴다.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는 11일짜리 1달짜리 숙박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주로 학교 부적응아들이나 문제 학생들이 입소를 해서 여러 가지 활동 프로그램을 4,5인이 1조가 돼서 실시한다. 참가비도 저렴하며 차상위계층까지는 그마저도 수련 끝난 후 돌려준다.) 일단 프로그램 실시하는 중에는 휴대폰도 수거하고 오로지 활동에만 집중해야 되기 때문에 아들은 감옥 같다는 불평을 늘어놓긴 했지만 폰을 사용하지 않으니 정신이 좀 맑아지는지 엄마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새로운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 후 학원도 가고 공부에 대한 열정도 조금 불태웠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들 때문에 또 좌절하는 마음이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자식을 안 키울 수도 없고 어떻게든 바로 살아나갈 방법을 끌어줘야 된다는 사실이 버거웠다.
학기 초엔 이동 점수를 위해서 대회 참여도 했지만 나만 똑 떨어졌다. 요즘도 그 일을 생각하면 자신감이 뚝 떨어진다. 나름 괜찮은 교사다라고 살아왔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한 느낌이었다. 물론 교사라는 직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잘 가르치면 되는 것이긴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시도한 일의 실패는 좌절감을 가져왔다. 브런치 글쓰기도 처음엔 분명 활기차게 시작했지만 매번 어려움을 느낀다. 둘 다 창의성을 요하는 부분이라 창조, 창의, 독창성 이런 창이란 글자는 나와 맞지 않구나라고 느꼈다. 아들도 자꾸 나를 넘어지게 한다.
하지만 쓰러지면 일어나야 되는 게 진리다. 쓰러져서 있는다고 달라질 일은 없다. 쓰러졌다고 누군가 일으켜 줄 순 있겠지만 언제까지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살 순 없다. 스스로 털고 스스로 약도 바르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된다. 상처의 깊이는 다 다르고 아무는 시간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상처는 언젠가 아문다.
쓰러지면 일어나고 상처에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약을 바르고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마음을 가진다면 언젠가는 달라진 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