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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Oct 29. 2023

집 청소의 끝은 어디인가요~~

내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집 청소 앞에서 감성적인 이은하의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가 떠오른다. '집 청소의 끝은 어디인가요~'


집 정리하느라 이 선선한 가을에 땀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다.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저 노래 앞에 지나간 사랑을 떠올린다거나 남편을 원망한다거나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역시 생각 끊기에 청소만 한 것은 없다. 주변도 정리하고 마음도 정화하는데 청소가 최고다.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었나요                      - 아직도 정리는 끝이 안 보이나요
내 모습이 정말 싫어요                                 - 집 상태가 정말 싫어요
또 다른 사랑을 찾아야 하나요                     - 또 한 번 이사를 가야만 하나요
내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 집 청소의 끝은 어디인가요~~~


청소만 하면 분명 지칠 것이라, 청소는 수업처럼 생각하고 쉬는 시간엔 책도 읽다가 유튜브도 본다.

도무지 끝이 안 보인다. 주방 서랍장에 뚜껑 따로 통 따로 널브러져 있던 반찬통들을 정리한다. 냉장고 속을 뒤지니 유통기한 지난 치킨무, 오이지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엄마가 준 호박으로 만들었던 호박죽이 쉬어버린 채로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총각김치에는 골마지가 생겼다. 그동안 배달 음식을 어지간히도 시켜 먹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냉장고 속에 모아둔 각종 일회용 양념과 소스들. 싹 다 정리했다. 냉장고가 텅 비었다. 반찬도 제대로 안 만들고 뭐 하고 살았던 건지 정신이 번쩍 든다. 한 달 이상 무기력증으로 고생해서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눈앞에 없는 아들과 남편에게 미안하다.


주방 싱크대에 덕지덕지 붙은 양념자국들을 깨끗하게 닦아낸다. 오래된 자국들이라 손에 힘이 들어가지만 다행히 하이그로시 재질이라 잘 지워지는 편이다. 주방 타일 바닥에 줄눈들에도 때가 한가득이다. 아무래도 제일 발을 많이 딛는 곳이고 물도 많이 떨어지는 곳이니 거실 타일 줄눈에 비해서 더 더럽다. 오랜만에 정신 차려 때를 제거해 본다.


남편 서랍장에 가을 옷들을 위칸으로 옮기고 여름옷은 아래칸으로 위치를 변경한다.


압력밥솥을 새로 산지 두 달이 되었는데 코팅내솥만 사용하고, 스텐내솥의 연마제 제거가 귀찮아 던져뒀는데 깨끗이 씻고 밥솥의 세척코스까지 돌려 본다.


그렇게 끝도 없이 움직이는데 끝이 안 보인다. 어제오늘 빨래만도 3번은 돌렸는데 신기하게 방에 가 보면 빨아야 될 옷이 또 나온다.


이사를 가야 되나 싶은 마음까지 든다. 집이 깨끗해지려면 미니멀리즘까진 아니더라도 몇 년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이나 옷, 책 등은 버려야 되는데 잘되지 않는다. 특히 책에 대한 미련이 집을 더 어지럽게 보이게 한다.


끝이 안 보이는 집정리. 전력투구하지는 않았다. 2박 3일은 나를 위해 쓰고 싶었기에. 아마 청소에 목숨을 걸었으면 버릴 짐을 조금은 찾아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열심히 딸 흘리며 청소했으나 집은 여전히 지저분해 보인다. 남편과 아들들이 돌아와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일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다. 애들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한 남편한테 짠 하고 깨끗한 집을 보여 주고 싶은데 말이다.


청소하면서 몇 가지 결심을 했다.

1. 홈쇼핑을 보면서 필요 없는 물건을 사는 충동구매는 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도 돌려서 사용하는 채칼을 샀는데 잘 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반찬도 제대로 안 만들면서 무슨 욕심을 낸 것인지. 지구에게 미안하게 쓰레기를 또 생산해 냈고, 돈도 낭비했다.


2. 옷은 향후 1년간 절대 사지 않겠다.

과연? 최소한 가을 겨울 옷은 사지 않을 것이다. 안방 드레스룸의 옷을 보면 한숨이 한가득 나온다. 정리하느라 힘들고 세탁소 맡기고 찾느라 힘들고 왜 이렇게 걱정거리를 힘들게 번 돈을 쓰면서까지 만들어내는 것인가.


3. 가방은 정말 안 산다.

대체 언제 저렇게 가방이 많아진 것인지. 처녀 적엔 가방 하나 사면 그것만 들고 다녔는데. 종류별로 뭐 이리 사댄 건지. 스트레스받는다고 명품 가방까지 사 봤는데 들지도 않는다. 명품도 아무나 드는 건 아니다. 난 그냥 적당한 가격의 가방이 편하다.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아도 되니까.


4. 물욕을 부릴 거면 기부를 하자.

옷 살 돈 물건 살 돈 아꼈으면 아마 1년쯤 맘껏 무급 휴직해도 될 거 같다. 아들한테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정말 쇼핑을 많이 했다. 이젠 쇼핑으로 스트레스 해소하는 바보 같은 짓은 안 할 것이다. 쇼핑할 거면 지금 하고 있는 기부 금액을 늘리거나 또 다른 기부할 곳을 찾는 게 맞다.


5. 패스트 패션 거부.

싸다고 산 옷들. 특히 홈쇼핑의 7개 몇 만 원 이런 옷들은 정말 쓰레기밖에 안 된다. 옷 쓰레기들이 플라스틱 못지않게 지구를 오염시키고 잘 섞지도 않는다는데.


6. 장은 그때 그때 작게 보기.


숨차다. 너무 많으면 지키기 힘들 테니 요기까지. 그동안 너무 많은 돈을 낭비하고 물건에 집착했던 모습을 반성한다. 물건이 내 생활을 잠식하지 않도록 더 이상의 소비는 그만!

표는 하나도 안 나지만 내 마음이 만족이니 된 걸로. 마저 정리하고 밤엔 남편과 자식 마중 나가서 환히 웃어주기로.

요거 정리가 뭐 그리 큰 시간을 요한다고 뚜껑 따로 용기 따로 던져놓기 바빴던 거지. 가끔 무슨 큰 일 하고 사는 양, 사소한 정리소홀히 하는 모습. 바람직하지 못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5aPGBpP5Cxo

이은하의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글 쓰다 보니 새로운 용어도 알게 되었다. 세계 김치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김치에 생긴 하얀 물질의 이름은 곰팡이가 아닌 '골마지'입니다. 김치의 효모에 의해 생성되는 물질로, 독성이 없다고 밝혀졌습니다. 효모는 막걸리나 빵을 만들 때 필요한데요. 알코올과 향기성분을 만들어내는 물질로, 발효식품의 풍미를 향상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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