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사람은 아니지만 케이크를 사봤다

작은(?) 이벤트는 가족을 화합시킨다

by 나무 향기
아기자기하다
1. 여러 가지가 오밀조밀 어울려 예쁘다.
2. 잔재미가 있고 즐겁다.
(이 말의 어원은 뭘까. 쓰고 가만히 보니 참 이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아기자기하게 작은 것을 챙기는 사람이 아니다. 자라는 과정 자체도 나를 아기자기한 사람으로 형성시키기에는 경험의 누적치가 절대 부족하다. 그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만 챙기고 챙김 받고 살았기에. 그렇다고 그런 내 자람의 과정을 후회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정도면 잘 살고 있고 아기자기하진 못하지만 나만의 장점이나 고유의 특징은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기자기하지 못한 성격은 자식을 키우는 데는 약간의 걸림돌이 된다는 걸 문득문득 경험한다. 아이들이 조금 정겹고 살가운 사람으로 자라려면 아무래도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엄마의 세심함이나 살가움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쪼그만 유아였을 때 동료 선생님은 나보고 말하곤 했다. 선생님은 왠지 아들만 낳을 거 같아요. 그 말이 아마 일상생활의 말투나 행동 등에서 아기자기함이 부족한 나를 보고 나온 말일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또 돌아보면 내 내면은 반대인 것도 같다. 덩치에 안 맞게 러블리한 옷들을 사고 싶어 하고(아주 러블리하고 여성여성한 옷들은 크게 안 어울려 포기하지만) 마로니 인형을 가지고 싶어 했고 액세서리를 좋아하며 집에 소품을 두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아기자기하지 못한 나는 이벤트 같은 것을 크게 즐기지 않는다. 내 생일날 내 손으로 케이크를 사 본 적도 없고 케이크가 없어서 섭섭하지도 않다. 처녀 적에도 밸런타인이니 화이트 데이니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10월의 마지막 날 내 손으로 케이크를 샀다.


집순이인 내가 차를 두고 출근한 까닭에 퇴근하는 길에 빵집에 들러 케이크를 사게 되었다. 아마 차로 출근했으면 집에 들어와서 나가기 싫어 포기했을지도.

빵집에 들어서서 진열장을 둘러본다. 새하얀 생크림 가득한 케이크, 노란빛이 영롱한 고구마 케이크, 단 맛이 절로 느껴져 부르르 떨게 만드는 초콜릿케이크까지. 예쁜 자태는 소비욕구를 불러오지만, 못 보던 사이 케이크 값이 너무 올랐다. 예정은 작고 저렴한 케이크를 살 작정이었으나 진열된 케이크는 모두 3만 원을 넘기고 있었다. 순간 몰려드는 고민.

'이 돈으로 이걸 사야 되나?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아니야. 이런 기회라도 만들어야 식사시간조차 4명이 같이 앉을 일 없는 우리 가족이 함께 앉아 다만 몇 분이라도 이야길 나눌 기회가 생기겠지?'


갈등하다 후자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마음을 굳히고 나니 비싼 케이크 앞에 얼어버렸던 내 손이 그중 제일 비싼 케이크를 고르고 있었다. 11월은 긴축재정하자고 가족단톡방에 호기롭게 외쳤건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데, 다행이다. 오늘은 아직 10월이라고.


아이들 식사를 주고 학원 갔다 오는 둘째,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렸다. 시간은 왜 이리 더디 가는지. 내가 처음으로 기획한 거나 마찬가지인 이벤트에 조바심이 난다.


가족이 다 모였다. 촛불을 켜고 엄마의 200명 독자 달성을 축하한다.

아 부끄러운 상황. 하지만 철판을 깔아본다. 아들들하고 온 가족이 모여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야들아, 노래 불러야지. 엄마 독자 200명 달성 축하한다고."

큰아들은 걸걸하게 한 겹 종이라도 덧씌운 듯한 목소리로 저음의 축하 노래를 둘째 아들은 변성기로 목소리가 바뀌었지만 그래도 나름 청명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준다.

큰아들은 손가락 두 개를 크로스하며 뭐 이딴 행사를 하냐는 듯한 시큰둥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작은 아들은 손바닥 아프게 손뼉 쳐 준다.(큰아들이 참여해서 손가락 두 개지만 박수를 치고 노래를 하는 것은 내면은 반대라는 증거다.)


"200명 축하합니다. 200명 축하합니다."

작은 아들에게는 녹음을 하겠다고 노래를 한 번 더 시켰다.

짜식. 그래도 아직 애기다. 하란다고 한 번 더 해주는 모습이 기특하다.


이게 뭐라고. 비싼 케이크까지 사면서 이러나 생각에 민밍함도 몰려왔지만 알록달록 다양한 맛의 케이크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가족이 같이 모일 시간도 만들고, 별 거 아니고 민망하지만 축하도 함께 하고, 함께 기뻐도 해 주고, 그것이 큰 의미가 아닐까 하고.

그렇게 내가 생애 처음 기획한 거나 마찬가지인 이벤트가 막을 내렸다.

민망함은 내 몫이지만 민망함을 잘 견디고 아무렇지 않게 뻔뻔하길 잘했다.


아들들도 나중에 가정을 이루었을 때 사소한 것도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자상하고 따뜻한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아빠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리라. 앞으로 내 곁을 떠날 날이 점점 다가오는 아들들에게 아기자기한 기억들을 좀 더 많이 경험하도록 해주어야겠다.

(내 곁을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는 거 맞니? 설마 니트족, 캥거루족이 되는 건 아니겠지? 아찔하다.)

(요 이벤트는 작가 지뉴님의 조언으로 하게 된 것이다. 지뉴님 댓글이 아니었으면 절대 안했을 것이다. 브런치는 참 따뜻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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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가지 맛의 케이크. 그 중 몰랑 몰랑한 고구마가 들어간 케잌이 제일 맛있다. 아들들의 선택은 초코케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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