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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Nov 08. 2023

화장 안 하고 출근하다

화장과 헤어질 결심

불교대학 수업이 있었다. 이번 주 법문의 내용은 수행자가 지켜야 될 8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중 사치하지 않고 살며 남에게 베풀고 보시하는 부분에 대해서 같이 수업을 듣는 이들에게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사치를 하고 사는 사람인가? 27년 직장생활 중에도 명품이란 건 근래에 사 봤고 물건을 살 때 남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를 크게 중요시 여기지 않으니 사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차도 17년을 몰고 삼 년 전에 바꾸었다. 아시는 선생님은 인생 뭐 있다고 벤츠로라도 바꾸지, 겨우 그 차로 바꾸었냐고도 하시는데 살짝 마음이 동했다가 벤츠 끈다고 내 인생이 달라질 것도 아니고라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법문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과연 나는 사치하지 않는 사람인가 고민에 빠졌다.


사치품이란

생활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고가의 물품.

-일부 부유층들은 외제 사치품을 사들이며 과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경제 수준과는 동떨어진 사치품의 과다 수입이 소득 계층 간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이렇게 다음에서 검색이 된다. 

누군가 다 알고 있는 어휘지만 나는 사치를 하는가 않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다 보니 습관처럼 사전을 찾게 된다.


생활에 필요한 것을 산다. 분수에 맞지 않는 고가의 물품은 사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치하지 않는 사람.

하지만 여기서 문제 발생. 생활에 필요한 것을 사지만 너무 많이 산다. 남자 셋이 주는 스트레스가 만만찮아서 어느 순간 쇼핑을 시작했다. 집순이 특성상 오프라인 쇼핑을 그다지 자주 하지 않는데, 온라인 쇼핑이 얼마나 편해진 세상인가? 손가락 한 번 꾹 눌러주면 내가 원하는 게 집 앞으로 1,2일이면 쏙 도착한다.

그렇게 집안 가득가득 물건이 쌓여간다.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처녀 적에는 코트 하나로 겨울을 버텼건만 장롱 속엔 갖가지 코트가 가득하다.

여자들 옷은 종류가 너무 많다. 니트만 하나만 살펴봐도 원단 다르고 디자인 다르고 색깔 따라 다르다. 홈쇼핑을 보면 쇼호스트들이 캐시미어 하나쯤 갖춰야죠, 올드 머니룩이라고 외친다. 캐시미어 사야지, 물빨래 가능한 거 사야지, 남들 다 입는 꽈배기도 사봐야지, 길이 짧은 거 긴 거, 라글란 소매 등등 끝이 없다. 그렇게 쟁여 나간 옷이며 가방이 끝이 없다. 

어느 순간 각성을 하면 옷 그만 사야지 하면서 가방으로 옮겨 가고, 가방에서 화장품, 화장품에서 아이 옷으로 옮겨 다니며 내 것 사는 건 아닌데 합리화하며 끝도 없는 쇼핑의 늪에 빠진다. 


수업을 듣는 한 분이 말씀하신다.

"오늘 화장 안 하고 출근해 봤어요. 아무도 몰라봐요."

출근하려고 화장대 앞에 앉아보니 그득한 화장품들. 난 그동안 대체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던가 연민의 마음도 일지만 한갓 물건 하나로 나를 위로할 줄 밖에 모르다니 서글픔이 밀려온다.

그래 나도 화장 안 하고 출근해 보겠다. 건조해질 얼굴에 적절한 기초 화장품만 바르고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고 눈썹만 그리고 입술만 발라보았다. 어색한 듯도 한데 그다지 나쁘진 않다.(물론 이걸 화장 안 했다고 말하냐고 하실 분이 있을지는 몰라도. 잡티를 가려주고 피부톤을 한껏 올려 주는 파운데이션을 하지 않았다는 건 나에게 큰 용기이다.)


둘째와 엘리베이터에 탔다.

"00아, 엄마 오늘 화장 안 했어."

"화장 안 했어?"

살짝 놀라는 눈빛이긴 하다.

"눈썹만 그리고 입술만 발랐지."

묵묵부답, 과묵한 남자의 대답 속 의미는 정확히 모르겠다.

뭐 신경 쓰지 않기로.

화장 안 하니 시간도 단축. 무엇보다도 퇴근 후 피곤에 화장 지우기 귀찮은 마음과 갈등하지 않아도 되겠네.


화장 안 하고 출근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듯하다. 

화장해서 이뻐 보인다고 내가 정말 이쁜 사람인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얼평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도 중년 아줌마 얼굴에 누가 관심을 두느냔 말이지.

화장 안 하면 보기 싫을 거야, 예의가 아니야, 추해 보일 거야라는 말들은 다 내 마음에서 나온 생각일 뿐이다. 


설마 색조 화장 안 한다고 기초화장품 그득히 사대는 건 아니겠지?

옷 쇼핑도 끊었고 화장품도 있는 것 다 소진할 때까지 사지 않을 것이다. 불교대학에서 권유하는 대로 아낀 소비만큼 보시를 하기로. 사치품은 아니지만 사치품만큼 사 대던 소비 생활에 맥을 끊고 건강한 사람이 되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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