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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Nov 14. 2023

엄마가 깎아 주던 무와 고구마 맛이 생각나는 계절

우리 집 주방 서랍장엔 간식이 떨어질 날이 거의 없다. 설탕 범벅에 밀가루뿐인 각종 과자들을 끊어보자고, 둘째가 과자로 배를 채우고 밥을 안 먹는 습관 때문에 이러다 큰일 나겠네 하는 심정에 1, 2일 과자를 안 사보지만, 간식 준비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마음과 게으름이 어느새 서랍장을 과자로 가득가득 채운다.

어릴 적 부잣집 애들이나 사 먹을 수 있었던 버터링 쿠키를 비롯해 각종 과자를 맘껏 살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은 되니, 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것들로 서랍장을 채울 수 있는 간편함은 몸의 힘듦을 줄여주지만 마음속 쌓이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은 점점 커진다.


간식에 대한 각성을 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작은 아들이 밥 한 공기를 다 먹지 않는 것이 반복되거나, 식탁과 소파 마룻바닥을 비롯해 여기저기 과자 비닐봉지가 굴러 다닐 때이다. 이 두 가지 상황이 반복될 쯤에야 느지막이 정신을 차린다.

안돼. 간식이 언제까지나 과자일 거야?


그리고 어린 시절 먹었던 간식들을 생각해 본다.

삶은 고구마, 감자, 계란. 그리고 겨울이면 깎은 무나 깎은 고구마.

겨울날 외투를 입고 집안에 있어야 될 정도로 차가운 공기를 머금고 있는 주택에 살 때면 이불을 펼치고 안방에 둘러앉아 티브이를 보는 게 하루의 휴식이었다. 아버지는 오시지 않았고 겨울밤은 긴 가운데 잠을 청하기 싫어 주말 드라마나 미니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엄마는 어느샌가 일어서신다.

 과묵한 우리 형제들이 배가 고프다거나 뭔가 입이 심심하다고 하지 않아도 엄마는 부엌에서 무나 고구마를 들고 오신다. 그리고 깎은 무를 과도도 아닌 식칼로 뚝뚝 베어주시면 받아서 한 입 베어 물어본다. 희한하게도 무에서도 과즙 못지않은 시원한 즙이 나오고 물은 머금은 무를 아삭 씹으면 쌉싸르한 가운데 달콤함까지 느껴졌다. 겨울 고구마는 어떤가? 희끄무레하니 노란 고구마를 베어 물면 느껴지는 그 달달함. 과일의 달달함과는 또 다른 차원의 달달함이다.


금방 삶은 고구마를 호호 불며 까먹거나, 삶은 감자에 설탕을 솔솔 뿌려 주시면 맛있게 먹었던 우리들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저녁엔 엄마가 삶은 달걀을 들고 오셨는데 달걀에서 뽁뽁, 뽁뽁, 삑삑 소리가 났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살짝 공포를 머금은 표정이다.

"엄마, 달걀이 알을 깐 거야? 설마 병아리?"

"그럴 리가?"

"아 무서워."

그리고는 다들 달걀에 손을 못 대고 있는데 역시 우리 집에서 제일 겁 없는 엄마가 나서서 달걀을 탁 깨뜨리셨다. 그저 달걀 안에 형성된 공기층에서 내는 소리였건만 우리 모두 삶은 달걀에서 병아리가 부화했다고 잠시 착각에 빠졌던 재미있는 추억도 생각이 난다.


엄마의 바쁨과 게으름과 관심 없음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의 간식을 주지 않아서 아이들은 삶은 고구마도 감자도 큰 흥미를 못 느낀다. 그저 달콤함이 한가득인 과자나 좋아하지.


오늘 신선한 무를 사서 아이들에게 깎아줘 볼까? 분명 거부하겠지. 자연의 맛을 모르는 아이들에 대해 아쉬운 마음과 그렇게 키운 나를 되돌아본다.

사진 모두 픽사베이



#라라크루 #라라크루 화요일 갑분 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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