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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Nov 23. 2023

법륜스님의 조언을 듣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는 청년에게

아침저녁으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틀어놓고 산다.

(1965. 영화감독이 꿈인데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

사회복지사 공부를 한댔는지, 사회복지사인지 분주히 왔다 갔다 하면서 들어서 정확히 파악이 안 되는데, 만일 일정 나이에 직업 없이 꿈만 추구한다면 내가 부모라면 걱정과 시름이 한가득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 청년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글이 안 써질 때가 힘들어서 고민이라고 한다.


법륜스님의 답은 명쾌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허를 찔리는 것 같고 정곡을 찔려서 속상할 수도 있겠지만.


쓰기나 창작활동은 일단 재능을 타고나는 것이 많습니다.
자기도 안 써져서 고민되고 억지로 쓰는데, 읽는 사람이 누가 좋아하겠나요?
내가 신나서 열정을 다해서 쓴 글도 남이 읽을까 말까 하는데 억지로 쓴 글을 누가 신나서 읽어요?
 안 써지면 쓰지 마세요. 뭐 하러 쓰려고 하나요?

토시 하나까지 그대로 기억 못 하지만 대충 위와 같은 내용이다.


백번 옳은 말씀이다. 나의 쓰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재능이란 말에 백번 공감한다. 친한 20대 후배는 말을 참 잘한다. 언변의 달인이다. 그런데 이 후배는 공부도 엄청 잘했지만 본인 스스로 말하곤 했다. 저 책 안 읽어요, 책 안 좋아해요, 그런데 말은 잘해요.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 후배가 말을 잘하도록 영향을 끼친 환경적 요소를 속속들이 모르니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책 안 읽어도 말 잘하는 걸 보면 말하는 재주도 타고 난다. 


난 체육을 지지리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골프를 배워서 남편과 취미를 같이 해야 된다고 충고하지만 배울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는다. 운동 신경이 둔하고 운동을 몸으로 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시뮬레이션하며 엇박자로 하기 때문이다. 운동 재능도 타고 난다.


학교 선생이니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공부 재능도 타고난다는 걸 실감한다. 구체물까지 가져와서 10번 20번 설명하고 문제를 풀려도 도로아미타불인 아이들이 있다. 경험한 것을 이야기시켜도 아무것도 생각 안 나요 하는 아이들이 있다. 공부 재능을 못 타고 난 아이다.


글쓰기 재능도 타고나는 것 같다. 아마 글을 쓸 수 있는 감성이나,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관찰력을 타고 날 것이고 거기에 후천적 독서나 생활의 경험이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뒷받침이 될 것이다.


재능 없는 내가 뒤늦은 나이에 글을 쓴다고 끄적이면서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요즘 생활과, 오직 게임만 하는 아들의 암담하고 처참한 성적표와 불투명한 미래, 아들도 바로 못 키웠고 못 키우고 있으면서 상황을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은 건지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모습과, 이런저런 것들이 겹쳐진다. 내 마음이 아이들이 그리는 스크래치 북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커먼 색으로 도배된 스크래치 북을 긁으면 온갖 색들이 다 모여 있다.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애써 담담한 척, 애써 괜찮은 척 결코 밝은 색은 아니지만 그나마 검은색 한 가지인 것 같은 상태로 살고 있다. 그 검은색 마음을 들여다보면 온갖 색깔들 모여있다. 밝은 기운, 희망, 기대, 위로의 마음도 있지만 한쪽 구석엔 절망 괴로움 분노 등이 웅크리고 있다.


어제 배가본드 작가님이 내 초기 글에 라이킷을 하시고 댓글을 다셔서 한 번 읽어봤는데 이건 뭐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 글이다. 왜 하필 그 글을 읽으셨나. 물론 다른 글도 뭐 크게 기대할 건 없지만. 다시 읽어보니  뭘 이런 걸 이 공간에서 읊조리고 있었나 싶은 글. 밤새 고민했다. 내 수많은 글 속에서 예전 글들을 꺼내 읽고 발행취소를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얼굴 붉어지는 마음. 얼굴 붉어질 일들만 계속 생겨도 사람이 살아가는 건 절망이나 괴로움의 마음만 있는 건 아니고 가끔씩 희망적이고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장밋빛 상황도 있고, 그런 마음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 붉히다가도, 저 글들을 고치고 수정하면 되지 않을까? 초기 글보단 지금이 좀 낫네 그러니까 계속 써야지 하는 나만의 주관적 판단이 섞인 희망적인 중얼거림도 해보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걸 지금까지 살면서 자주자주 깨달았으면서도 빛이 안 보이는 아들에 대한 생각이 온갖 상념을 불러오며 여러 가지 생각들로 가지를 뻗는다. 내 미래마저 암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료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내 파이와 아들의 파이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살아요. 다른 인생인데 아들  인생으로 내 인생이 다 무너지면 안 돼요."


스크래치북 검은색 아래 밝은 노란색이 보일 때까지 힘껏 긁어본다.



2023년 11월 23일 점심시간. 다음 시간 체육활동을 하기 위해 웬일로 조용히 그리기를  완성하고 있는 아이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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