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의 반대말이 뭔지 알아?

by 나무 향기


"엄마 진심의 반대가 뭔지 알아?"

"거짓? 가심?"

"히히 농심."

이렇게나 대화 같지 않은 대화만 짧게 짧게 나누는 둘째 중학생이지만, 그 짧은 대화가 나를 흐릿하게나마 웃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신라면이 생각난다. 맵지만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진심과 농심이 비교당하다니. 진심 웃기는 짬뽕 같은 아이 말이다.


어제저녁 독감으로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어서 애처로워 들어갔더니 잠이 들어 있었다. 폰에 유튜브가 재생되고 있어서 불빛을 온 얼굴에 받으며 자고 있으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얼른 휴대폰을 빼내는데 어랏 침대 옆 협탁에 휴대폰이 하나 더 있다. 이게 뭐지 하고 잠시 멍해졌지만 이내 사태 파악 완료.

형의 구 폰을 들고 유튜브, 게임 등등을 하고 있었던 것이고 한 달가량 나를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학생 아들의 폰에는 휴대폰 제어프로그램이 깔려 있다. 형의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진 않은 강박관념이 강할 수밖에 없는 엄마이다. 다행히 그럭저럭 수용하고 있는 아들이었는데 본인에게는 감질맛 나는 폰 사용 시간이었으리라. 나름 머리를 굴려 살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큰아들로 겪은 수많은 고충이 10배속으로 지나갔고 작은 아들에 대한 염려가 화로 분출되었다. 작은 아들을 혼내는데 큰아들이 거든다.

"쟤도 똑같아. 나보다 나을 것도 없어."

칭찬받을 일도 없고 자존감은 바닥인 큰아들이 이때다 싶어 거드는 한마디에 가만있었으면 되었을 것을. 그래 너보다 나을 것도 없다고 편이라도 들지 않을 거면 가만 있었으면 나았을 것을.

"너보다 낫거든."

쓸데없이 객관적이 되어 버린 말 한마디에 큰아들이 터져버렸고, 2차 전쟁이 시작되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크리스마스날.

아침부터 집안에는 정적이 흐른다. 엄마가 망쳐놓은 집안 분위기다.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대책도 안 서고 대책을 세우고 싶지도 않으니 오늘도 내가 제일 문제다.


"그럼 이제부터 농심 말고 진심을 담아 대화해 보자."

큰아들은 무대책이고 작은 아들이라도 다독여야 된다. 작아진 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는 중학생이다.

"중학생, 왜 공부해?"

"몰루."

"공부 잘하고 싶어?"

"응"

"그럼 목적이 있어야지? 목적이 뭐여?"

"몰루."

몰루라는 국적불명의 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유튜브 속 언어인지, 이 동네 아이들 말인지 당최 짐작도 불가하다.

"게임은 왜 해?"

"재미있으니까?"

"그건 목적이 명확하네. 그럼 공부하지 말까?"

"아니. 공부해야지."

"그럼 왜 공부하는지 알아야 될 거 아니야? 그래야 공부가 되지."

"공부하고 커서 잘 살아서 게임하려고."

하하 웃는 중학생이다. 심각해지는 엄마다. 한 공간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넌 즐거움 난 걱정.

"아유, 그게 목적이라고?"

"아~니. 뭐가 됐든 동기부여는 돼야 되잖아. 게임하고 잘 살려고 공부하면 된 거지."

많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목적이 없다. 공부에 목적이 있는 아이들은 열심히 할 것이고 당연히 잘할 것이다. 아무 목적 없고 재미없는 공부를 손에 놓지 않고 최소한의 교양을 위해, 어떤 상황에 지혜롭게 대처할 근간이 될 지식 마련을 위해, 그나마 근근이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장난 같은 아들과의 대화에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교육부는 진로교육에 애쓰라고 지침을 내려 보내고 진로 교육 시간을 확보하고 초등부터 중등까지 진로교육이랍시고 뭔가를 해대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목적도 없고 꿈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아이들의 꿈에 대한 동기부여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몇 시간의 진로교육으로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고 부모가 꿈을 심어주는 것도 여의치는 않다. 맞벌이 부모가 점점 많아지는 상황에서 아이들과 얼굴 맞대고 대화다운 대화를 할 시간도 줄어들고 있는 게 대다수 가정의 현실이니 말이다.

중학생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돈 많은 백수'라고 한다. 돈 많은 백수는 로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사실을 모르는 중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진짜 돈 많은 백수야?"

"장난이야."

"그럼 진짜 꿈이 뭐야?"

"언젠가 생기겠지."

언젠가 생길 꿈을 위해 많은 경험과 지혜와 사랑을 물려줘야 될 역할이 부모에게 있을 것이다. 어제의 내 모습은 스위트 홈 속 분노와 절망으로 일그러진 괴물 같은 모습이었다.(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스위트 홈 시즌 1부터 2까지 정주행 하다가 나의 화가 폭발해 버린 상황이었다.) 괴물이 되어도 아름다운 괴물이 있고 껍데기는 사람임에도 속은 어떤 괴물보다 추한 사람도 있다. 수행이다 뭐다 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다가 한 순간 허물어져 괴물이 되어버린 내 모습에서 또 한 번 생각한다. 아이들의 모습은 부모가 만든 게 맞다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이 유전자의 힘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콩밭이니 콩이 나지 팥이 날 수는 없다고. 콩밭에서 팥이 나려면 팥을 뿌려줘야 된다고. 콩밭에서 튼실한 콩이 나려면 비료도 주고 벌레도 잡아주고 흙도 잘 다져줘야 된다는 것을. 아이가 살아갈 험난한 세상에 지혜를 펼칠 밑거름은 부모의 평온한 마음과 지혜와 인내와 수용과 끈기가 되어야 된다고.

아들을 사랑한다는 말이, 엄마다운 엄마가 되자는 말이, 나이답게 살자는 말이 농심이 되지 않고 진심이 되려면 부모가 끊임없이 노력해야지, 노력하지 않는 자식을 탓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바탕 전쟁 후에 또 뼈저리게 느끼며 후회하는 엄마이다.


한 줄 요약: 농심에서 만드는 라면처럼 일회성으로 먹고 말 음식만 제공하는 부모가 아니라 냉장고 속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든든한 밑반찬을 넉넉하게 제공할 수 있는 부모가 되려면 해야 될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된다.

#라라크루 6기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뚝뚝 떨어져 쓰지 않고 싶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자꾸 하는데 쓰게 만드는 동력이 되는 라라크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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