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좀 그만 적어
중학생 아들이 사회를 너무 싫어한다. 중간고사 기간에 20점 받고 말겠다는 녀석을 억지로 붙들어 앉히고 벼락치기를 시켜서 간신히 그냥저냥 한 점수를 받게 했다.
이번 사회 범위는 공부 안 하면 정말 10점도 못 건질 내용이다. 정치와 법에 관한 내용이다.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붙들어 앉히고 삼일에 걸쳐 공부를 시켜며 그냥 내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았다. 중학교 시절에 사회에 이런 내용이 있었나 싶다. 정치 제도, 정치 과정, 정치 주체의 역할, 지방자치제도, 법의 종류와 집행 방법 등 안 외우면 도저히 풀 수 없어서 요리조리 맘대로 번호를 찍거나, 연필을 굴려서 번호를 쓰거나, 한 번호만 마킹해서 낼 지경이다.
3일 동안 공부시키며 토할 것 같은 심정인데 아들은 그럭저럭 내용을 이해하긴 하는데 영 집중은 안된다.
중학생이 adhd가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세는 구부러져 있고 목은 거북이처럼 빠져 있고, 2분을 못 넘기고 딴 말을 하며, 설명 후 문제를 풀 때는 볼펜으로 문제에 아무렇게나 선을 긋고 심지어 문제집에 무의미한 선을 직직 그어대며 달팽이도 만들었다가 별도 그렸다가 문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난잡하게 낙서를 해댄다.
공부시키는 엄마만 숨 넘어갈 뿐 아들은 느긋하다. 내 인생에 사회 점수가 20점이 나오든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나는 그저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란다라고 외치듯이.
너무 힘든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맨날 나가 놀고 방에서 게임하느라 나오지도 않는 아들인데 시험 공부 시킬 때는 대화를 많이 한다.
열심히 깜장 볼펜 낙서를 해대던 아들이 한 문제 풀고 말을 붙인다.
"엄마, 있잖아. 브런치 말이야."
"왜? 공부하자니까. 뜬금없이 브런치 이야긴 와 하노."
"엄마 글 읽는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 엄마 글을 왜 읽어?"
따뜻한 집에 있다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갔는데 훅 불어닥치는 한기를 한 몸에 맞을 때, 오후에 낮잠 자다 깨서 시계를 봤는데 7시는 넘었고 출근할 시간이 지난 걸 보고 아 어떡해 절망하며 허둥대다 지금 일요일이었구나 할 때, 우아하게 허리를 곧추세우고 걷다가 빙판길에서 줄떡 미끄러지면서 시선을 어디 둘 지 모를 때, 아들에게 보낼 문자를 잘못 복사해서 학부모한테 보냈다가 읍소하며 잊어달라 지워달라 할 때의 느낌이다.
아들의 속마음은 물을 겨를도 없이 당황함과 함께 불쑥 튀어나온 말은 궁색하다.
"할 일 많으시지. 다들 바쁘신데 짬 내서 글 쓰시는 거야. 성의로 읽어주시는 거지."
"익명이라 모르니까 안 읽으면 되잖아. 바쁜데 뭐 하러 읽어."
"엄마 브런치를 구독하고 계시니까."
어쩌다 내 글을 구독하는 덫에 걸려서 성의로 읽고 계신다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친다.
"구취하면 되지."
구취라니. 구독취소라는 말을 이렇게 듣긴 처음이다. 그래 너랑 나랑 나이차가 36년이구나.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조금씩 옅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 사회를 생각하면 너와 나의 나이차는 만만찮구나. 극복하기엔.
"구취는 섭섭할까 봐 못하시겠지."
구독의 덫과 그물을 벗어던지기는 예의 바르고 정 많은 브런치 독자님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니라.
"글 좀 그만 적어."
"왜 그만 적어?"
아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문제풀이로 들어갔다.
중학생은 곤란한 말에 답을 하지 않고 설명이 필요한 긴 말은 안 하려고 한다. 그리고 설명할 만큼의 말재주도 갖춘 것 같진 않다.
그냥 내 맘대로 짐작한다. 늘 그렇듯이. 아마 엄마가 왜 쓸데없고 재미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재미없어도 인생에 소용없어도 늘 짬 내서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만, 아들의 한마디에 독자님들에게 새삼 더 고마움을 느낀다.
엄마 글 읽는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 엄마 글 왜 읽어라는 마음을 구독하시는 분들도 느끼지 않게 하고 싶지만 글쓰기의 여정은 멀고도 험난하다. 이제 출발선에 서서 한 세 걸음 디딘 느낌이랄까.
뼈 때리는 말을 중학생 아들이 해줘서 마음이 덜 아프지, 어른이 했더라면 아마 와닿는 강도가 다를 것이다.
중학생 아들. 언제나 솔직하게 엄마 주변의 일들에 대해서 네 생각을 말해줘서 고맙다.
어떨 땐 아이들의 가감 없는 솔직한 충고가 살짝 덜 아프면서도 깊이 생각하게 하는 큰 힘이 된다.
'엄마 글 읽는 게 헛되지 않도록 엄마가 좀 노력할게. 아들아.'
문제 푸는 아들의 옆모습을 보며 혼자 생각에 잠기는 저녁이다.
오늘도 읽어주시고 라이킷해 주시는 독자님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들의 사회 점수는 정말 처참했다. 내 노력이 무색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