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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an 17. 2024

엄마, 1 했으니 이제 49만 해.

방문을 닫고 통화를 했건만 친구와의 전화 통화를 둘째가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ELS로 인한 자산 손실에 대해 둘째가 함께 걱정하기 시작했다. 걱정이라기보단 그냥 살짝은 말장난 같은 대화에 가깝다. 

"엄마, 그 정도 돈이면 1프로 이자면 엄마 월급이겠네?"

중학생이라 그 정도 셈법은 가능하다.

"아마도, 그런데 더 잃을 수도 있어."

"와, 엄마. 어떡해? 이제 영끌하자 우리."

"어떻게 영끌해?"

"이것저것 당근에 팔아보자."

"그래? 그럼 뭘 팔지? 니들 어릴 때 갖고 놀던 터닝메카드? 그거 다 털어서 1만 원에 팔면 될까?"

"아, 엄마 그건 너무하다. 내가 당근에서 찾아볼게. 9만 원에 내놓은 사람 있는데?"

"몇 개?"

"하나, 둘, 셋, ~~19개 정도."

"그렇게 비싸게 내어놓으면 아무도 안 살 거 같다. oo아. 맥포머스 팔아볼까?"

"엄마, 맥포머스 찾았어. 오, 다 서울에서 거래된 건데 6만 원, 5만 원 등 등 있어."

그렇게 우리의 시시껄렁한 당근 팔이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엄마, 터닝메카드 얼마 주고 샀었어?"

"만원, 이만 원 정도에 샀던 거 같네. 정확히 기억 안 나."

"야. 그렇게 비싸?"

"그래, 그걸 그렇게 수도 없이 사달라고 떼쓴 니들이다."

"그땐 1만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몰랐으니까 당연하지. 이젠 아는데. 비싸게도 샀다. 1만원이 어떤 가치인지 알았으면 떼 안 썼을 거야."

아들은 용돈을 받기 시작하면서 1만 원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다행이다. 요즘 용돈이 다 떨어져서 PC방도 못 가니 1천 원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엄마, 오늘 같이 자자."

혼자 자고 싶지만 남편의 출장을 틈타 엄마 옆에서 자고 싶은 아들은 얼굴을 맞대고 내 옆에 누웠다.

"엄마 월급이 0백만 원이니까, 오늘 월급 들어왔지? 엄마 1은 모았네. 앞으로 99번만 모아."

잃어버리게 될 돈을 100으로 환산하고 99번만 더 모으라는 아이 말이다. 사실 월급이 고스란히 모아진다면 99번이면 될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통장에 들어오는 순간 사라지는 월급이라는 걸 아이는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도 대견하다. 시시껄렁한 말일지언정 엄마의 잘못을 들추기보다는 희망적인 말을 던지는 아들이다.

"엄마, 아빠랑 같이 버니까 100번 아니고 50번만 하면 되네. 그럼 오늘 1을 모았으니 이제 49번만 더 해봐."

"49번이면 몇 년일까?"

"12달이 1년이니까 대략 4년이네. 아깝다. 그래도 엄마 49번만 더 모아."

아들 말대로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가지 않고 그대로만 모아진다면 1을 모았으니 49번만 모으면 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말이지만 엄마의 걱정 앞에 이런저런 대화를 해 주는 아들이 고맙다.

만일 아들이 엄마는 왜 그런데 돈을 넣었어라고 했다면 마음의 위안이 아니라 다시 자책 모드가 되었을 것이다. 

아들과의 시시껄렁한, 현실성 없는, 농담 따 먹기 같은 대화를 통해 묘하게 위안을 받았다.

'그래, 아들아. 엄마가 붙들고 있다고 걱정한다고 돌아올 과거도 아니고 돌아올 현실도 아니네. 농담 같은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희망을 가져야겠다. 1을 했으니 49만 더 해 보는 거야.'

끊임없이 떠들던 아들이 잠잠해진다.

"00아, 멋진 사람이 되어야 돼."

"어떤 게 멋진 사람인데?"

"응, 나뿐만 아니라 남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할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 등등..."

엄마는 학창 시절 도덕책에 나오는 바람직한 인간 군상을 다 들이댄다. 멋진 사람에 대해서 멋들어지게 이야기해 주지 못해서 아쉽다. 내 삶의 한계와 내 가치관의 한계에 부딪치는 느낌이다.

"남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데쓰..."

청명하게 따라 하던 아이의 말이 꼬부라진 발음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목소리도 점점 작아지더니 마지막 말을 따라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건강하고, 남편도 있고, 엄마 걱정을 농담처럼 덜어주는 아들도 있고,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집도 있고, 직장도 있고, 부모님도 살아 계시고, 따뜻한 형제들도 있고, 걱정해 주는 친구도 있고, 얼굴은 못 뵀지만 늘 응원해 주는 브런치 작가님과 독자님들도 있고.... 세상엔 더 큰 걱정을 안고 사는 사람도 많고, 더 큰 걱정 속에서도 더 긍정적인 사람도 많고...

속상하고 억울하지만, 이 정도면 된 거다.

1을 했으니 이제 49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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