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닫고 통화를 했건만 친구와의 전화 통화를 둘째가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ELS로 인한 자산 손실에 대해 둘째가 함께 걱정하기 시작했다. 걱정이라기보단 그냥 살짝은 말장난 같은 대화에 가깝다.
"엄마, 그 정도 돈이면 1프로 이자면 엄마 월급이겠네?"
중학생이라 그 정도 셈법은 가능하다.
"아마도, 그런데 더 잃을 수도 있어."
"와, 엄마. 어떡해? 이제 영끌하자 우리."
"어떻게 영끌해?"
"이것저것 당근에 팔아보자."
"그래? 그럼 뭘 팔지? 니들 어릴 때 갖고 놀던 터닝메카드? 그거 다 털어서 1만 원에 팔면 될까?"
"아, 엄마 그건 너무하다. 내가 당근에서 찾아볼게. 9만 원에 내놓은 사람 있는데?"
"몇 개?"
"하나, 둘, 셋, ~~19개 정도."
"그렇게 비싸게 내어놓으면 아무도 안 살 거 같다. oo아. 맥포머스 팔아볼까?"
"엄마, 맥포머스 찾았어. 오, 다 서울에서 거래된 건데 6만 원, 5만 원 등 등 있어."
그렇게 우리의 시시껄렁한 당근 팔이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엄마, 터닝메카드 얼마 주고 샀었어?"
"만원, 이만 원 정도에 샀던 거 같네. 정확히 기억 안 나."
"야. 그렇게 비싸?"
"그래, 그걸 그렇게 수도 없이 사달라고 떼쓴 니들이다."
"그땐 1만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몰랐으니까 당연하지. 이젠 아는데. 비싸게도 샀다. 1만원이 어떤 가치인지 알았으면 떼 안 썼을 거야."
아들은 용돈을 받기 시작하면서 1만 원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다행이다. 요즘 용돈이 다 떨어져서 PC방도 못 가니 1천 원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엄마, 오늘 같이 자자."
혼자 자고 싶지만 남편의 출장을 틈타 엄마 옆에서 자고 싶은 아들은 얼굴을 맞대고 내 옆에 누웠다.
"엄마 월급이 0백만 원이니까, 오늘 월급 들어왔지? 엄마 1은 모았네. 앞으로 99번만 모아."
잃어버리게 될 돈을 100으로 환산하고 99번만 더 모으라는 아이 말이다. 사실 월급이 고스란히 모아진다면 99번이면 될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통장에 들어오는 순간 사라지는 월급이라는 걸 아이는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도 대견하다. 시시껄렁한 말일지언정 엄마의 잘못을 들추기보다는 희망적인 말을 던지는 아들이다.
"엄마, 아빠랑 같이 버니까 100번 아니고 50번만 하면 되네. 그럼 오늘 1을 모았으니 이제 49번만 더 해봐."
"49번이면 몇 년일까?"
"12달이 1년이니까 대략 4년이네. 아깝다. 그래도 엄마 49번만 더 모아."
아들 말대로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가지 않고 그대로만 모아진다면 1을 모았으니 49번만 모으면 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말이지만 엄마의 걱정 앞에 이런저런 대화를 해 주는 아들이 고맙다.
만일 아들이 엄마는 왜 그런데 돈을 넣었어라고 했다면 마음의 위안이 아니라 다시 자책 모드가 되었을 것이다.
아들과의 시시껄렁한, 현실성 없는, 농담 따 먹기 같은 대화를 통해 묘하게 위안을 받았다.
'그래, 아들아. 엄마가 붙들고 있다고 걱정한다고 돌아올 과거도 아니고 돌아올 현실도 아니네. 농담 같은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희망을 가져야겠다. 1을 했으니 49만 더 해 보는 거야.'
끊임없이 떠들던 아들이 잠잠해진다.
"00아, 멋진 사람이 되어야 돼."
"어떤 게 멋진 사람인데?"
"응, 나뿐만 아니라 남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할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 등등..."
엄마는 학창 시절 도덕책에 나오는 바람직한 인간 군상을 다 들이댄다. 멋진 사람에 대해서 멋들어지게 이야기해 주지 못해서 아쉽다. 내 삶의 한계와 내 가치관의 한계에 부딪치는 느낌이다.
"남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데쓰..."
청명하게 따라 하던 아이의 말이 꼬부라진 발음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목소리도 점점 작아지더니 마지막 말을 따라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건강하고, 남편도 있고, 엄마 걱정을 농담처럼 덜어주는 아들도 있고,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집도 있고, 직장도 있고, 부모님도 살아 계시고, 따뜻한 형제들도 있고, 걱정해 주는 친구도 있고, 얼굴은 못 뵀지만 늘 응원해 주는 브런치 작가님과 독자님들도 있고.... 세상엔 더 큰 걱정을 안고 사는 사람도 많고, 더 큰 걱정 속에서도 더 긍정적인 사람도 많고...
속상하고 억울하지만, 이 정도면 된 거다.
1을 했으니 이제 49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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