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된 감기가 아직도 계속이다. 작은 아들의 독감이 옮은 건지, 독감은 아닌데 약을 아무리 먹어도 낫지를 않는다. 무슨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독한 항암치료도 견디는 암환자들도 많은데 감기 하나에 이 육중한 육체가 맥을 못 추고 있다. 가뜩이나 제대로 하지도 않는 요리인데 아이들 밥은 정말 엉망으로 해 주고 있고, 집은 여기저기 널린 옷가지들과 잡동사니로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수행하고 싶은데 108배도 못하고 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독하게 뭔가를 하고 싶지만 잘 되지가 않는다. 어찌 보면 감기를 핑계로 모든 걸 손에서 놓아버린 건지도 모른다.
감기 핑계로 크리스마스 연휴는 누워서 스위트 홈 시즌 1,2를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이데몬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두 드라마 모두 송강이라는 배우가 등장한다.
송강을 처음 본 건 드라마 나빌레라이다. 동명의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것인데 병에 걸린 할아버지가 발레를 배우면서 송강과 교류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송강은 긴 기럭지에 긴 하체, 쪼그만 얼굴로 진짜 발레리노인가 착각이 들게 할 정도의 연기를 펼친다. 어머 녀석 잘 생겼는 걸. 음 괜찮아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열심히 봤지만 어떤 이유로 끝까지 시청하지 못한 드라마이다.
스위트 홈에서는 학폭의 희생자로 부모를 잃은 송강이 반인 반수가 된 상황에서 끝까지 정신을 부여잡고 완전한 괴물이 되지 않고 인간 본연의 마음을 지켜나가는 힘겨운 상황이 펼쳐진다. 그 멋진 몸이 늘 총에 맞고 칼에 맞고 물건에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었다가 다시 되살아나고를 반복한다. 맞고 찔리고 하다 보니 너덜 해진 옷을 입은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마저도 멋지다.
마이데몬에서는 인간과의 계약으로 인간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지만 일정 기간의 계약이 끝나면 그 사람의 영혼을 지옥에 떨어뜨리는 계약을 통해 본인은 죽지 않는 데몬으로 살아가는 역할이다.
우연찮게 김유정에게 데몬으로 역할을 하게 하는 십자가 타투를 빼앗기게 되고 능력을 잃으면서 김유정 옆에서 함께 하게 되는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중년인지라 젊은이들의 로맨스에는 동하지 않는데도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이유는 송강 때문이다. 뽀송한 피부 작은 얼굴 선한 듯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매, 숱 많은 머리칼, 길쭉한 몸.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 기분 좋아짐이 20,30대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보고 있으면 귀여운 아들 보는 느낌이다. 아구야 저런 녀석이 내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까워서 남 주고 싶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다.
옆의 두 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 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중년 아줌마의 배우 앓이는 귀여운 자식 보는 느낌이다. 아이고 저 배우가 내 아들이었으면, 아이고 저 배우가 내 딸이었으면 하는 느낌이다.
살아온 인생을 생각해 보면 치열하게 산 줄 알았지만 늘 용두사미였다. 무언가 정말 흥미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늘 흐지부지 되었다. 영어교육에 대한 열정도 대학원 졸업을 끝으로 흐지부지 되었고, 글쓰기에 대한 열정도 처음에는 하루에 두 편씩도 써댔는데 자신 없음과 열등감으로 요즘은 쓰기가 망설여지고 있다.(그나마 이렇게라도 글을 쓰는 건 라라크루 숙제 때문이다. 숙제는 빼먹지 않고 하려는 열정이나마 있으니 다행이다.) 미술도 얼추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하다가 그만두었고, 서예도 배우다가 흐지부지 그만두었다.
이 용두사미 인생 정말 끝내고 싶지만 쉽진 않을 거 같다. 안타깝긴 한다. 뭐든 손만 대다가 말아버리는 내 인생의 패턴이. 그리고 큰 재주는 없고 자잘하게 이것저것 어중간하게 잘하는 이 능력도.
나의 송강 앓이도(앓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그냥 관심을 표하는 정도긴 하지만) 아마 감기가 낫고 나면 끝날 것이다.
그래도 감기로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아줌마가 송강을 보며 위안받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된다.
20 초반인줄 알았던 송강이 1994년생이라니, 깜짝 놀라며 송강 배우가 앞으로도 계속 흥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