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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an 17. 2024

돈을 잃지, 나를 잃나.

새해 영어 공부를 같이 하자는 동기의 제안에 오래간만에 EBS 반디를 깔고 영어를 듣고 있었다. 아들은 영어 알레르기가 심하다. 

"엄마, 그 영어 듣는 거, 가만 보니까 공부도 안 하는 거 같은데 안 들으면 안 돼?"

"시끄러웠어? 엄마가 다른 데서 들어볼게."

했으면 조용히 평화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예민해진 나는 또 엄마의 본분을 잊었다. 어떤 순간에도 훈육이 화와 짜증으로 표출되어선 안된다. 자식의 말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된다. 내가 들은 말을 똑같이 돌려주면 안 된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우선이다. 같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된다. 어른인 내가 철들지 않은 아이를 이해해야 된다.

"듣고 있었어, set aside 블라 블라" 

오늘 들은 문장을 읊어대고 있다. 대체 아들 붙들고 무슨 친구랑 이야기하듯 변죽을 울리고 있는 건지.

"그런데 너는 게임하면서 욕하고 소리 지르잖아."

이때부터 모든 게 어그러졌다.

나는 철들지 않은 어른이었고,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 감정만 앞세우는 사람이 되었다. 그 덕에 분노와 우울 부정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친 아들 마음속 심지에 불을 붙여버린 셈이 되었다.

또 상상하기 힘든 상황들이 벌어진다.

이럴 땐 자리를 피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 나는 참다가 또 터져버린다.

결국 어른인 내가, 나이 먹은 철들지 않은 엄마가 제일 문제였다. 또 한 번. 철들지 않은 엄마가 철들지 않은 아들에게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둘째에게는 마음 아픈 형을 이해해야 된다 가르치면서도 둘째 앞에서 아픈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그냥 열심히 공부하면 되니 모든 일이 한 만큼 결과가 주어지는 경험만 했다. 다 부모님 덕분이다. 따뜻한 밥을 주시고 어떤 행동이나 말도 받아들이고 이해해주셨기에 공부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 상황 속에서 지혜로워지고 현명해지길 바라는 것이 신의 뜻이고 인간의 삶일 것이다.


오늘 예민하게 시작해서 또 아들 맘에 돌을 던지고, 내가 나를 상처 입히는 것도 결국 또 스트레스에 기인한 것이다.

12월부터 심해진 무기력에서 조금은 벗어났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다는 걸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밤새 잠 못 이루면서 생각했다.

돈을 잃지, 나를 잃으면 안 된다고. 선생으로서 나, 부모로서 나, 자식으로서의 나, 친구로서의 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일 소중한 나로서의 나.

나를 잃으면 안 되는데 그깟 돈 때문에(사실 그깟 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큰 액수이고 큰 아들이 경제적 자립을 못할 경우 가게라도 차려줘야 되나 하고 있었는데...) 나를 잃고 자식을 잃고 있다.

실컷 울자. 그리고 다 털지는 못하지만, 나를 잃으면 안 된다는 걸 늘 생각하자.

작든 크든 힘든 일 없는 사람 없다는 건 불변의 진리이고, 내 힘듦이 젤 큰 것 같은 것도 결국 내 생각일 뿐이다.

돈보다 아들이 조금이라도 변하길 바라는 것이 더 큰 소원이건만 그 변화를 가로막는 게 나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조금 지나면 나도 작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과 꿈을 품고 산다. 글이라는 것이 남들에게 긍정적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좋고, 아 이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면 좋은 글이라는 것도 안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한계를 알기에 아쉬움이 남지만, 어차피 내 공간이니 그냥 이렇게 이렇게 써 내려간다.



울고 있는 나를 안아주는 둘째, 티슈를 내미는 둘째. 

더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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