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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Feb 09. 2024

Just Do it.

돌아서니 세월은 훅 가 있다는 느낌은 누구에게나 비슷할 것이다. 20대, 30대는 그나마 시간이 천천히 가는 듯했는데 40대의 시간은 눈 감고 돌아서니 저 멀리 가버리고 없다.

50대를 지나 60, 70대, 우리 부모님 연세인 80대가 되면 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된다.

엄마가 컴퓨터를 컨피터라 말할 때 아무리 고쳐줘도 똑같이 말씀하던 모습을 볼 때, 했던 말씀을 끊임없이 뵈러 갈 때마다 반복하실 때, 외식을 싫어하실 때, 라면을 맛없어할 때, 사진을 찍기 싫어하실 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엄마는 왜 저러나? 우리 엄마만 저렇겠지 하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 조금 나이 들어 보니 우리 엄마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나이 들어가면서 변해가는 과정이었다. 어린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를 겪는 것처럼.

이젠 내가 그러고 있다. 외식을 하면 조미료 맛이 느껴지고 맛있는 게 없다. 너무 피곤하고 음식 만들기가 귀찮아서 외식을 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김치 하나로 먹어도 집에서 먹는 밥이 낫다. 라면을 먹으면 목구멍까지 무언가 들어찬 것 같고 더부룩해서 먹고 돌아서면 후회한다. 방금 주문해서 마시고 있는 차 이름이 생각이 안 나고, 예전에 갔던 장소 이름이 가물거린다. 친구나 동료를 만나 하고 있는 말들 중엔 대체 누구한테 들어서 하는 말인가 헷갈릴 때도 있다. 어떨 땐 앞에 앉은 동료가 했던 말을 다시 돌려 새로운 말인양 하기도 한다. 해야 할 일을 종이 달력, 수첩, 컴퓨터 메모장, 핸드폰 달력 등 여러 곳에 써 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일쑤다. 얼굴 라인이 처지고 머릿결도 푸석해지고 팔자 주름도 생기니 사진 찍기도 싫어진다.

이제야 엄마가 왜 그랬는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은 어디 그런가? 머리는 받아주지 않는데 무언가를 계속 배우고 싶고 알고 싶고 새로운 시도도 하고 싶고 예쁜 것을 보면 여전히 좋다.

그럼에도 모든 면에서 점점 둔해진다는 느낌이 드니 나이가 더 어렸을 때처럼 모든 것을 겁 없이 시도하기는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동기가 영어 공부를 시작하자고 했다.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 동조를 했고 동학년 세 명이 모여서 함께 영어 공부를 하기로 했다. 줌으로 저녁에 만나 30분씩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 덕에 몇 년 동안 놓아버렸던 영어회화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동료가 추천해 준 화상 영어 앱을 통해서 원어민들과 체험 수업도 해 보았다. 1월의 무기력을 털기에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저 즐거웠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너무 재미있고 삶이 생생해졌던 것처럼.


그렇게 신나게 보름을 불사르고 나니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열심히 하려는 동기를 움츠러들게 하기 시작했다.

영어 해서 뭐 하게? 영어 공부의 목적이 뭐야? 넌 뭘 하고 싶어서 공부하니?

화상 앱을 통해 원어민과 체험 수업을 시도할 때마다 어김없이 받는 질문이다. 딱히 생각해 둔 게 없어서 해외여행 갈 때 쓰려고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냥 재미있어서라고 하기도 하고, 자막 없이 영화를 보고 싶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답들은 답을 위한 답일 뿐 정말 내 마음속 정답은 아니다.

'너 왜 영어 공부하니? 안 그래도 피곤한데, 살림살이만으로도 버거운데, 브런치 글쓰기도 이렇게 중단했는데 왜 또 피곤한 일을 시작한 거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일에는 반드시 그럴듯한 결과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다. 결과가 없는 과정은 의미가 없다고 여길 때도 많았다. 성과 위주, 능력 위주 사회, 타이틀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살아서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어느 나라건 다 중요하겠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성과와 업적, 지위 이런 것이 더 중요시되는 나라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복잡한 생각을 원어민들에게 더듬더듬 털어놓으면 그들은 말한다. 그냥 즐기라고, 언어를 배우는 과정 자체가 너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돌이켜 보면 20대 후반에 영어를 시작하면서 10년 뒤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겠지 생각했지만 40 언저리에는 그러지 못했고 40 초반에 다시 또 시작하면서 50 언저리에는 뭐가 완성되어 있겠지 했지만 50대가 되고 보니 또 그러지도 않다. 왜냐하면 시작하고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반 고비에서 매번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니 꼭 목적이 있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 조금씩 하다 보면 10년 뒤에 뭐가 달라져 있겠지.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하는 생각.

얼마 전 유튜브 영상에서 101세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며느리가 만들어 준 알파벳 플래시 카드를 보며 A, B, C를 말하고 계셨다. 하시는 말씀이 나이 80만 되었어도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였다. 

80. 30년은 더 살아야 된다. 100세 할머니도 20년만 젊었어도 하신다는 공부인데 아직 30년 더 남은 내가 못할 게 뭐 있으랴?

그저 즐거우니 하는 거다. 꼭 무슨 성과가 있어야 되나?

내 머릿속에 무슨 성과를 생각하고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운다고 뜻대로 다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무수히 경험하지 않았나? 성과만 생각하고 무언가를 해야 된다면 이 세상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때론 안 되는 말 억지로 하려니 두통이 올 때가 많지만, 공부하는 시간이 즐거울 때도 있고, 원어민과 대화하는 시간은 몰랐던 경험을 나눌 수 있었서 좋다. 더듬거리며 뚝뚝 끊기는 말이나마 상대가 이해해 주면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과 자신감을 줘서 좋다.

성과가 있어야 되나? 순간이 즐거우면 그냥 하면 되는 것이지. 누구한테 피해 주는 일도 아니고.

JUST DO IT. 그냥 하는 거지.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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