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향기 Feb 16. 2024

내 마음을 바꾸고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동기와 함께 양재진 정신과 전문의님의 강의를 들으러 다녀왔다. 무료 강연이라서 양재진 선생님의 강의 전 1시간 30분에 걸친 제품 홍보가 있었다. 국내 유명한 상조업체의 홍보였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시아버님의 장례를 치렀고 코로나 기간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두 번이나 치렀건만 이것저것 생소한 이야기들로 들리는 것이 많았다. 홍보를 위해 보여주는 국내 케이블 티브이 예능 프로 영상에서 진행자가 장례 비용이 2000만 원이 넘는다고 이야기한다. 요즘은 봉분을 만들지 않는 추세니 죽으면 납골당에 안치되거나, 수목장으로 나무밑에 뿌려지거나 하는 마당에 한 줌 재로 남길 순간을 위해 2000만 원을 들여야 된다니, 인간은 끝까지 물질과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죽으면 저렇게 쓸데없는 돈 쓰느니 그냥 장례도 치르지 말고 화장하고 끝내라고 해야 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장례업체의 본부장님께서는 신나게 본인 상조회사에 오늘 가입하면 주어지는 특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신다. 죽음을 대비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생각되지만 결국 고객 확보와 상품 팔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죽음이 돈벌이의 대상이라는 것에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지겨운 홍보회가 끝나고 양재진 선생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뒷자리에 앉아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강연회에 직접 왔다는 설렘 같은 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장례업체 홍보로 너무 지치고 배까지 고파서였을 수도 있다.

강의 내용은 결혼 생활과 육아에 관한 내용이었다.

우리가 배우자를 만나서 좋아 보였던 부분이 결혼 생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제일 싫은 면이 되어버린다는 말씀을 하셨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부분이다.

남자가 과묵하고 차분하고 입도 무겁고 진중해서 결혼했지만 결혼 과정에서는 그 좋았던 남자가 말 없고 재미없고 둔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섬세하고 다정하고 꼼꼼한 사람과 결혼했지만 그 좋았던 남자는 까다롭고 예민한 남자가 되어 있다.

분명 좋아서 결혼했는데 좋은 점이 싫은 점이 되어 버리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고치려고 노력해 봐야 고쳐지지도 않는다. 

"여러분들 본인 성격 잘 바뀌나요?"라고 물으신다.

내 성격도 못 바꾸면서 남을 바꾸려고 하냐고 부질없는 노력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조언이다.

어질러진 걸 못 참는 성격이면 본인이 치우세요, 남편이 아무리 말해도 안 바뀌면 능력이 없다는 걸 인정하세요, 심하게 말하면 장애가 있구나라고 생각하세요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신다.

이젠 저 말에 백 프로 공감한다.

"I totally agree with you."

(잠깐 삼천포로 빠져 본다. 큰일이다. 영어회화 공부에 관심을 좀 쏟았더니 시도 때도 없이 영어가 나온다. 원래 빈 수레가 더 요란한 법이라 어쭙잖게 조금 알면 신이 나는 법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더 어려움을 알고 함부로 떠들어 댈 수가 없다. 우리 아들 말대로 언제쯤 현타가 와서 정신 차리려나. 어제 아들이 50 할머니가 영어 공부 해서 뭐 하려고 하냐고, 엄마는 주책이라는 말을 내질렀다. 아들이 심사가 뒤틀려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인 걸 알지만 속도 상하고 어이 없는 상황에 눈물도 흘렸지만 한편으로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이러고 있는 내가 부끄럽고 조금 한심하기도 하다.)


"집에서 노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아니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집에서 노시는 분이라는 표현을 써? 안 되겠네. 양재진쌤."


동기한테 신나게 쌤 뒷담을 까는데,  그 말은 함정이었다.

몇몇이 손을 들었는데 한소리 하신다.

"왜 집에서 논다고 생각하세요? 가사노동이 얼마나 큰 노동인데, 이혼할 때 재산을 최대 반으로 분할 가능한 것도 가사 노동을 인정해 줬기 때문이에요. 직장을 안 다닌다고 집에서 논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마세요. 누가 일하냐고 물으면 쭈뼛거리며 논다고 하지 마시고 가사 노동한다고 말씀하세요."


모성신화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 모성 신화가 산후 우울증을 불러온다고 아이를 키울 때 힘들어서 조금 잘못하는 것으로 너무 미안해하지도 말고 미안하단 말도 반복하지 말라고. 

"어머님들, 직장 가실 때 애 떼놓고 가시면서 우시죠? 왜 우세요? 남편이 출근하면서 우나요?"

그러고 보니 남편들은 같이(?) 육아를 하면서도 출근할 때 울지 않는다. 애를 어린이집에 맡겨 놓고 가는 것에 대해서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아이를 떼 놓고 출근할 때 눈물이 나려고 하면 웃으며 출근하는 남편 얼굴을 생각해 보세요."


"결혼 준비란 말에 무엇이 떠오르세요? 대부분의 20, 30대들은 결혼 준비하면 웨딩드레스, 예물 반지, 혼수 이런 것을 떠올려요. 그런데 그건 결혼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런 것들은 진짜 결혼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이고 그게 끝나면 진짜 결혼이 시작되는 거죠. 결혼 준비에 저런 것들만 생각하니 결혼하고 어려운 거예요."


맞는 말이다. 결혼이라는 게 마음을 맞춰 가야 되고, 아니 맞춰가는 건 힘들고 이해해야 되고, 상대방이 못하는 건 내가 해야 되고, 다른 문화에 익숙해져야 되고 공부해야 될 문제들이 하나 둘이 아닌데 웨딩드레스 예물 반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법륜스님의 말씀도 인용하셨다.

결혼은 홀로 설 수 있을 때 하는 겁니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아야 결혼해서 혼자라도 안 외롭고, 둘이 같이 있어도 귀찮지 않고 괜찮을 수 있는 겁니다.


저 당연한 진리를 이 나이가 돼서야 알았다. 그래서 요즘은 홀로 뭔가를 하는 연습을 조금씩 하고 있다. 

더 이상 남편한테 의지만 해서는 결혼생활이 행복할 것 같지 않아서.

홀로 운전해서 애들도 데리고 나가 보고, 홀로 고속도로로 타 보고, 남편의 장기 출장에 혼자 모든 집안일을 해야 될 때도 남편 원망의 마음을 내지 않고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이제 겨우 시작한 홀로 서기. 앞으로 해야 될 일이 많을 거 같다.

사실 주말 부부 7년을 했으니 모든 걸 홀로서기 하면서 산 것은 맞는데 마음이 그렇지 못해 늘 불평하고 원망했고 싸웠다. 그게 얼마나 육아에도 나와 남편의 정신 건강에도 안 좋은지, 내가 불행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50이 되고서야 깨달았다.

남편한테서 독립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남편이 없어도 외롭지 않고, 같이 있어도 귀찮지 않고, 같이 있어도 바라지 않고, 바뀌지 않는 나를 생각하며 바뀌지 않는 남편을 이해하는 마음을 내려고 한다.



너무 글을 안 써서 써야겠다는 마음에 들어왔는데 주제도 없이 횡설수설이다. 제목도 정하기 힘들다.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해서. 그래도 그냥 발행. 고칠 에너지도 없고, 무엇보다도 고친다고 머리 아프고 싶지도 않다. 안 피곤하고 싶다.

가벼운 마음으로 써 본다.

처녀 때 만난 선배가 오늘에서야 책을 3권이나 냈다는 사실을 모임 톡방에 알려왔다. 어떤 마음에서 꽁꽁 숨겨왔는지 알 것 같다. 진작에 말해주셨으면 책도 사 보았을 것인데. 재주를 숨기고 어느 순간 짜잔 하고 내놓는 사람들도 많다. 늦게 결혼해서 애도 어리고 시부모 가까이 살고 힘드셨을텐데 대단하다. 한다면 하게 되는 것이지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핑계대면 끝도 없다는 걸 또 선배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낀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 핑계를 댈 것 같은데 말이다.

(남편이 너무 바빠서, 큰 애가 징하게 말 안 들어서, 학교 일이 바빠서, 시댁 친정 아무도 안 도와줘서...등등

써 놓고 보니 못났다는 생각도 든다. 내 힘으로 살아야지, 환경 탓, 주변 탓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선배의 책을 보며 책은 못 낼 망정 브런치에 글이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내었다. 

나도 책을 출간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양재진 선생님의 말씀을 고대로 옮기지는 못하고 기억나는 대로 써 보았습니다.>

나의 미션 임파서블한 일상에 톰 크루즈가 들어왔다 | 김지은 - 교보문고 (kyobobook.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