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니 새해가 8일이나 지나버렸다. 마지막 글을 12월 30일에 썼으니 브런치를 시작하고 매일 써대던 것에 비하면 긴 휴지기를 가진 셈이다.
12월 초부터 시작된 감기가 12월 말까지 계속되었다. 최고조에 달할 때는 급식도 못 먹고 누룽지만 먹는 걸 일주일 정도 하다 보니 몸에 에너지가 다 빠진 상태로 12월 말을 맞이했다. 떨어진 입맛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약으로 지친 속은 편안해지지 않았다.
그 상태로 1월 1일, 남편이 계획해 놓은 홍콩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내 감기도 낫지 않았는데 이번엔 큰아들 감기가 시작되었다. 동네 이비인후과는 연말을 앞두고 문을 닫아서 소아과 약을 처방받아 갔더니 잘 낫지가 않는지 아들도 여행하는 동안 힘들었다.
아프지만 다른 집과 달리(남편이 말한다. 다른 집들은 해외여행 계획은 여자가 신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짠다고.) 남편이 항공권부터 모든 계획을 다 짜고 따라다니기만 하다 보니 불평은 할 수 없었다. 외국에서 의지할 사람은 부모이다 보니 나에게 들러붙어서 다정하게 엉기는 큰아들을 감당하며 다닌 3박 4일간의 여행은 고행 같았다. 아들은 2,3살 아가들처럼 애정을 갈구한다. 몸은 안 좋고 아들이 터질까, 남편이랑 싸울까 조마조마하며 다니다 보니 몸과 마음의 모든 에너지가 소실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4일을 보내고 한국에 오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해외여행을 많이 가 본 것도 아닌데 크게 흥미가 안 간다. 어디 가보고 싶은 마음도 없는 내가 왜 이러나 싶다. 정말 나이가 들어버렸나 보다. 신체 나이도 살이 쪄서 실제 나이보다 더 많게 나오는데 마음의 나이는 더 훅 들어버린 느낌이다.
4일을 보내고 5일은 작은 아들 종업식이어서 짐 들고 오는 걸 태우러 가고, 이미 방학이 시작된 큰아들의 짐을 가지러 갔다 오고 저녁을 해 주고 그냥 또 뻗어버렸다. 평균 16000걸음 정도 걸었더니 족저근막염은 심하게 도져버렸고 속이 안 좋아 거의 못 먹고 다녔더니 잠만 자꾸 쏟아졌다.
6일은 오전 10시에 불교대학 즉문즉설 생방송을 2시간 들었다. 전 날 잠을 잤는데도 또 잠이 쏟아졌다. 왼쪽 다리도 자꾸 시리다. 거의 조는 상태로 수업을 듣고 또 자버렸다. 밥을 줄 때 빼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
7일은 그냥 무기력하다. 또 잠은 쏟아진다.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싫다. 누워서도 불안하다. 그냥 같은 날일 뿐인데 어릴 적 습관이 남은 건지 새해 6일을 뭘 한 것 같지도 않게 보냈는데 벌써 7일이라니 불안해하며 잠만 잔다.
남편한테 무기력하다고 했더니 1년 내내 무기력하다고 하냐며 언제 안 무기력할 거냐고 한다. 내 무기력의 원인은 뭘까. 큰아들을 보고 있는 게 두렵다.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큰아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지켜보는 수밖에. 그런데 그게 너무 힘들다.
벌써 8일이 되었다. 오늘도 잠만 자면 안 될 거라는 강박에 일어날 수 있었다. 감기 때문에 수행도 멈춰버렸고, 글쓰기도 내 한계를 느끼며 멈추고 싶은 마음만 들고,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병원을 데리고 가고 겨우 1시간짜리 상담을 데리고 가는 것이 다다. 그냥 지켜보라는 상담선생님의 말이 언제까지가 될지.
새해도 달라질 건 없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예전만큼 뭔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도 없다. 재깍재깍 흘러가는 시간 속에 여유가 주어진 방학에 불안한 마음만 안고 있을 것이다. 시작의 기술 책 내용이 머릿속을 맴돈다. 온갖 핑계를 대며 과거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꼬리를 붙들지 말고 지금 그저 시작해야 되는데 아이들이 없었으면 밥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고 계속 잠만 잘 것 같은 내 모습이 그려진다.
새해 첫 글을, 일기장에나 써야 될 내용을 브런치에 쓰고 있다. 하지만 오늘 하루 힘내기 위한 시작을 글쓰기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기에, 이 긴 내용을 펜을 들고 쓰려면 쓰다가 지칠 것 같기에 브런치를 열었다.
3일을 불안함을 안고 잠만 잤더니 그나마 몸은 좀 회복된다. 나는 무기력하다는 생각을 끊어내고 나에게 온전히 주어지는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될까? 홍콩에 가서 남편을 따라다니며 영어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그 수많은 한자 표지판과 안내들을 보며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한글도 그리웠다. 세종대왕님에게 무척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곳곳에 저런 한자가 쓰여있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지 음식을 두 번 먹고 도저히 적응을 못한 우리 가족은 그날부로 맥도널드와 한식집을 찾아다녔다. 홍콩 사람들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내 나라가 그리웠다. 작은 나라지만 갖출 것 다 갖춘 나라, 사람들이 친절한 내 나라, 맛있는 음식이 많은 나라.
이제 뭔가 꿈꾸고 욕심을 낼 나이는 아니지만 꾸준히 뭔가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 늘 하다가 관두는 영어공부도 꾸준히 하고 싶고, 큰아들은 그냥 온전히 지켜보고, 작은 아들은 다독여서 공부도 좀 시키고, 책도 더 읽고, 수행도 다시 꾸준히 시작하고 싶다.
2024년은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꾸준히 하는 한 해를 만들고 싶다. 연말에 후회하지 않도록.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건강을 챙겨야 된다. 23년 12월 한 달 감기로 너무 힘들었다. 감기와 함께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 한 달이 아깝지만 이것 또한 과거에 매달리는 것일 뿐, 현재 주어진 오늘 하루가 이전과는 달라야 된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