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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an 15. 2024

좋은 사람들과 23년의 인연

수원에서 모임을 가지며 환갑 이야기를 하다

1월 10일 수원을 향해 차가 달린다. 

9일 눈이 왔지만 다행히 10일은 그쳤다. 혹시 도로에 살얼음이 끼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카카오 지도맵의 cctv로 상행선의 도로 상황을 여러 차례 확인한 결과 차들이 쌩쌩 잘 달린다. 자차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각종 지도 맵에서 오른쪽 이미지 파란 동그라미를 클릭하면 왼쪽 화면이 뜨고 cctv로 도로 상황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알아야 될 게 여전히 많은 세상이다.


여행을 가면 남편에게만 운전을 시키니 자차로 운전을 하는 건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다. 그리고 운전을 좋아하지도 않고 겁도 많다. 그저 남편이 태워주는 차로 편하게 여행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차를 끌고 나선다. 대구와 부산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기에 차를 가지고 가면 수원에서 이동하는데 조금이라도 덜 불편할까 하는 마음이다. 내 차로 모셔도 하나도 힘들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들이다.

2000년에 처음 만나 23년 동안 모임을 이어오고 있는 동기, 선 후배들과의 만남이다.


첫 학교에서 2년 6개월을 근무하고 학교를 옮겼다. 첫 학교는 22 학급의 소규모 학교였는데 두 번째 학교는 36 학급이다. 약간은 커진 학급 규모에 살짝 긴장도 되었지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 비하면 학구 내 학교라 걸어서도 출근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쉬운 일인가? 걱정을 가득 안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했다.

두 번째 학교에는 이 학교가 첫 발령지인 동기 1명, 1년과 2년 후배 각 한 명, 1년 선배가 3명 있었다. 지금은 처총회란 말도 사라졌지만, 그 당시에 처녀 총각들의 모임을 '처총회'라고 했다. 

다소 낯을 가리고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 이미 형성된 돈독한 처총회 모임에 끼어드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내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온화한 동기 덕분이었고 늘 웃는 선배들 덕분이었고 불과 1, 2년 차이 나는 선배들을 잘 챙겨주는 마음 따뜻한 후배들 덕분이었다.

두 번째 학교는 유독 따뜻한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교직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분들이 많았다. 간혹 열정만 넘쳐서 열정을 승진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며 아이들보다 승진을 우선하며 학급운영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 학교의 선생님들은 정말 열정으로 교육하고 열정으로 실적을 만들고 그 열정이 자연스럽게 승진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고 계신 30대 후반 40대 초반 선생님들이 많으셨다. 그래서인지 학교는 갈등도 없고 소위 말하는 험담도 거의 없었다. 그 바탕에는 능력 있고 주관이 뚜렷하고 품이 큰 교장선생님의 존재가 있었다. 교장선생님부터 동기 선후배, 일반 행정직 직원까지 어느 한 분 모난 분이 없는 아주 따뜻한 학교였다. 

그런 학교에서 만난 또래 선생님들이다. 어느 누구 하나 잘난 척하는 사람도 없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공감할 줄 알며, 큰 욕심 없이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처녀 때 만나 하나 둘 결혼하는 것도 지켜봤고 아기가 태어났을 때 방문도 했고 내가 상을 당했을 때 위로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자녀도 있고 대학을 다니는 자녀도 둘이나 된다. 젤 꼬맹이 자녀는 중학교 일 학년이다.

대학생을 둔 후배와 선배는 삶에 여유가 생겼다. 아직 중, 고등학생을 자녀를 둔 나를 포함한 다른 선생님들은 여전히 마음의 짐이 많지만 아이들 어릴 때에 비하면 여유가 생겼으니 수원에서 모임도 가능하다.

한정식 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예전 한국 나이로 하면 한 명 빼고 다 오십이 되었다. 20대에 만나 학교 일을 이야기하고 식사를 같이 하고 노래방을 가고 결혼에 대해 고민하던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 그림처럼 그려지는데 23년의 세월이 지났다. 내 옆에 아이들이 있지 않으면 지나온 세월을 망각해 버린다. 

하지만 세월은 지났다. 세월이 흐른 만큼 회칙 내용도 달라진다. 회칙 개정을 위한 총무님의 제안이 있다. 환갑을 챙길까? 퇴직을 챙길까? 자녀 결혼을 챙길까? 20대에 만났는데, 다들 상큼하고 쌩쌩했는데 환갑을 챙기기 위한 회칙 개정을 논의하고 있어서 다들 한바탕 크게 웃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지요?"

"20대에 만났는데 환갑 이야길 하다니 우습네요."

"첫 학교 선생님들 만나러 모임 간다니 다들 놀랬어요."

남들 눈에는 얼굴도 탄력을 잃고 예전만큼 날씬하지도 않은 그저 50대 아줌마들로 보이겠지만 내 눈엔 여전히 20대 때 그 시절 모습으로 보인다.

총무님은 새해 맞이 기념 로또도 챙겨오셨다. 대구에서 1등만 31번 나온 곳에 지하철을 한 시간 타고 가서 사왔다고 한다. 로또에 대한 기대를 안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수원화성 구경도 하며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좋은 사람들과의 긴 인연은 세월도 잊게 만든다. 우울과 무기력으로 억지로 버티고 있던 방학생활에 따뜻한 공기를 가득 채워주는 모임이었다.

수원화성. XR버스 1795행을 사전 탑승 예약하면(무료) 40분간 수원 화성 주변을 버스를 타고 관람. 14억짜리 버스. 좌우에 디스플레이로 수원화성 관련 역사 이야기 관람 가능

인연이란 참 알 수 없는 것 같다. 늘 붙어 다니고 배낭여행도 같이 다니던 대학 동기는 연락이 거의 끊어져 버렸다. 결혼도 안 했고 승진 가도를 달리고 있어서 편하지가 않게 되어버렸다. 있는 속 없는 속 탈탈 다 털던 첫 학교 동기도 연락이 뜸하다. 내 연애사를 비롯해 고등학교 성적까지 모든 걸 다 아는 친구였건만 소원해졌다.

하지만 속을 다 내놓진 않았지만 알만큼은 알고, 간간히 만났지만 불편하지 않고 엊그제 만난 것 같은 00 학교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23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내 속을 다 털고 비밀이 없으면 좋은 관계가 될 거라는 착각을 많이 하고 살았다.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면 상대방도 나를 좋아할 거라 착각하고 살았다. 나를 온전히 내 보이면 관계가 오래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착각이란 걸 늦은 나이에 알았다.

나를 다 보이면 상대방은 부담스럽다.

안타깝게도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혼 유무도 친구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결혼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싱글의 삶은 다르기에 공유할 것이 적어진다.

우리 모임 멤버들은 모두 결혼을 했고 자녀도 있다. 승진도 바라지 않고 인생에 큰 욕심이 없지만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다. 자라온 환경도 크게 유별난 사람도 없다. 남 이야기나 험담도 잘 하지 않는다. 명품을 좋아하거나 추구하지도 않는다. 어른들을 공경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다. 아마 한 명이라도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불편했을 수도 있고, 한 명이라도 추구하는 것이 달랐더라면 모임이 와해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23년의 세월을 지나오며, 언제 봐도 어제 본 것 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여보 오늘 모임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좋아졌어. 우리 사는데서도 모임 하기로 했는데, 당신 차가 6인승이니 내가 운전을 해야겠네. 당신 차 진작 운전해 볼 걸. 어딜 가지? 볼 것도 별로 없는데."

"모임이 언제인데?"

"내년."

"내년 모임을 벌써 걱정해? 하하."

멋쩍게 웃을 수밖에. 하지만 내년 모임을 벌써 걱정할 만큼 우리 동네에 왔을 때 최선을 다해 잘해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 충실히 한 해를 보내고 연락도 뜸한 채로 지내다가 내년 이맘때 또 보게 될 것이다.

내년 이맘때 기차역에 마중 나가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1년 동안 연락 없이 지내도 엊그제 본 것 같은 느낌으로 반가워하며 또 환갑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환갑 이야기를 해도, 칠순 이야기를 해도, 반갑고 그리운 사람들과의 모임이 계속되길 바란다. 모두들 건강 잘 지켜서 오래 오래.

로또는 당연하게도 불발이다. 봉투 잘 챙겨서 로또 살 때마다 이 봉투에 넣으라는 후배 말을 들어보기로. 아마 로또 살 일 없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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