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늘 나의 스트레스 대상이면서 걱정거리이자 연민과 눈물의 원인이기도 하다.
고등학생이면 공부에 바빠서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느라 쉴 새 없는 방학을 보내기 마련이지만 우리 아들은 예외다. 고등학생이지만 대한민국 웬만한 초등학생보다 더 한가하다.
집에서 밥 세끼 꼬박꼬박 먹고 그냥 하고 싶은 것 하고 외출도 거의 하지 않는다.
아들을 어떻게든 바로잡아 보려는 수년간의 노력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이젠 있는 그대로 아들을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그런 고등학생 아들을 담담하게 지켜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혼자 눈물을 삼켜야 되는 순간도 많고 그러다 보면 양육방식을 탓하며 후회를 수백 번도 더 하게 된다. 때론 남편에게 걱정을 늘어놓다가 싸우기도 한다.
수년간의 노력이란 것이 나에게는 노력이었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방향의 행위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늘 염두에 두고 있지만, 잘못된 방향의 노력이었다 치더라도 실수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지금도 시간은 흘러가고 이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가, 무언가를 시도하다가 충돌하고 갈등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두려워서 그냥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며 어떤 시도도 생각만으로 그치고 만다.
아들을 두고 여행을 떠날 때 아들은 담담하게 말했다.
"왜 엄마 아빠만 좋은 데 가는 거야."
(둘째 아들은 괘념치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하면 돌아오는 답은 비슷할 것이다.
애가 아직도 부모를 따라다니려고 하니 신기하네 내지는 부모 따라가려고 하니 괜찮다 정도이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안다.
아들이 미성숙한 상태라는 것을, 보통의 발달 단계를 못 따라가고 있고 몸만 커 버린 아이라는 것을.
아들은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무지무지 아픈 손가락.
아픈 게 싫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지만 절대 나을 것 같지 않은 아픈 손가락.
남편과 둘이 있으며 집 생각을 잊어버려서 편안했지만 밥때만 되면 아들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동생은 친구들과 놀러 나가 버리고 혼자 덩그러니 큰 집에 남아 있을 것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아파오게 만드는 아들이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이러 두 아들을 데리고 나가며 서울 이야기를 잠깐 하게 되었는데 아들은 말한다.
"엄마, 아빠만 좋은 데 가고. 우리가 귀찮아서 그런 거잖아."
엄마, 아빠 즐거운 시간 되셨냐는 말은 바라지도 않지만 아들의 반응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한다.
아픈 손가락이 언제쯤 안 아플 수 있을지, 과연 시간만이 정답일지 오늘도 막막한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