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향기 Sep 11. 2024

칭찬은 집에서

학급에 성 사건이 터졌다.

교감선생님께서 그 녀석 변태될 놈이네 할 정도의 사건이다.

겨우 2학년 꼬맹이 녀석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떤 이유로, 무엇에 노출되어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물어도 대답 안 하고 1학기 때 분명히 인정했던 사안조차 엄마한테는 울면서 그런 적 없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나만 나쁜 선생이 되었다.

해가 갈수록 느끼는 건 아이들은 정말 거짓말의 천재라는 사실이다. 혼나지 않기 위해서 악어의 눈물도 마다하지 않는 게 아이들이다.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랑 지내서 행복하겠어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으며 네하고 대답하지만 속으로는 겪어보세요 아이들이 마냥 귀엽고 예쁘기만 한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학급 담임의 자체 성교육, 보건 교사의 성교육, 외부강사의 성교육이 이어진다.

늘 하는 말들, 늘 강조하는 것들이다. 

학교에서 성교육이 어디 한 두 번 이루어지나? 매해 시수를 확보하고 반복되는 일이지만 교육은 교육일 뿐, 늘 조심하고 인식하는 애들만 인식할 뿐, 정작 알아야 될 아이들은 교육에도 꿈쩍도 안 한다.

우리 반 그 아이도 마찬가지다. 누구 때문에 이루어지는 성교육인데 삐딱하게 앉아서 의자를 건들거리며 집중도 안 하고 반성하는 기색도 없다. 본인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심각한 일이었는지 인식조차 안 하고 있다.

상황이 상황이라 여학생들과는 절대 짝꿍을 시킬 수 없고, 1학기 때도 미수에 그쳤지만 전적이 있어서 남학생과 앉혔더니 시끄러워 수업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내 앞에 앉아 있다. 보고 있는 게 괴롭다 사실.

2학년 꼬맹이가 한 일인데 뭘 그러냐고 묻는다면 동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진 후 엄마의 태도도 마음 상하게 한다.

보기에 끽해야 30 후반으로 보이는 엄마는 무례하거나 비협조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아이에 대해서 내가 불신을 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 아이는 성 사건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1학기 때부터 욱해서 주먹도 바로 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고자질은 하루에 수 건을 하는데 들어보면 결국 본인도 잘못이고 해서 훈계 들을 일이 더 많았던 아이다.

그런데 자기가 누군가를 고자질하러 올 때,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해서 말하러 올 때 결론적으로 선생님은 상대 아이를 크게 혼내지도 않고 자기도 위로받지 못하니, 집에 가서 선생님이 내 말을 안 들어준다고 했나 보다.

엄마가 하는 말들.

00 이가 선생님은 말해도 안 들어준다고 해요.

다 들어줬다. 쉬는 시간 꼬박. 들어보면 결국 본인이 먼저 문제를 만든 경우, 아니면 아이들 표현대로 본인이 당해서 이미 사악한 방법으로 복수를 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누가 누구 편을 들어줘야 되는 건지.

성 사안으로 학교에 불려 왔으면서 마지막 부탁이 '선생님. 00이 작은 거 하나라도 칭찬해 주세요.'이다.

상담 과정에 엄마 본인이 아이를 혼내기만 하고 강압적이었다고 시인하면서도 말이다. 1명 키우는 내 자식한테서도 칭찬거리를 못 찾아 혼내고 강압적으로 했다면서 28명 데리고 있는 나한테 작은 거라도 찾아서 칭찬해 달란다.

대한민국 초등교사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다. 보육하는 사람이고 부모가 못하는 칭찬 대신 해줘야 되는 사람이다. 예쁘고 곱게만 말해야 될 사람이지 아이를 혼내서도 안 되는 사람이다.

안다. 그리고 사실이다. 교실에 더 착한 아이들과 훌륭한 부모도 더 많다는 걸.

하지만 내가 오늘 입은 흰 티에 빨간 국물 한 방울 튀는 게 먼지 속에서 뒹굴어서 전체적으로 때가 묻은 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처럼, 소수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지속적으로 사람 마음을 뒤집어 놓는 상황이 견디기 좀 힘들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