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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Oct 17. 2024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기를 희망하며, 언제나 오늘 하루가 어제보다 나은 하루였으면 바란다. 아니 어제와 비슷한 하루라도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어제보다 못한 날이 더 많은 이유가 뭘까?

여기서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과연 오늘이 어제보다 못한 날이 더 많은 건지,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자면, 과학 언급이 우습기도 하지만 어느 철학자처럼 시간 단위로 내 인생을 쪼개어 기록하고 분석해 보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많았을 확률도 높을 것 같다. 삶의 기본 철학과 몸에 밴 습관이 열심히 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무식하게 노력하자는 융통성 없는 인간 유형이라서 말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오늘 하루를 보내는 내 모습에 실망하고 일 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올해는 또 이룬 게 없구나, 제대로 못 살았구나 하는 마음이 일렁거리는 이유는 항상 만족하지 못하는 내 마음과, 인생이 뭔가 획기적인 발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끊임없는 욕심,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데 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오만함에서 기인하는 욕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올해 학부모공개수업 준비 과정을 되돌아보고 싶어서이다. 이 부분은 분명히 작년보다 충실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우리 학년 구성원의 평균 교직 경력은 30년이 훌쩍 넘는다. 그만큼 선생님들도 여유가 있다. 여유는 수많은 수업 공개를 거쳐왔으니 준비 시간에 대한 조급함이 없음이기도 하고, 뭔가 완성된 대단한 수업을 보여줘야 된다는 완벽함이 덜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찌 됐든 여유는 일의 시작을 늦추기 마련이다. 막내 같지 않은 교직경력의 막내선생님이 제일 먼저 준비 과정을 시작하려고 하신다. 답답한 사람이 샘을 파게 마련이니 결국 막내 선생님이 기본 지도안을 짜게 된다. 

기본 지도안을 가지고 모여서 협의회를 한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놓으신다. 제일 언니선생님들이 많은 아이디어를 내신다. 의견이 적용되기도 하고 걸러지기도 하고 하나의 의견에서 더 좋은 의견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렇게 2차의 협의회 끝에 수업의 흐름이 완성되고 자료 구성도 완료된다. 일의 마지막은 누가 할 것인가? 이번에도 지도안을 시작한 막내선생님이 지도안을 완성하고, 나랑 동기인 선생님이 자진해서 수업 자료를 만들기로 하신다.


두 번의 협의회 동안 나는 뭘 했나? 

교실을 제공했고, 일정을 안내했다. 그리고 열심히 경청했다. 그야말로 경청.


잘하고 싶은 의욕이 없었다. 올해는 2년을 쉬고 부장을 다시 하면서 바쁘기도 했고 뜻하지 않은 전국대회 참여와 그 외 이동 점수를 얻기 위한 학생 지도로 이미 에너지를 다 소진했다. 또한 아들의 큰 결정과 그 후 이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로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렸다.


남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데도 이렇게나 아무런 준비 없이 임하고 있다. 내 생각은 별로 보태지 않고 그냥 열심히 듣고 그대로 하려고 한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공개수업 측면에서 작년보다 나은 올해를 보내고 있지 못하다. 

이러다 또 자책 모드에 들어간다. 왜 이러고 사니? 괴롭다. 나를 미워한다. 

결국 또 내가 잘났다는 자만이요, 나는 완벽해야 된다는 어리석음이요, 인생이 실수 하나 없어야 된다는 착각이다. 공개 수업 하나가 2024년 교직 생활을 통틀어 대변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이게 뭐 그리 괴로울 일인가? 남북통일 문제도 아니고, 천재지변도  아니고, 굶어 죽는 일도 아니고.


그냥 사소하면서 조금 중요한 일일 뿐이다.

좀 열심히 준비 안 했다고 큰일 날 일인가? 수업은 어쨌든 할 것이고 부모들은 아이들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다. 

일 년 동안 살아가는 인생이 100이라면 그중 일부분은 일(work) 것이고, 일을 다시 100으로 본다면 일 중의 일부분은 대회준비, 부장 임무 하기 등으로 소진했으니 조금 허술한 부분도 있을 수 있는 거다. 100이라도 채우고 살았으면 된 거지 뭐 그리 잘난 척이 하고 싶은 건지.

나이 든다는 게 뭔가. 나의 부족함도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가 생긴다는 거 아닐까?


이런 나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부족한 나도 나요. 잘하는 나도 나요. 게으른 나도 나요. 최선을 다하는 나도 나요. 

인간이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닌데, 구구단 하듯이, 케잌을 등분하 듯이 딱 잘라서 규정하고 싶어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억지로 에너지를 쥐어짜다가 가까이 있는 사람들한테 화나 내지 말지어다.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작년 수업 공개 일화(브런치에 글을 써 놓으니 참 좋다. 언제 어디서든 꺼내볼 수 있어서. 다음도 고맙고 잡스 오빠도 고맙고, 세상 발전을 위해 애써 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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